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이신 예수님께로 피해 보세요 = 신명기19;1-21(240317)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피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서 피하는 것이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이야기
고려시대 김부식선생님이 쓴 삼국사기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고구려의 평원왕은 어린 평강공주가 계속 시끄럽게 울자 딸에게 이런 말로 놀립니다.
“우리 딸은 울보니 나중에 크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
공주가 16살이 되자 왕의 말대로 공주는 궁궐을 나와서 바보 온달을 찾아가서 함께 살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말은 자석과 같아서 오랜 시간동안 공주를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이후 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는 늘 말합니다.
“온달! 당신은 훌륭한 장군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서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수없이 가르치고 연마시킵니다.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수만 번의 반복은 바보 온달을 훌륭한 장군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낸 고구려 시대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의 반복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희망의 말을 거듭거듭 계속해서 들려주면 우리 자녀들이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계속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 주면서 용기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남편들도, 아내들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변할 수 있습니다.
말에는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을 사용하여 세상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예수님도 말로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세워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잡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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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귀에는 귀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복수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저가 누군가의 얼굴을 심하게 때려서 이가 부러지거나 뽑혀거나 상했다면 그 사람은 나의 얼굴을 세차게 때려서 이가 부러지거나 뽑히거나 상하도록 복수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을 같은 신체를 복수한다고 해서 동신복수법(同身復讐法)이라고 부른다.
이 법에 따라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면 그 사람도 역시 살인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동신복수법을 제정해 주신 목적은 자기 자신의 육신이 온전하게 보호받으려면 결단코 다른 누군가의 육신도 온전하게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당연성을 가지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
만약에 내가 다른 사람의 신체를 해쳤다면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본인도 그만큼 신체에 해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해를 받지 않으려고 하면 다른 누군가의 신체를 해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 대두하게 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신체를 해치는 범위를 벗어나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 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살인죄에 대하여 살인으로 복수하게 되면 다시 살인으로 복수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속 살인하고 또 살인 당하고 또 살인하고 또 살인 당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방법을 하나 제시해 주신다.
그것이 바로 도피성 제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도피성 제도를 제정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도피성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는 언제까지 도피성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도피성 제도가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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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도피성을 제정하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루게 된다.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의 7족속들을 쫓아낸 후에 기업을 각 지파 별로 나누어주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인구의 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에 합당하도록 기업을 분배하도록 말씀하신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가 이미 기업을 분배받았다.
정복 전쟁이 끝나면 요단강 서쪽에는 시므온, 유다, 스불론, 단 지파 등등 다른 9지파와 남아 있는 므낫세 반 지파가 기업을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기업분배에서 제외되는 레위 지파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레위 지파에게는 각 지파에서 4성읍씩 각출하여 총 48성읍을 특별히 구별하여 레위지파에게 부여해 주도록 한다.
레위 지파는 48성읍으로 흩어져서 살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중심지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48성읍들 중에서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3성읍, 서쪽에 3성읍을 특별히 구별하여 도피성으로 지정하라고 하신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미 기업을 분배받은 요단강 동쪽에는 르우벤 지파의 베셀,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 므낫세 반 지파의 바산 골란을 도피성으로 삼으라고 하신다.
다른 9지파가 기업을 나누게 될 요당강 서쪽에는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게네스,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유다 지파의 헤브론으로 알려진 가럇 아르바, 이렇게 3성읍을 도피성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신다.
도피성에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살면서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 급하게 피하도록 정해주고 계신다.
② 도피성의 규례를 정해 주시는 하나님.
ⓐ 모든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다.
2절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라고 말씀하신다.
부지 중에서 살인한 바로 너를 위하여 구별하여 도피성을 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도피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된 나를 위해서 도피성을 지정해야 하는 것이다.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되는 것은 어느 누구나 다 해당된다.
단 한 사람도 예외 되지 않는다.
무고 중에,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되는 경우는 단 한 사람도 예외 되지 않는다.
