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예레미야, 애가

열려라 에바다 2024. 4. 23. 16:21

예레미야, 애가

 

1장 : 예레미야의 소명과 하나님의 격려1. 선지자의 배경(1-3)① 선지자 개인의 출신 배경(1)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가 제사장의 일을 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정의 신앙의 배경은 선지자로서 그의 예언에 바탕이 되고 있다.

② 선지자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역기간(2-3)

예레미야의 시역은 요시야의 종교개혁 시기에 시작되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에 그 개혁은 동기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퇴색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시대적인 배경 하에서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이해해야 한다.

2.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격려(4-19)① 예레미야의 소명 및 사역의 특성(4-10)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하에서 세워진 선지자이다. 그의 사역은 유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자신은 아이라고 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내세워 거절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명령하시며 그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의 손길로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므로 그의 입에도 힘을 더하신다.

 

예레미야의 메시지의 핵심은 파멸과 회복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초반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하게 선포했지만, 후반기에 가서는 하나님의 회복을 외쳤다. 10절에서 4 마디의 파괴적인 말과 2 마디의 건설적인 말이 그의 메시지의 특징이다.

②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유다에 대한 심판 선언(11-16)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은 두 가지 환상의 내용을 통하여 설명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상징들은 하나님의 의지와 약속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시행되는지를 하나님께서 직접 지켜보시겠다는 의미이다.

 

⑴ 살구나무 환상(11-12)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살구나무는 싹이 트고 열매 맺는 나무 중에서는 1년 중 가장 이른 때에 잎과 꽃을 터뜨려 봄을 알리는 것과 같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신속히 성취될 것이다.

 

⑵ 끓는 가마의 환상(13-16)

 

두 번째 환상은 유다의 언약 파기, 곧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참혹한 재앙으로 귀결됨을 의미하고 있다. 이 예언은 결국 유다 북쪽 바벨론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될 것을 예고한 것이다.

③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격려(17-19)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외칠 것을 명하신다.

 

2장 ; 유다의 죄악에 대한 고발1. 과거의 이스라엘과 하나님 간의 관계(1-3)① 혼인관계(1-2)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누리게 된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들이던 때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혼인관계로서 신부가 자기 남편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르며 새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② 첫 열매(3)

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수확하신 첫 열매로서 ‘하나님의 성물’로 구별되었다. 마치 수확의 첫 소산이 하나님의 몫으로서 오직 그분에게만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첫 열매로서 하나님의 소유였다.

 

2. 배도의 성격과 특성(4-28)① 조상의 죄악과 현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4-13)

이스라엘 조상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하였다.

그리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신 아닌 것을 신과 바꾸었으며,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였다. 예레미야는 그 죄악을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렸으며, 쓸모없는 웅덩이를 파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고 진단하였습니다.

② 현재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상태에 대한 질문과 그 결과(14-19)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을 의지하는 유다백성들은 그 결과 포로가 되었고, 거하던 땅이 황무하게 되었으며, 도움을 요구하던 애굽에 의하여 도리어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버림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에 대한 형벌이다.

③ 유다의 배교행위(20-28)

⑴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는 짐승(20) - 언약 파기에 대한 묘사

⑵ 행음하는 여인(20) - 우상숭배

⑶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21) -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함

⑷ 발 빠른 젊은 암 약대(23) - 불순종

⑸ 성욕에 헐떡이는 암나귀(24) - 우상숭배

⑹ 붙들려 수치를 당하는 도적(26) - 환난 날에 철저히 수치를 당할 것임

 

3. 공의의 심판(29-37)

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29-32)

② 회개치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심판의 책임을 돌리는 이스라엘(33-37)

 

3장 : 불신실한 유다의 모습1. 유다의 영적 간음(1-5)① 유다의 행음(1-2)

유다의 우상숭배는 곧 간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혼인 관계이기에 우상숭배를 저지른 것은 곧 간음죄에 해당한다. 이는 우상숭배를 자행한 유다가 마치 음행을 저지른 여인이 다시는 본 남편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결국 유다는 언약 백성으로서 자격을 상실할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② 회개치 않는 유다의 완악함(3-5)

예레미야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들에게는 영원한 안전이 보장된다는 백성들의 생각을 질타하고 있다. 그들은 왜곡된 소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죄악 자체를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을 합리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예배에 형식적으로만 참여하고도 하나님이 자신들의 보호자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결국 유다는 거짓된 성전신학과 제사의식에 의하여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를 상실하였다.

