설교말씀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살아봐요 = 신명기16;18-17;13(240225)

열려라 에바다 2024. 2. 22. 08:37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살아봐요 = 신명기16;18-17;13(240225)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지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불변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굳건하게 지키며 사는 것이다.


생명의 씨앗

어느 고고학자가 이집트 유물 탐사에서 아주 오래된 꽃병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꽃병을 만지다가 실수로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꽃병 안에서 몇 개의 완두콩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흙에 묻었더니 30일 후에 새파란 새싹이 돋아나오는 것입니다.
그 완두콩은 근 3천 년 넘도록 끈질기게 생명을 간직했던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살아납니다.
생명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은 십자가의 사랑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생명은 다시 살아서 하나님 영광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씨앗을 온몸에 품고 행복하고 기쁘고 좋은 일들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공동체에는 반드시 리더쉽이 존재해야 한다.
사사기 21:25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나라에 왕이라는 리더쉽이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규례와 법도가 없어서 백성들은 각각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와 마음대로 살았다는 말씀이다.
어느 나라와 민족이든, 기관이든, 단체든, 회사든 그에 합당한 리더쉽이 존재해야만 그 리더쉽의 지도를 따라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리더쉽을 세우는가에 따라서 모든 상황과 처지들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떤 리더쉽을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그 리더쉽이 지도자로 있는 나라와 민족과 단체와 기관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와 민족, 각 지자체와 교회와 기관과 단체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지도자를 세울 수 있도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폭적인 지키심과 도우심을 입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이번 2024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독일 출신의 클린스만이라는 사람을 감독이라는 리더쉽에 세움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는 선수들의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겨우 힘겹게 4강까지 올라갔지만,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효슈팅이 단 하나도 없이 어이없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클린스만 감독과 수석코치는 경기전 날 저녁에 일어난 선수들의 다툼으로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4강전에서 참패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책임을 선수들에게 떠넘기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선수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은 리더쉽을 잘못 세웠다는 증거가 된다.
이번 아시안컵 대회는 리더쉽을 잘못 세우면 이처럼 참패를 당하고 실패한다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을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도자의 삶, 리더쉽의 삶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D4.


 각 마을에 지도자들을 세우라고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6:18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각 지파와 족장을 따라서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서 백성들에게 덕망과 존경을 받고 신망을 얻는 이들을 재판장과 지도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각 도지사, 시장, 구청장과 같은 공공 기관의 지자체장과 의원들을 세우라는 말씀이다.
어떤 마을이건, 기관이건 마을과 기관과 같은 공동체, 유기체를 이끌어가야 할 대표자, 지도자. 리더쉽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리더쉽을 세우지 않으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각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와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하나님은 작은 공동체든, 큰 공동체는 각각 공동체에 합당한 리더쉽을 세워서 그 리더쉽의 인도를 따라서 공동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지파의 수장, 족장, 군대의 장들이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공의로 재판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18-20절에서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각 지파에서 재판장과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이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한결같은 공의로 재판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재판장도 죄인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인지상정을 따라서 재판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처럼 자신의 친인척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 자신에게 무언가라도 잘해 주는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에게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이라도 받아 마신 사람에게 더 많이 끌리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조건 때문에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외형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다.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신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불의를 따라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은 언제나 공의를 따라서 재판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공의는 세상이 정한 진리나 규법이나 법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규칙과 규례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신명기 17;2-13절에서 어떻게 재판하는 것이 공의로운 재판인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 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 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재판하여 지파 공동체, 대가족 공동체의 질서를 세워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고고고고고대사회는 오늘날처럼 small size로 개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big size로 공동체 중심으로 살았던 시절이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재판하는 것은 공동체의 공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재판하지 않으면 공동체를 세워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삶 자체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
모든 것들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시절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지상정에 의해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재판해야만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의 신령한 영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율례와 법도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삶을 공의라고 말한다.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법도를 최우선으로, 최고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그 기준과 표준에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공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결하고 재판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이란 존재는 요즘 상황이 그러니까. 우리나라 전통문화가 그러니까. 우리 지역 정서가 그러니까, 그 집 사정이 이러니까 저리니까, 그 사람은 나랑 잘 아는 사람이니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회의원, 지자체, 대통령 선거와 같은 각종 선거에서 어느 지역민들은 어느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제는 옳고 그름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의라는 잣대를 가지고 이리도 치우치지 않고 저리도 치우치지 않도록 판결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실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간혹 교회나 노회나 총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재판해야 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때 분명한 것은 사회법으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재판해야 하는 것이 원리이다.
그럼에도 사회 법정에 고소 고발하여 사회법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 법정에서 재판받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수치이다.
교회가 사회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이미 교회로서의 사명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교회로 존재해야 할 사명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의 단체는 신앙인들의 모임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제단 옆에 우상을 세우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21-2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세워진 제단은 번제단을 의미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번제단 옆에 이방 신상들을 세워서 우상 숭배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번제단 곁에 아세라상, 바알상을 비롯한 잡다한 신상들을 세워놓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징계하시고 진노하시는 원인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이방 신상들을 섬기고 음행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던 사건들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틀림없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고 세상의 온갖 더럽고 추한 우상들을 섬기는 죄악 속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이라는 선지자가 등장하는 시기까지를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라고 해서 중간기 시대라고 부른다.
20세에 헬라 제국의 왕으로 등극한 알렉산더 대왕이 전 유럽과 중동지역을 점령하면서 찬란하게 헬라 시대를 열어간다.
중동지역을 점령한 헬라는 이스라엘 지역도 점령하여 통치하게 된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33살에 식도염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헬라 제국이 점령했던 지역은 분열하게 된다.
이 때 이스라엘 지역에는 셀릭시드 왕조가 세워지면서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바로 옆에 헬라의 제우스신상을 세워놓고 돼지 피를 제물로 올려드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소, , 염소, 비둘기라는 흠이 없고 정결한 짐승으로 제물을 올려드린다.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에 절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질 수 없다.
제우스 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정한 짐승으로 지목한 돼지를 가장 선호하는 신이다.
셀릭시드 왕조의 요구에 의해서 성전 번제단 옆에 세워진 제우스 신상에게 돼지 피로 제물을 올려드리는 처지가 된다.
이때 마카비 제사장이 이끄는 제사장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군사들이 헬라제국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마카비 군사들은 셀릭시드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헬라 왕조에게 빼앗긴 성전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헬라 제국에게 빼앗겼던 성전을 다시 회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절기가 수전절이라는 하누카(Hanukah)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성전다워야 하고, 번제단은 번제단다워야 하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성전에 이방 신상들을 세우는 죄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세움을 입었기 때문에 가나안의 잡다한 신상들을 세워서 우상 숭배하는 죄악을 범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진노하시게 된다.
하나님의 성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섬기는 백성이 되어야 하듯이, 신앙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고 하나님만을 향하여 예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이 신앙인다워야 신앙인으로 자타가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시고, 자기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신앙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흠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


