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여호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아봐요 = 신명기18;1-8(240303)

열려라 에바다 2024. 2. 29. 14:25

여호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아봐요 = 신명기18;1-8(240303)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인정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좀 쉬었다 가지!

 

어느 할머니께서 유럽을 여행하기 위해서 비행기에 타게 되었습니다.

유럽이라는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무지 먼 지역이지요.

할머니는 너무 오래 비행기를 타서 힘도 들고 배도 고프셨습니다.

할머니가 스튜어디스를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가씨, 우리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 가지!”

할머니의 심정 아십니까?

그런데 어쩝니까?

승용차도,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버스도, 기차도, 배도 쉬었다 갈 수 있는데, 비행기는 쉬었다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쉬었다 갈 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억지로라도 쉬려고 하는 순간 추락하여 모두가 죽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쉬는 순간 추락하여 죽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쉴 수 없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나아가야 할 믿음의 경주란 결코 쉼 없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꾸준하게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한 걸음씩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주님만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으로 믿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주님의 거룩한 손을 믿음으로 붙들고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요단강 대협곡을 지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의식주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애굽을 떠날 때 신었던 신발과 입고 나왔던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새벽마다 내려준 만나를 먹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광야 생활하면서 약간의 의식주 문제가 있기는 했었지만, 심각할 정도의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모든 상황들은 바뀌고 변화하게 마련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더 이상 만나도 내리지 않는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더 이상 구름기둥, 불기둥도 생겨나지 않는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땅에 나오는 소산물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하낭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12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심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신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기업을 받지 못하는 레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레위 사람들에게도 의식주 문제는 동일하게 대두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계실까?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전통문화에 대한 문제도 덩달아 생겨나게 마련이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레위 사람들의 의식주 문제와 전통문화와의 문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말씀일까?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다른 지파에게는 마땅히 살 수 있는 땅과 기업을 주셨지만, 유독 레위 지파에는 다른 지파들처럼 기업을, 땅을 분배해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는 다른 지파들처럼 마땅한 한정된 지역이라는 기업을 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니 레위 지파 사람들의 마음은 속상할 수밖에 없다.

다른 지파는 인구의 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기업을 주시면서 왜 우리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불공평하고 속상하기만 하다.

차별 대우해도 이런 차별 대우가 어디 있겠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레위 지파에게만 기업을 주시지 않는 것은 분명히 차별 대우하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레위 지파에게도 마땅한 기업을 주어야 평등하지 않겠나?

그래야 누구 앞에서건 당당하게 살아가지 않겠나?

우리 지파도 다른 지파들처럼 한 지역에 모여서 살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여호와 하나님이란 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다.

우리 레위 지파에게도 여늬 지파들처럼 당당하게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기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죽지 않고 살지 않겠나?

눈에 보이는 기업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파 사람들에게 기죽고 살게 생겼지 않은가?

사람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다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우리 레위 지파에게는 눈에 보이는 기업을 주시지 않으니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상속할 기업이 없는 우리 자손들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지 않겠나?

신앙인들도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생업 터전과 직장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직장이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조급해지고 쪼잔해진다.

마땅하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지 않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계시는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시는 삶의 터전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의 말씀이실까?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D4

 

 항상 기대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2절에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에게는 마땅한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해 주셨지만, 레위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기업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레위 지파에게는 일정한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 주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이 레위인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기업이 된다는 말씀은 레위인들에게 항상 하나님께서 오늘은 무엇을 주시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레위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오늘은 무엇을 주실까?”하는 기대감을 가질 때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기대감을 가지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잠재력이 배가되어 나타나게 된다.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좋은 것을 주실 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질 때, 하루하루의 삶이 설레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람들, 신앙인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일정한 지역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기업이 되어주시기도 하시지만,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군대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신다.

타민족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누군가는 그 전쟁으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고, 부상당하여 심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들을 군대에 징집하지 말라고 하신다.

타민족과의 전쟁에서 군대에 징집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자연히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들에게 일정한 기업을 배정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본래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이기 때문에 양 떼들을 거느리고 목초지를 찾아다닌다.

목동들이 찾는 목초지가 널려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황량한 광야에서 목초지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우기 때에는 목초지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때에 목초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레위인들에게는 그렇게 힘든 목초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농사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지... 정말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칠 때에 조금만 텃밭에 난 풀을 뽑아주려고 해도 너무너무 힘들어서 몸살이 난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농사가 잘 안되어서 흉년을 맞이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폭우가 내려서 홍수가 나면 그 동안 애쓰게 농사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농사하는 농부들은 다 풍년을 기대하면서 농사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연거푸 풍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흉년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근이 찾아오고 흉년이 되면 정말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힘든 농사도 하지 말고, 대신에 오직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성막, 성전을 중심으로 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유목민 생활이나 농부 생활을 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 성전을 중심으로 살라고 하시는 말씀은 세상을 중심으로 살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이 먼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면, 그다음의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져 주시고, 채워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삶이란 오직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신앙인들의 삶은 의로운 삶이요 풍성한 삶이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붙들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타 지파의 중심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을 다른 12지파 백성들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레위 지파는 다른 12지파에게 분배한 기업에서 4성읍씩 레위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성읍을 하사받아서 그 성읍에서 살면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지파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각 지파에서 4성읍씩 하사하여 48성읍을 만들고,  48성읍에 레위 지파 사람들을 골고루 분산하여 거주하고, 그 성읍들을 중심으로 각 지파 백성들이 각각 기업을 분배받아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눈으로 보여주며 확인할 수 있는 기업은 없지만, 보이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심으로서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게 해주신다.