 

2. 유다의 완고함(6-10)①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유다의 목격(6-7)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모든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서 행해졌다. 북이스라엘은 이방 제사에 많은 매력을 가졌으며 직접 이방 제사를 행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유다도 그것을 목격하였다.

② 북이스라엘의 패망을 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유다(8-10)

유다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너무 가볍게 취급하였다. 따라서 언약에 명시된 하나님의 요구사항들을 업신여기게 되었고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국민 정서에는 변화를 창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3. 회개에 대해 약속된 축복(11-25)① 유다가 회개할 때 받을 축복(11-18)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돌아오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죄를 자복하라고 전하고 있다.

 ②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는 긍휼의 하나님(19-25)

19-20 –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과 진노

21 -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22a - 회개에로의 요구

22b-25 - 회개하여 돌아온 이스라엘의 고백

 

4장 :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1. 진정한 개혁의 모습(1-4)① 거듭되는 회개 요청(1-2)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간절한 돌아오라는 외침을 던지고 있다. 돌아온다는 것은 곧 회개를 말하는 것으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흔들리지 말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면 곧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다.

② 참된 개혁의 양상(3-4)

⑴ 농사에 관한 비유로 농부가 기경하지 않은 땅에는 씨앗을 뿌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축복의 씨를 뿌리지 않는다.

 

⑵ 할례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가죽의 표피를 베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 가죽을 베고 나에게 속하라고 하십니다. 외형의 할례만으로 하나님께 속하는 형식적인 모양이 아니라 참으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내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마음의 변화,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 임박한 심판의 경고(5-31)① 임박한 심판의 경고(5-18)

⑴ 외부 침략에 대한 선언(5-13)

 

유다에게 다가오는 파멸의 경고가 나팔을 부는 것과 견고한 성읍으로 피난하기를 요구하는 사실로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열방을 치는 나라가 일어날 것이며 그들로 인하여 땅이 황폐케 될 것이며, 왕과 모든 백성이 깜짝 놀랄 것이며, 생명에 위협이 올 것이다. 곧 멸망할 것이다.

 

⑵ 회개를 호소함(14-18)

 

하나님께서는 군대를 보내셔서 유다를 징벌하도록 하셨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재앙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유다에게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있다. 예루살렘이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긴박한 운명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② 심판의 광경(19-31)

⑴ 선지자의 번민(19-22)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슬픔을 볼 수 있는 본문으로서 이런 슬픔의 원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 지각의 부족, 미련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크게 아파하고 있다.

 

⑵ 혼란과 파멸의 시간(23-32)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5장 : 유다의 전적 부패와 심판의 도래1. 철저히 타락한 유다(1-9)① 유다의 철저한 타락(1-3)

이 성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이 성을 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그 성이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다면 유다는 의인 하나가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② 유다 지도자들의 영적 빈곤과 장래의 파멸(4-6)

유다의 죄는 비천한 자이며 우준한 자로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 법에 위반하여 많은 죄를 범하였고, 패역으로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의 심각한 부패를 알 수 있다.

③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7-9)

하나님을 버린 자들을 보수 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2 심판의 성격(10-19)① 유다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자만에 빠진 것으로 인하여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다(10-14)

유다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재앙과 기근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어 했다. 이런 유다의 자만에 하나님은 불이 나무를 사름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② 그 심판을 수행하기 위하여 도래할 북쪽의 적(15-17)

하나님이 삼판을 수행하기 위하여 알지 못하는 한 나라를 세워서 그들로 유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③ 심판의 양상과 결과(18-19)

이방 신을 섬기므로 받는 심판은 너희 땅인 아닌 곳에서 이방인을 섬기게 될 것이다

 

3. 심판의 원인(20-31)① 하나님이 삶의 원천이고 생명유지의 근본임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유다의 우매함(20-25)

무감각한 삶으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으며,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② 몇몇 특정 범죄들을 지적하므로 언약백성으로서 도리를 망각한 상태를 지적(26-29)

사람들을 잡으며, 속이며, 송사를 공평치 않게 하므로 죄악을 행하고

③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30-31)

선지자는 거짓을 예언,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백성들도 그것에 만족하는 영적인 타락에 이르고 있다.