살인죄는 어느 누구나 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살인죄는 어느 누구나 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도피성을 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도피성을 지정하여 세우셨다고 확신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3절에 보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가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나 쉽게 도피성으로 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으라고 말씀하신다.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달려오는 와중에 방해물이 있어서, 방해가 되어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 해를 당할 수 있다.
누구나 아주 쉽게 도피성으로 피해 올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살인자가 살기 위해서 급하게 도피성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고속도로처럼 잘 정비하고 닦아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살인죄를 저질렀을 때에 일단 도피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빨리 알아보고 피의 복수자가 자신을 찾아와서 자신을 해치기 전에 도피성을 향하여 도망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도피성으로 피하여야 한다.
도피성으로 피하면 1차적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도피성에는 살인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나그네, 외국인까지도 들어갈 수 있다.
ⓑ 살인죄의 고의성 유무를 재판하도록 한다.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해 왔을 때 도피성에 거주하는 제사장과 장로들로 구성된 재판원들이 도피성에 피해 온 살인자의 고의성 유무를 재판하게 된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서 도피성에 계속 머물 수도 있고, 도피성을 떠나서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 살인을 당하기도 해야 한다.
재판하여 살인자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판결이 되었을 경우에도 한 사람의 증언으로 그를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적어도 두세 사람의 증언으로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해야 한다.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들 중에서 원수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경우는 전혀 살인할 계획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죄를 범했을 경우에만 해당한다.
가령 도끼로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도끼자루에서 빠져나와서 사람을 쳐서 죽였을 때나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에 계획없이 사람을 쳐 죽였을 경우 또는 군대에서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경우, 스포츠 경기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경우, 무심코 돌을 던졌는데 그 돌에 맞아 죽게 되는 경우, 먼저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데 정당하게 자신이 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방어하다가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등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겨날 수 있다.
이처럼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사건들, 변수들이 수도 없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럴 때에 우선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보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피성 제도를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미리 살인할 계획을 세워서 살인했을 경우에는 도피성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미리미리 누군가를 살인할 수 있는 각종 무기를 준비하면서 계획된 살인 행위에는 엄중한 처벌을 원하신다.
계획된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용서도, 아량도, 긍휼도, 자비도 있을 수 없다.
도피성으로 피했다고 하더라도 살인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경우는 미리 살인 계획을 세워서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에 해당한다.
철저하게 살인할 의도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서 이루어진 살인자는 억만금의 속전을 내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성립할 수 없다.
세상의 법정에는 살인자가 돈으로 살인죄를 무마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돈으로 살인죄를 무마할 수 없다.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반드시 살인을 당해야만 한다.
계획된 죄에 대해서는 그 죄에 대하여 마땅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바로 성령께서 감동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 생각, 판단에 따라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계속 감동을 주셨는데도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죄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모르고 지은 죄, 알고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지만 알고 지은 죄는 성령께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감동을 주셨는데도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치루게 하신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알고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죄의 대가로 수없는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무기를 준비한다거나 살인할 수 있는 칼, 창, 독약과 같은 도구를 준비하여 살인했을 때이다.
계획된 살인 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이나 자비나 용서를 받을 수 없다. 피의 복수를 당해야 한다.
종종 군대에서 발생하는 총기 난사 사건은 조금의 용서도, 긍휼도 있을 수 없다.
미국이나 여러 외국에는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데, 총기 난사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조금의 긍휼이나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사건은 조금의 용서도, 긍휼도 있을 수 없다.
보험금을 노리는 각종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사기 치기 위해서 협박하거나 서류를 조작하거나 증거를 소멸시키는 등등 각종 범죄의 경우에는 추호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③ 도피성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해 주시는 하나님.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되어 도피성으로 피하여 머물던 사람이 도피성을 떠나서 본래 자신의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기간은 살인자가 살인죄를 저지를 때 생존하던 대제사장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갔을 때이다.
현재 살아 계시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한다.