신명기171절에서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결하시고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도 정결하고 온전하고 흠이나 악질이 없는 제물이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멋진 것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온전함과 완전함의 속성을 따라서 흠이 없고 악질과 같은 질병이 없는 거룩하고 정결한 제물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께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멋진 것을, 가장 위대한 것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올려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장 멋지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위대해 보이는 교회당을 건축하여 드림으로써 주님의 몸된 교회당을 건축하여 드렸다고 자랑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많은 액수의 헌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액수의 십일조, 감사, 선교, 건축, 차량 헌금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는 가장 좋지 않아도 되고, 가장 멋지지 않아도 되고, 가장 위대하지 않아도 되고, 가장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가장 웅장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흠이 없고 악질이 없이 정결하고 거룩한 예물이면 그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다.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고 좀 바보스러워 보여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흠이 없고 악질이 아닌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작고 누추한 교회당이라도 괜찮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고 그런 시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당에 진정으로 삼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공의와 정의를 따라서 신앙인답게, 교회답게, 신앙인들의 모임과 단체답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수치스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L4 & B4.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는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기준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해 주시는 규칙, 규례, 규율, 잣대, 기준, 표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공의라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공의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벗어난 공의는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사회법이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해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견줄 수 있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들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보다 위에 있는 상위의 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은혜라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말씀의 법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재판하고 지도하고 훈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한 이단들의 교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을 하나님의 본래 위치, 창조주의 위치, 구세주의 위치로 올려드리고, 인간은 피조물의 위치로 내려와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성경 시대의 언어, 문화, 지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진정으로 삼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의지와 뜻과 주권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변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원리임을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8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시대와 민족과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여 절대 불변의 원리원칙임을 확신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 카토릭신학, 전통문화신학, 인본주의 신학, 해방신학, 공산주의 신학, 여성신학 등등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각종 잡다한 사상을 앞세운 각종 신학으로 성경을 이리저리 난도질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각종 신학들 보다 앞선 것이 절대불변의 성경임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성경은 세상의 그 어떤 사상이나 철학보다 앞서서 존재한 절대불변의 원리원칙이다.
지역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전통문화에 따라서 이리저리 바뀌거나 변할 수 있는 생각이나 의견이나 사상이 아니다.
성경은 성경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을 영어로 A Bible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성경을 The Holy Bible이라고 부른다.
성경을 A Bible이라고 부를 때는 세상에 흔한 책들 중에 한 권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을 The Holy Bible이라고 부를 때에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바로 그 책이라는 의미이다.
온 지구촌에 아니 온 우주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바로 그 책이 우리들이 읽고 있는 바로 그 성경책, 하늘의 신령한 영의 양식과 생명을 주시는 바로 그 성경책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바뀌거나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사상이 바뀌고, 지역과 문화가 바뀐다 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절대불변의 책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성경책이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최대의 선물임을 확신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에 주신 최대의 선물이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공의와 정의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말씀따라 살아야 한다.
성경을 신앙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표준과 기준으로 세워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은혜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든, 지도자가 되었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