하늘의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사모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기업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천국, 천당, 낙원을 예비해 놓으시고 계신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3-4절에서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은 가장 정결하고 완벽하고 완전하고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이다.

한 점의 흠이나 결함이 있거나 부끄러움이나 수치가 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고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도 마찬가지로 완벽하고 완전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것을 제물로 준비하여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제사장을 비롯하여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레위 지파 사람들은 가장 완전하고 정결하고 거룩하고 좋은 것으로 먹는 것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끝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첫 소산물, 맏물로 먹을 수 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가장 품질 좋은 맏물을 먹는다.

다른 백성들이 각자 농사한 농산물과 짐승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들과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이 직접 기업을 분배받아서 농사하거나 목축업을 했다면 다양할 수가 없다.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 농산물의 가장 좋은 첫 소산물과 맏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때문에 레위 지파 사람들은 너무너무 풍성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다양한 은혜와 축복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신앙인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신앙인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독특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매일매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으로는 늘 부족할 것 같은데, 막상 부족하지 않고 가장 적당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레위 지파 사람들은 일정한 지역을 분배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늘 부족할 것 같고, 뭔가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언제나 인간적으로 계산해 보면 항상 부족하여 마이너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막상 지나놓고 보면 이상하게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오히려 플러스가 되어 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언제나 부족하지도 않고 너무 남아서 버리지도 않는다.

꼭 필요한 만큼 베풀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 만나를 거두었지만 부족하지도 않았고 남지도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면 부족하지도 않고, 남아서 버리지도 않는다.

저는 한평생 개척교회 목사로 살아오면서 늘 부족하여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 하면서 사는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막상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언제나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셔서 오늘까지 살아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넉넉하여 넘치도록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때로는 종종 누군가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나눠줄 수 있는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사소한 것들이라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어서 좋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신앙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은 결코 형편없이 부족하여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지 않게, 누군가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분이다.

지금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마이너스의 삶이 아니라 플러스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이주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6-8절에서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지역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 지파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12지파에서 4성읍을 내놓아서 48 성읍에서 머물러야 하지만, 레위인은 자신들이 머물도록 배정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면 다른 지파에서 레위인을 위해서 내놓은 성읍으로 이주하여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계신다.

일반 지파는 그 지파에서 배정된 지역에서 다른 지파가 머물고 있는 지역으로 이주할 수 없다.

본래 지파에 배정된 지역에서 자자손손 대대로 그 지역에서 머물러야 한다.

일반인들은 본래에 배정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갈 수 없다.

본래 배정된 지역에서 씨족사회를 형성하면서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에서 레위인들을 위해서 내놓은 성읍으로 이주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레위인들은 다른 지역에 레위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성읍으로 이주하더라도 동일한 권한을 유지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없지만, 레위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L4 & B4

 

일할 직장이 있다는 것, 일터가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세상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터가 없어서, 직장이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요즘 시대에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마땅하게 일할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정치권에서는 항상 선거철이면 자신이 당선되기만 하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나면 그렇게 외치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지, 다른 사람의 일자리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사람에게 있어서 의식주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나,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의식주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이야 의식주 문제를 뛰어넘어서 자아실현과 비전을 성취해 나가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나라가 되었지만,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늘 의식주 문제가 최대의 이슈였던 시절이다.

1990, 2000, 2010, 이제 2020년를 살면서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에서 이제는 당당히 선진국의 대열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저는 많은 나라를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몇몇 나라들을 다녀보면서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의식주 문제는 지구촌 곳곳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지구촌 곳곳에는 의식주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의식주 문제와 전통문화에 대한 문제는 항상 발생하게 마련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다른 백성들처럼 의식주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가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준비해 온 제물들 중에서 일부를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분배해 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확하는 곡식과 과일의 십일조와 양과 염소의 털 십일조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지정해 주고 계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기업이 되어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준비한 모든 제물은 화제물이 아닌 것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화제로 제물을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이야 타서 없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없지만, 타지 않은 제물은 얼마든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갖가지 제사 음식을 만들어서 제사상을 차리지만, 그 제물은 조상귀신이 와서 직접 그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조상귀신이 와서 먹고 간다고 생각할 뿐이지 실제로 귀신들이 그 음식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먹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제사 음식은 누가 먹는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먹는 것이다.

무당들을 불러서 굿을 할 때, 굿을 위하여 많은 음식으로 제물을 준비한다.

굿을 하고 나면 그 음식을 누가 먹는가?

귀신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할 뿐이지 진짜 귀신이 와서 그 음식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먹는 것이 아니다.

결국 굿을 하기 위하여 바리바리 준비한 음식은 굿을 한 무당들이 바리바리 챙겨가서 무당들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는 분이다.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요 제물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이신 분이기 때문에 제물을 사람처럼 직접 와서 먹지는 않는다.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하여 그야말로 바리바리 음식을 준비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을 돕는 레위인들이 먹는 양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의 기업은 하나님께서 직접 챙겨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Full Time으로 사역하는 신앙인들의 생활 터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교회에서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전적으로 교회가 사역자의 생활 터전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서 해결할 수 없는 대다수의 작은 소규모의 교회들이다.

미자립교회, 개척교회, 농어촌교회 등등 교회 자체로 사역자들의 생활 터전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교회들이 대다수이다.

그야말로 마음은 원이로되 실상은 전혀 그럴 수 없는 형편이 가슴을 아프고 저리게 만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의 기업이 되어주셨다면, 신앙인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사람들이 협력해 주어야 한다.

목회자들, 선교사님들, full time 사역자들의 가정이 의식주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에 있는 신앙인들이 협력해 주면서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져 갈 수 있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