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신앙의 경주자

열려라 에바다 2024. 3. 16. 11:12

 

신앙의 경주자
 

진리의증인추천 2조회 10424.03.14 08:16댓글 0

유튜브: 진리의 증인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4-27)


서론: 옛날에 헬라제국이나 로마제국에서는 국가적으로 대규모의 운동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운동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경주자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향해 달리는 신앙의 경주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신앙의 경주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신앙의 경주자는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24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달리기 경주에 출전한 선수처럼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올림픽은 온 지구인의 스포츠축제로 수많은 종류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올림픽의 기원이 되고 올림픽을 상징하는 경기는 마라톤입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며 마라톤은 언제나 올림픽의 피날레(finale)를 장식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달리기에 비유하신 경기는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은 사십이 점 일구오(42.195) 키로미터의 거리를 달리는데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두 시간 이상 사력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라톤 경주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체력안배입니다. 꼴인 지점을 통과할 때 자기 체력을 100퍼센트 다 사용한 사람이 이상적인 마라토너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과도하게 달려 꼴인 지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진 사람은 체력의 안배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꼴인을 하고도 힘이 남아도는 사람도 체력안배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꼴인 지점을 통과할 때 자기 체력의 100퍼센트를 다 사용한 사람이 체력안배에 성공한 마라톤 선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향해 달리는 신앙의 경주자도 체력안배가 필요합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열심을 내다가 중간에 지쳐서 쓰러지면 영적 체력안배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힘과 능력이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도 영적 체력안배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구원과 상급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받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누구나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상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이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갈 때까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고난 중에 있는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잘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판단하실 때 무엇을 보시느냐? 하나님은 직분이나 외모나 신앙의 지식을 보시지 않고 일률적으로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시지도 않습니다. 각 사람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요구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요구하시며,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능력과 그 사람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느냐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한 달란트 남긴 사람이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보다 큰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영광되기 때문입니다. 상을 받은 사람이나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면 성경이 무엇 때문에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상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영광이 다르기 때문에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구원과 상급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이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과 건강과 물질을 주시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도 마련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일 하라고 주신 시간과 물질을 헛된 일에 낭비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 달리는 신앙의 경주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신앙의 경주자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25절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제’로(헬라어 엥크라튜에타이 γκρατεύεται) 번역된 말은 말()이 주인에게 잘 통제되며 주인이 능숙한 솜씨로 말을 통제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합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유명한 권투선수가 은퇴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기자가 “은퇴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은퇴 선수는 “술도 실컷 마시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고, 마음껏 잠도 자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된 훈련을 하고 절제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절제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훈련에 태만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운동선수가 절제한다는 것은 운동과 선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고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라톤 선수에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달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의 복장은 런닝셔츠와 팬티가 전부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것은 몸에 걸친 것이 적어야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복에 정장을 하고 달리는 마라톤 선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설물처럼 버려야 합니다(빌립보서 3:8).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달리고 있습니다. 명예와 허영의 보따리에 체면과 자존심의 외투까지 걸치고 있으니 어떻게 제대로 달릴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운동선수가 절제하는 것도 건강과 최상의 컨디션(condition)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도 운동선수 못지않게 건강이 중요합니다. 몸이 병들고 약해지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몸이 건강해야 영혼도 건강하고 몸이 건강해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몸이 병들고 약해지면 기도하기도 힘들고 성경 읽고 말씀 묵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육신의 몸이 건강해야 영혼도 건강하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절제하고 인내해야 건강을 지키고 몸과 영혼이 건강해야 신앙과 인생에 승리합니다. 절제는 신앙과 인생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신앙의 경주자는 신앙의 목적지인 꼴인 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달리는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라톤 경기는 출발 지점과 꼴인 지점과 달리는 코스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라톤 선수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 달려야 합니다. 아무리 잘 달리고 열심히 달려도 코스를 이탈하면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라톤 코스가 동대문 운동장을 출발해서 의정부를 돌아 동대문 운동장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꼴인 지점이 동대문 운동장입니다. 그런데 일등으로 달린 선수가 꼴인 지점을 잘못 알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가지 않고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갔습니다. 이 선수는 실격처리되고 탈락자가 됩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목적지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신앙의 경주자의 목적지가 어딥니까? 천국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천국과 영생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은 성도가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橋梁)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천년만년 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리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건너서 지나가는 곳인데 왜 다리 위에 집을 짓습니까?
그리스도인 중에는 신앙의 궤도를 이탈하여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타락하거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쉬어 가면서 예수를 믿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만나거나, 목사나 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달이고 쉬는 것입니다. 쉬어가면서 달리는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무지 열정이 없습니다. 그렇게 믿어서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고 어떻게 상을 받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명예를 얻고 세속적인 성공을 하고 이 땅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과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과 영생이라는 신앙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신앙의 경주자는 근신과 겸손한 자세로 달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대한 전도자인 바울 사도의 근심과 두려움과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헬라인들은 인생의 제 일의 법칙으로 “네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자신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나 돼지처럼 살면서 자신이 개나 돼지처럼 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남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목사와 선생으로 남을 가르친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이렇게 죄에 무능하고 연약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러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근심하고 걱정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도 바울 사도와 같은 신령한 근심과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구원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의 근심과 두려움은 죄에 무능하고 연약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과 탄식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원했지만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죄스러운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죄에 무능하고 연약한 자신을 탄식하며 괴로워한 것입니다.
이런 근심과 걱정은 구원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갖는 복된 심령입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주장한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에 책임을 지신다는 교리입니다(로마서 9-11). 바울 사도의 근심과 두려움은 구원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불만과 탄식입니다. 경건한 성도의 신령한 근심과 걱정은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서도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악과 불의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항상 깨어서 근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사죄와 구원과 영생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신앙의 목적지인 꼴인 지점을 향해 끝까지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신앙의 경주자는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의 경주는 져도 좋고 이겨도 좋은 친선경기가 아닙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셔야 천국에서 영광과 상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신앙의 경주자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절제와 인내를 모르는 인간은 교만한 인간이거나 모자란 인간입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 말씀에 복종시키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노력해야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신앙의 경주자는 신앙의 목적지와 꼴인 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뒤를 돌아보거나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경주자는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안 됩니다. 신앙의 경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을 떠나야 경기가 끝이 납니다. 천국과 영생이라는 신앙과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근신과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