 

6장 : 유다에 대한 심판의 확실성1. 바벨론의 유다 침입(1-8)① 더욱 임박한 심판의 사실(1-5)

성전이 존재하는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는 대단히 좋은 곳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북으로부터의 재앙이 임하여 긴박한 상황으로 변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바벨론의 모습은 욕망에 가득차서 강한 햇빛으로 인하여 전쟁을 하기에 적당치 않은 오후라도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② 적의 도래를 죄를 지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지(6-8)

유다의 징계의 두 가지 원인

 

대 사회적인 범죄 행각(7) -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샘에 비유해서 악을 계속하여 만들어 내는 소굴로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죄 없는 백성을 억압하고 강포와 탈취를 통하여 율법을 잃은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는 종교적인 범죄(8) -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하여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상의 도덕법을 거부하고 포기하였다.

 

2. 유다의 죄에 대한 탄핵(9-21)① 부패한 민족에게 임하는 심판(9-15)② 심판의 원인으로서 유다의 부패한 종교의식(16-21)

 

⑴ 유다의 배교(16-17)

 

⑵ 하나님의 법을 거부했음(18-20)

 

⑶ 최종적인 멸망 선언(21)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의 상실(16)

회개하라는 선지자의 호소를 거부하고 거짓 평화에 안주(14)

 

위선적인 제사의식(20,21)

 

3. 심판 날의 참상(22-30)① 북쪽에서 오는 강하고 무서운 적(22-26)

다가오는 바벨론 군대는 잔인하여 사로잡힌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므로 유다 백성은 마치 해산의 고통처럼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마치 외아들을 잃어버린 자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② 유다의 극에 달한 패역(27-30)

유다의 악은 결국 내어버린 은과 같이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은 자가 되고 말 것이다.

 

7장 : 위선적인 성전 예배에 대한 질책1. 거짓된 성전 제사(1-15)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선언(1-7)

하나님의 전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일상에서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곳이 여전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에 속지 말고 너희 행위를 바르게 하라. 공의를 행하며, 연약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며,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며, 다른 신을 쫓지 말라. 그리하여야 내가 이곳에 거하겠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있는 갇히신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보고 알고 계신 살아계셔서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② 민족의 배도와 함께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거부(8-12)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 줄 아는 백성들의 어리석음

③ 심판의 공표(13-15)

온갖 죄악을 행하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다를 향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처럼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2. 일상생활에서의 불순종(16-28)① 하늘 황후에게 제사를 드림(16-20)

유다의 죄악은 온 식구들이 동원되어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우상숭배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예레미야에게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 것을 명령하시며, 유다의 온 땅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② 희생 제사보다는 순종을(21-28)

유다가 의식 규례에만 치우치는 것을 보시며 마치 의식 준수가 선민의 표이며 구원의 길인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을 지적하며 오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백성의 절대 조건임을 지적하고 있다.

3. 유다 내의 거짓 종교(29-34)① 예루살렘의 구체적인 범죄로서 힌놈 골짜기의 사당 건축(29-31)

언약 백성인 유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가증스러운 행동으로서 십계명에 대한 거부이다. 더욱이 유다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이름 불리는 곳에서 우상숭배를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모욕이며 반역이다.

② 우상숭배에 대한 보응으로 임할 유다의 심판(32-34)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장소들은 모두 살륙의 장소로 변하게 되며, 대부분의 시체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방치되는 참혹한 상황에 이를 것이다.

