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누가 그 길을 가겠습니까?

열려라 에바다 2024. 3. 27. 08:20

누가 그 길을 가겠습니까?

 
선한양치기추천 1조회 5824.03.25 23:31댓글 0
 
 

< 누가 그 길을 가겠습니까? >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 11:1-11)


저는 오늘 보혜사 되시고 진리의 영이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셔서 말씀의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짧게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세례 요한의 생애를 말씀 드리면서 신앙의 값진 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이루어 놓은 길은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십자가의 길은 아니지만 그 십자가의 길을 예비한 길이요,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갈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구원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값진 길을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길을 갔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까?



첫째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큰 뜻을 위하여 택함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미리 예비하여 사람들로 주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받아 드리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보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마 3:1-4)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그래서 요한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절제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는 것을 절제하였습니다.
그는 입는 것을 절제하였습니다.
그는 삶 자체를 절제하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오직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끔 뉴스를 보다가 두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호텔 신라의 대표이사 이부진 씨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를 가졌기에 고급스럽고 화려한 옷을 입을 수도 있는데, 그는 수수한 옷을 가지고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기에 남모르게 부를 누리겠지만 그는 수수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할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기업 운영을 통하여 나라 경제에 부를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런 대단한 삶을 살면서 그도 가끔 수수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글을 좋아합니다.


이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모든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그런 삶은 신약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주의 길을 가는 사역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본을 보여주는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바울이 그 길을 갔습니다.


나는 이해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왜 비싼 외제차를 타야 합니까?

왜 목회를 하면서 수백 만원하는 양복을 입고 자랑해야 합니까?



누가 이유를 한번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도가 감사해서 사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단호히 거절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사역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가르치면 됩니다.


자신이 받을 것은 다 받으면서, ‘그리스도인은 수수한 삶을 살면서 남을 섬기는 것을 힘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실 자신이 받고 싶어서 그렇게 가르친 것이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사역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값진 것을 남기고 간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세례 요한은 주님만을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로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속의 사역을 예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고, 세례를 받는 모습을 요한의 제자들이 보고 요한에게 알립니다.


(요 3:22-33)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그 때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너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 말합니다. 결코 사람들에게 들어나지 않아도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삶을 택하였던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은 들어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감추어져야 함을 밝힙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주님을 높이고 자신을 감추었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로, 세례 요한은 주의 뜻을 받아 드리고 말없이 조용히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이유는 헤롯왕의 죄를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헤롯왕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세례 요한이 책망하면서 반대하였기에 헤롯은 요한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말은 ‘예수님, 당신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기 위해 메시야로 오신 그분이 맞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헤롯 왕을 쫓아내고 속히 당신의 나라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고, 예수님의 나라를 속히 이루어 주시기를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을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무슨 말인가요?


‘요한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이 땅에 이루고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물었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고 한 의미가 그런 뜻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예수님께서 “사람들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하셨다고 잘못 이해합니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 복음이 전해지면서 이스라엘 땅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너희 가운데’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이미 이스라엘 땅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세례 요한은 그 후 말없이 조용히 자기의 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다름을 알고 말없이 종용히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주님은 그런 세례 요한을 사람들 중에 최고의 사람이라고 칭찬해 줍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여자가 낳은 자들 가운데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 하시고는 왜 주님은 천국에서는 죽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고 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이해가 갑니다.


“세례 요한이 내 작은 말에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이제 너희는 복음의 더 큰 것들을 받아 들여 천국 백성이 되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해한 주의 말씀보다 앞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여야 할 복음의 말씀이 더 위대한 것임을 밝혀 주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남의 나라에 들어갈 너희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는 주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여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이룰 수 있다고 고백하며 그 말씀을 이루며 좀디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가 그 나라에 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그 나라에 들어가 주님을 기쁨으로 뵙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그 길을 가겠습니까?

믿음의 그 길을,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그 길을 우리 모두 열심히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개척교회 목회정보 원문보기 글쓴이: 선한목동-최성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