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열려라 에바다 2024. 3. 27. 08:18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진리의증인추천 2조회 9124.03.25 05:55댓글 0
 
 

메시지51(마태126,6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대로 하여 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21:1-11)


서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명칭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한 데서 유래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온 예루살렘 사람이 열렬히 환영했지만, 불과 엿새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최후의 사역인 대속(代贖)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대속이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 시간에는 “유월절 어린양”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5:7,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유월절 양’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양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치실 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이 무엇이냐? 이스라엘 사람 집의 좌우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입니다. 좌우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출애굽기 12),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을 때 애굽과 가나안에 7년 흉년이 들었습니다(창세기 41장 이하). 요셉은 가나안에 있는 그의 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형제와 가족 75명을 애굽으로 초청했습니다. 애굽으로 간 야곱의 후손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는 환영도 받고 대접을 받았지만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한 왕이 애굽을 다스리면서, 야곱의 후손은 애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심한 압제와 착취에 시달렸습니다. 고난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은 “여호와가 누구냐? 나는 여호와를 모른다”고 이스라엘 민족을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대한 심판으로 애굽 사람들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심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이 무엇이냐? “유월절 어린양의 피”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린양을 잡아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치실 때 애굽 사람의 각 가정에 죽음의 천사를 보내셨는데, 좌우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들어가지 말고 넘어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페사흐 פסה)로 번역된 말은 ‘넘어 지나가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에 비유하신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유월절 양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타실 나귀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의 등에 폈고, 군중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가실 길에 폈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 가지를 베어서 길에 깔았습니다(7-9). 그리고 또 많은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예수님이 밟고 지나가시게 한 것은, 복종의 뜻으로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인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9장에 보면 아합 왕의 신하 중에 ‘예후’라는 장수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한 선지자가 찾아 와서 예후와 조용히 만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후와 함께 있던 친구들이 물러가자, 선지자는 예후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으니 너는 ‘아합’의 집을 다 죽이고 멸하라”는 말을 하고 급히 떠났습니다. 선지자가 떠난 후에 친구들이 예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예후는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머리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후의 친구들은 급히 그들의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예후는 왕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옷을 벗어 옷 위에 앉게 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행위는, 복종의 표시로 “당신은 우리들의 왕”이라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오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짐승 중에 발굽이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은 식용으로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나귀는 발굽이 갈라지지도 않았고 새김질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식용으로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귀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나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말과 나귀는 초식동물로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동물이라면, 나귀는 서민적이고 천한 동물입니다. 또 나귀는 식성이 좋고 소화력이 왕성해서 나무껍질이나 거친 먹이도 잘 먹지만, 말은 거칠고 좋지 않은 먹이는 먹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같이 자연환경이 척박한 나라에서는 말보다 나귀가 기르기 쉽습니다. 그리고 나귀는 주인을 등에 태워 이동하기도 하고, 짐도 실어 나르고, 좁은 길과 험한 길도 주인이 끌면 잘 따라갑니다. 그 결과 나귀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보다 5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스가랴 9:9).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새끼나귀를 타시고 믿는 자들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말은 힘이 세고 잘 달리기 때문에 전쟁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나귀는 힘도 약하고 걷는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왕으로 오셨고, 겸손한 왕으로 오셨으며,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백성답게 겸손하고,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조성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영혼의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9절에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에 대한 호칭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열렬히 환영한 것입니다. 호산나란 말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와 찬미에 사용되었는데 “지금 구원하소서” 혹은 “이제 구원하소서”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에 처한 사람들이 그들의 신이나(하나님) 왕에게 도움을 청할 때 호산나를 외쳤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과 왕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릴 때,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열렬히 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영혼의 메시아가 아니라 지상의 메시아입니다. 지상의 메시아가 무엇이냐?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고 채워주는 메시아가 지상의 메시아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그들의 국가적 소망이며 민족적 기다림이었습니다. 문제는 메시아의 성격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영혼의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영혼의 메시아가 아니라 지상의 메시아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지상의 메시아를 원했느냐? 이스라엘의 불행한 역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우리나라가 930번의 외침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이스라엘은 우리나라보다 더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전쟁과 포로와 식민지 지배와 나라를 빼앗긴 불행과 비극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에 끝없이 침략과 수탈을 당했고,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방랑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암울하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면서 유대인들은 강한 국가와 강한 민족을 꿈꿨고 그 꿈과 기대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로 귀결되었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와 강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다린 지상의 메시아는 불행한 이스라엘 역사와 유대인의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것으로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불행한 역사는 유대인의 우상숭배와 범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인데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손에 들고, 그들의 옷을 벗어서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영했지만, 그들의 환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주실 영혼의 메시아가 아니라, 지상의 메시아에 대한 환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며, 그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메시아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아를 죽이고 신앙에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릇된 메시아관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인생관이 있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관이 있고 메시아관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신앙관과 메시아관이 결정됩니다. 잘못된 신앙관과 그릇된 메시아관을 가지고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죄와 구원과 영생입니다.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보내주신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사랑과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영혼의 메시아로 오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메시아가 아니라 영혼의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물질과 권력과 명예도 주실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참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죽음과 함께 우리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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