 

8장 : 완고한 백성의 비극적인 파멸1. 유다의 재난과 그 이유(1-12)① 유다가 받을 재난(1-3)

7장에 이어서 계속하여 유다에 일어날 재난에 대하여 말하기를 유다의 모든 묘가 파헤쳐지며 뼈가 땅에 뒹굴 것이지만 그들이 섬기던 천체의 우상들은 무관심하게 냉정하게 바라만 볼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 내리는 형벌보다 살아남은 자가 받을 형벌은 더 비참할 것이다.

②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유다(4-7)

사람들은 누구든지 넘어지면 일어서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릇된 길에 빠져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짐승들도 때와 시기를 아는데 유다는 하나님의 율례를 알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③ 유다의 영적 지도자들의 범죄(8-12)

유다의 파멸은 영적 지도자들의 율법에 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언약 공동체내에서 율법을 복사하고 해석하던 서기관들이 율법을 잘못해석하고 거짓되게 기록하므로 백성들은 무지와 심각한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2. 임박한 심판에 대한 재확인(13-17)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비유(13-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삼으셨다. 그런데 그곳에 열매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면 번영과 축복이 있지만 반대로 언약을 파기하면 온갖 저주가 임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② 북방으로 부터 오는 적과 하나님의 선언(16-17)

북방으로 부터 노도처럼 달려오는 적들은 유다를 삼킬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뱀들처럼 이스라엘을 물 것이다.

 

3. 유다를 위한 애가(18-22)① 유다 백성과 그 땅에 대한 예레미야의 굽힘 없는 충성(18)

유다의 파멸에 대한 예레미야의 애타는 마음은 끝이 없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으며, 그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과 충성심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예레미야는 슬픔과 한탄 가운데 번뇌할 수밖에 없었다.

② 유다백성을 꾸짖는 부분(19)

왜 우상을 숭배하므로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느냐?고 꾸짖는 말씀.

③ 현실적으로 드러난 재앙을 돌이키지 못함에 안타까워함(20-22)

이스라엘에게 실질적으로 임한 재앙을 슬퍼하는 예레미야.

 

9장 : 유다의 파멸에 대한 애가1. 유다의 뿌리 깊은 죄악상(1-9)① 유다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을 인식하면서 그 슬픔을 토로(1-5)

예레미야는 유다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유다의 파멸을 예언하며 슬픔과 절망에 가득 차 있다. 유다에 대한 파멸을 예언하는 예레미야는 차라리 광야로 도망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유다의 멸망에 대하여 당연함을 말하고 있다. 거짓이 넘치고, 진실하지 않고, 악에서 악으로 행하고, 하나님을 알지 않고, 서로 속이며 비방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는 백성들이라고 죄악을 알리고 있다.

② 유다 백성들의 심판을 고지하고 하나님의 신탁(6-9)

하나님은 하나님을 잊고 범죄한 백성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서는 해를 도모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하여 벌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2. 율법에 대한 불순종(10-16)① 유다의 패망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10-11)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생명과 재산이 전반적으로 파며할 것이다. 가축들이 풀을 뜯는 광야와 산과 목장까지도 완전히 황폐하여 가축 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

② 유다의 언약파기(12-16)

가나안 땅의 이런 황폐는 유다 민족의 추방은 철저하게 우상숭배에 기인한다. 그들은 조상이 가르쳐 준대로 바알을 쫓았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랐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거부이며, 그 결과 유다는 열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3. 언약 백성의 본질(17-26)① 예루살렘에 대한 애도의 노래(17-22)

하나님께서 애곡하는 것이 직업인 여인을 불러다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곡하도록 하라고 명하셨으며, 그 여인들은 딸들에게도 동일하게 애곡하는 것을 가르쳐서 “애곡하게 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울음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서 철저한 파괴와 살륙을 자행한 후에 끝날 것이다.

바벨론은 유다를 가혹하게 살해할 것인데 마치 낫으로 곡식을 베어 밭에 둔 것처럼 죽은 시신들이 널브러질 것이다.