대제사장이 연로하신 분이라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도피성에 머물 수 있지만, 대제사장이 젊어서 장기간동안 대제사장직을 수행한다면 살인자는 도피성에 그 만큼 오랜 기간을 도피성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죽음으로서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되었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던 살인자도 모든 죄악을 완전히 용서받고 회복되어서 자신의 본 기업으로 돌아가서 기업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신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사람이다.
일반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지 않고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되지만, 대제사장은 반드시 관유라는 기름을 부음 받아야만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을 수 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말이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이고,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요 모형이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는 살인죄가 용서받아서 본래의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듯이, 예수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들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④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이유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되었을 때,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정당하게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 다시 살인당하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동신복수법에 따라서 다시 정당한 살인이 발생하게 된다.
계속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 복수가 진행되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복수의 피비린내 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비린내 나는 상황을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종결시키기 위해서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계속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현장이 진행된다면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어야 하는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게 된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피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육식을 할 때도 피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런데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피의 복수가 계속 진행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의 복수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피의 복수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피의 복수를 막기 위해서 도피성 제도를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부지 중에 살인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다시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 살인을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이런 악습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도피성 제도를 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살인이 이루어졌을지라도 살인을 당한 당사자의 가족, 친지, 친구가 직접적으로 피의 복수를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안전장치를 견고하게 세워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의식중에, 부지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계신다.
이들은 도피성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신분적으로 불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
L4 & B4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어서 국회를 마치 자신들의 도피성으로 악용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어떤 이는 국회를 자신의 도피성으로 삼아서 자신의 이름으로 당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비례대표 1순위에 올려놓은 이들도 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이번 선거에서 엄중하게 심판하시도록 기도한다.
국회를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도피성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제정해 주신 도피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모형이요 그림자이다.
영원한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도피성이라는 제도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길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수를 주시고 영생의 길로 활짝 열어주시는 길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중심으로 3성읍씩 도피성을 제정해 주셨지만, 우리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도피성 제도가 없다.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계속 피의 복수가 일어난다면 복수의 길을 막을 길이 없다.
동신복수법은 악을 악으로 갚는 복수법이라면, 도피성 제도는 악을 선으로 갚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복수는 악을 악으로 갚는 복수가 아니라 악을 선으로 복수하는 방법이다.
악을 선으로 복수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승리자요 의인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요 의인이 되는 길은 우리들에게 유일한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 은혜의 장막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더라도, 설령 성령의 훼방죄를 저질렀더라도 일단은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에게로 피해야 한다.
물론 성령 훼방죄는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거역한 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죄를 범했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길로 달려가야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피해야 살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우리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렸더라도, 우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 도움처,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님에게로 달려가서 피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유일한 해결자가 되어주신다.
치료자가 되어주신다.
도움처가 되어주신다.
피난처가 되어주신다.
위로자가 되어주신다.
격려자가 되어주신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들의 삶을 칭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급이 되어주신다.
우리의 면류관이 되어주신다.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 되어주신다.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신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도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과 보혈의 피 외에 다른 것을 전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이단, 삼단, 사단, 10단이 되어진다.
기독교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기독교가 아닌 종교들이 수없이 많다.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를 더 숭상하는 로마카토릭, 이만희를 예수님 대신에 중보자로 세우고 있는 신천지, 문선명의 통일교, 여호와증인, 파란색으로 간판에 하나님의 교회라고 만들어 놓은 안상홍 장길자증인회, 유병언의 구원파, 제7일 안식일교회 등등 너무 많은 종파들이 기독교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
이들은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처럼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전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와 저주받을 일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고린도전서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10에서는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한다.
이제 우리들은 어떤 경우가 되든, 어떤 여건이 되었든, 어떤 처지가 되든, 어떤 환경이 되든, 어떤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몰려온다 해도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피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들은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서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겨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축복은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축복은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로 피하는 것이다.
축복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피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과 영생을 받아 누리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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