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초대 교회 신앙의 특징

열려라 에바다 2024. 3. 3. 15:41
초대 교회 신앙의 특징
 

진리의증인추천 1조회 12824.02.29 17:11댓글 0

 
 
유튜브: 진리의 증인


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사도행전 20:7-12)


서론: 봉독한 성경 말씀은 초대 교회의 신앙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째, 초대 교회 때부터 주일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7절에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려 하여 모이고 강론을 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은 구약과 유대교의 안식일 다음 날로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주일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둘째, 초대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聖餐式)을 행하고 사랑의 애찬(愛餐, 공동식사)을 나눴습니다. 본문에 “떡을 뗐다”는 말은 성찬식과 애찬을 의미합니다. 셋째, 초대 교회는 예배 시간이 매우 길었는데 예배 시간은 대부분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도 예배 시간이 3시간 정도 됐습니다. 넷째, 초대 교회는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가 뜨겁고 긴밀했습니다. 11절에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주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후, 날이 새도록 이야기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초대 교회 신앙의 특징”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초대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행하고 애찬(愛餐)이라는 공동식사를 나눴습니다.
본문 7절에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다”고 번역돼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구약의 안식일 다음 날로 오늘날 주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떡을 떼려 모였다”는 말은 주일날 성찬식과 교회의 공동식사인 애찬을 나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19, 마태복음 26:26). 그래서 초대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주일마다 성찬식을 하지는 못해도 성찬식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행하여 주님의 구속(救贖,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 냄)의 은혜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은혜로운 성찬식이 되도록 기도하고 준비하라고 한 달 전부터 성찬식 광고를 하지만 성도들의 준비와 정성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1:27-29). 그러므로 성찬식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과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며 경건한 자세로 참여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초대 교회는 예배 후에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애찬이라는 공동식사가 있었습니다. 이 애찬은 교회에서 준비하지 않고 조금 여유가 있는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집에서 준비해 왔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노예나 하인 같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는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의 몫까지 식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 노예나 하인 같은 가난한 성도들은 주일날 교회에서 먹는 사랑의 애찬이 유일한 식사다운 식사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 노예나 하인처럼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성도들에게는 주일날보다 복된 날이 없었습니다. 사회에서는 노예와 하인으로 멸시와 차별을 받지만 교회에 나오면 형제와 친구와 이웃으로 사랑을 받았고 빈부와 귀천의 차별이 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고된 노동에 지치고 굶주린 사람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나 하인 같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3:20).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충성되고 진실한 성도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사랑을 나누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오늘날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기가 바쁘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집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초대 교회는 2세기까지 교회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예배를 성도의 가정에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를 가정교회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는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하나가 되었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의 몫까지 감당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제2의 도약과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청년으로 교회에 다니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는 정말 세상과 달랐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 중에는 회사 사장과 대학교수와 장관도 있었지만 예배 후에는 담임 목사와 장로와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점심으로 제공하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몇 시간씩 대화하며 사랑과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형제와 자매라는 사랑이 실천되었습니다. 얼굴을 몰라도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끼리는 강하고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초대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하고 사랑의 애찬이라는 공동식사를 나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초대 교회 정신으로 돌아가 사랑을 나누고, 가난하고 약한 성도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초대 교회는 성도 간에 아름답고 진실한 사랑의 친교가 있었습니다.
본문 20:11,에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이 샐 때까지 담소하며 사랑과 친교를 나눴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나 초대 교회 하나님이나 같은 하나님인데 왜 오늘날은 초대 교회와 같은 사랑과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치열한 생존경쟁과 복잡한 사회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성도들의 신앙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초대 교회처럼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지도 않고, 사죄와 구원과 영생을 신앙과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성도도 많지 않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자기 아버지보다 다윗의 편에 섰던 요나단과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진실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냉정하고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자 양들이 깜짝 놀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돌보고 사랑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형제간에 사랑하고 우애할 때 기쁘고 흐뭇합니다.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가난하고 약한 형제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조건이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면 안 됩니다. 신앙의 형제자매는 구원의 방주라는 배에 함께 탄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공동운명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날은 몰라도 주일날 하루만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족하고 모자란 형제와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사랑은 모든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성도들 간에 아름답고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매우 사모했습니다.
사도행전 20:7, 하반절에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밤중까지 강론을 계속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설교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저녁 식사 후에 시작해서 늦은 밤중까지 계속된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도 없었고 초대 교회는 목회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성경도 없고 목회자도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바울 사도 같은 훌륭한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설교가 시작되면 몇 시간씩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기도, 찬송, 헌금, 하나님 말씀입니다. 예배의 4대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도와 헌금과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은혜와 복을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교훈하시며,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서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유두고’라는 청년이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삼층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예배 시간에 졸고 하나님 말씀 듣지 못하면 시험과 어려움을 당한다는 경고와 교훈입니다. 사람이 몸이 피곤해서 잠깐 조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설교 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졸고 잠을 자는 것은 육신의 피로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할 시간에 졸고 잠을 자다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 말씀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영혼이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말씀이 믿음을 낳고, 말씀이 영혼을 소생시키며, 말씀이 우리를 의와 진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유롭게 읽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양식의 기갈이 아니라 말씀의 기갈을 당할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아모스 8:11-13).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고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할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북한과 공산주의 국가와 이슬람 국가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자유롭게 읽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유롭게 읽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교회건물도 없었고 성경책도 없었고 목회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또 초대 교회는 교인들의 대부분이 노예나 하인들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초대 교회가 당한 환난과 박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해 기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부흥시켰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부흥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교회의 자리를 되찾으려면, 초대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 교회처럼 성도 간에 사랑과 친교가 회복돼야 합니다. 또한 초대 교회의 성도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을 신앙과 인생의 유일한 법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행하고 실천하셔야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친교가 넘친 초대 교회처럼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전도하셔서 교회를 부흥시키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