② 유다의 언약 백성에 대한 오해와 참된 언약백성의 위치(23-26)

하나님은 유다에게 인간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명하였다. 하나님은 육체의 할례 외형적인 할례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그 내면을 보시는 분이시다.

10장 : 우상숭배에 대한 고발1. 우상숭배의 무익성(1-16)① 우상의 피조성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1-5)

당시에 우상숭배는 보편화 실체화되어 일반 대중들의 심리 속에 하나의 종교적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상의 무가치함을 예레미야는 지적하고 있다. 거짓 우상은 자기를 무시하는 자를 해칠만한 힘도 없고, 추종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힘과 능력도 가지지 못한 인간의 조각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② 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에 대비되는 우상(6-10)

우상은 사람이 온갖 물품을 동원하여 정교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시는 하나님이요 영원한 왕이시dy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격을 가진 분이시다.

③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우상의 무능력 대조(11-16)

사람이 만든 우상은 거짓이며 그 안에는 생기가 없다. 그것들은 헛 것이며 망령되이 만든 것이니 징벌할 때 멸망할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으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2. 임박한 멸망의 고통(17-22)① 심판으로 인한 유배선언(17-18)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인내를 중단하고 그들을 심판의 자리로 내어던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믿을 만한 때에, 회개할 만한 때에 믿고 돌이켜야 한다.

② 훼파되고 있는 유다의 참상을 슬픈 마음으로 진언(19-22)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면한 민족의 고난을 보면서 한탄할 수밖에 없다. 우둔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참조하지 않고 임의대로 처신한 교만한 유다는 결국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흩어진 양떼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3. 선지자의 기도(23-25)① 예레미야의 인간 이해(23)

자기 민족을 위한 탄원의 기도를 드리면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② 열방으로 인한 유다의 심판을 언약과 연관 지어 설명(24-25)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열방은 심판의 대상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배도로 말미암아 열방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11장 : 유다의 언약파기1. 언약을 상기하라는 선지자의 권면(1-17)① 언약에 있어서의 저주(1-5)

언약의 말씀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 언약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쫓아 행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실 것이다.

② 언약의 명령들을 청종치 않음(6-8)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 언약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언약을 지켜 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언약대로 저주를 받게 되었다.

③ 우상숭배를 자행함(9-10)

이스라엘은 단지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기까지 하는 배반을 하였다.

④ 다가오는 심판(11-14)

그 결과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이제 그들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들이 우상에게 아무리 절을 하여도 우상이 결코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우상의 극치는 성마다 거리마다 우상의 제단을 쌓을 정도로 우상숭배가 극성을 부렸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⑤ 심판의 원인으로서의 우상숭배(15-17)

우상숭배는 곧 행음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온갖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이 세운 푸른 감람나무가 되었으나 가지가 꺾여서 열매 맺지 못하게 되었다. 바알에게 분향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2. 예레미야 암살 음모(18-23)① 예레미야에 대한 암살 음모와 이로 인한 선지자의 요청(18-21)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그들의 죄악을 꾸짖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언한다는 이유로 그의 생명을 해할 음모를 꾸몄다. 하나님은 이런 음모를 비밀스러운 경고를 통하여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 결과 예레미야는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보수를 요구하는 탄원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② 아나돗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22-23)

예레미야에 대한 아나돗의 살해 음모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를 청년들은 칼에 죽고,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12장 : 악인의 궁극적인 종말1. 선지자의 질문(1-6)① 예레미야의 하나님께 대한 질문과 항변(1-4)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리에 대해서 재차 묻곤 하였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죄를 근본적으로 미워하신다면 왜 사악한 무리들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는 것인가 묻고 있다. 예레미야는 악인들의 번성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심고 뿌리내리고 열매 맺게 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지 않으므로 심판하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악인의 형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하나님의 공정한 판결이 역사 현장에 드러나도록 요청하고 있다.

② 하나님의 응답(5-6)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만일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장래에는 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비유(경마와 도보횡단)를 사용하셨다. 만일 예레미야가 사람들과 도보로 경주하다가 지쳤다면 나중에 어떤 말과 경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범람한 요단 강물에 던져졌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평화스러운 때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묻고 있다. 아울러 현실적인 악인들의 득세가 더욱 심해질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2. 재앙선언의 반복(7-13)① 유다를 대적의 손에 넘기신다(7-9)

하나님은 유다를 내 집, 내 산업, 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버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 아픔을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 그것은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다.

② 그로 인해 황폐케 될 유다의 현실(10-13)

결국 유다의 온 땅이 황폐케 될 것이며, 모든 혈육 있는 자들이 평안치 못할 것이며 땀 흘려 수고하여도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다.

3. 회복에 대한 약속(14-17)① 유다의 회복 선언(14-15)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한 이방인들은 그 땅에서 몰아내시고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② 이방의 회개와 구속(16-17)

하나님은 유다를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로 하나님을 믿게 하는 역사를 이룰 것이다.

13장 : 다가올 심판에 대한 비유적 경고1. 썩은 베띠의 비유(1-11)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예레미야의 상징적인 행동(1-7)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베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고 물이 닿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사실 베띠는 대제사장이 띠는 허리띠로서 유다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베띠를 허리에 두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한 번 두른 베띠를 유브라데 강가까지 가서 바위틈에 숨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러 날 후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묻어 두었던 그 띠를 다시 찾으라고 하셨다. 예레미야가 장식 띠를 찾았을 때 그 띠는 썩어서 거의 못쓰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를 멸망시킬 하나님의 뜻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② 선지자의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뜻 해설(8-11)

그 상징의 핵심은 마치 베띠가 썩게 된 것과 동일하게 유다와 예루살렘의 엄청난 교만과 자랑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즉 언약의 백성이 처음 부름 받았을 때에는 허리에 둘려진 띠처럼 순수하고 변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허리에서 벗겨져 땅에 묻힌 띠처럼 이스라엘과 유다가 거짓 신들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났을 때 비참한 파멸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2. 포도주 병의 비유(12-14)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의미하는 포도주를 행복과 열락의 포도주로 잘못 알고 마심으로 결국은 그 술에 취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다.

3. 최종 경고와 애가들(15-27)① 유다 백성에 대한 호소와 마지막 경고(15-17)

예레미야는 유다에게 다가오는 새벽빛이 심판의 전조가 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흑암 속에 새벽을 기다리는 행위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유다에게는 오히려 멸망의 서곡이다.

② 왕과 왕후에 대한 애가(18-19)

예레미야는 왕과 왕후에게 겸손하도록 권고한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느부갓네살 왕이 지위를 박탈할 때 파멸될 것이므로 미리 권좌에서 내려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를 무시한 왕은 결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수욕을 당하게 된다.

③ 예루살렘의 철저한 배도적 성격과 그에 따른 처벌(20-27)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은 북방에서 다가오는 바벨론에 의한 것이다.

14장 : 유다를 위한 예레미야의 중보기도1. 가뭄으로 인한 애가와 하나님의 응답(1-16)① 가뭄으로 인한 피해(1-6)

가뭄과 저주는 언약적 저주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이제 실제로 가뭄의 재앙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고통의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비는 그치고 저장된 물은 말라버렸다. 귀인들은 종들을 시켜 우물에서 물을 떠오도록 명했으나 빈 그릇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땅은 비가 오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갈라지기 시작하였고 농부들은 곡식이 말라죽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② 선지자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7-12)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악을 보지 마시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그 발을 금하지 않고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그 죄에 따라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들이 금식하며 예배를 드려도 받지 않고 염병으로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이렇게 되는 것이다.

③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과 그에 따른 대가(13-16)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며,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않는다고 예언을 하였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들도 칼과 기근으로 망할 것이다.

 

2. 애가와 탄원(17-22)① 유다 곳곳에 미친 심판의 참상(17-18)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심판을 생각하며 커다란 슬픔에 잠기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다가올 멸망에 대하여 외칠 때마다 계속적으로 눈물을 흘렸다. 사실 예루살렘 성읍은 마치 중한 병에 걸려 곧 죽게 될 처녀 딸과 같았다. 그리하여 선지자는 유다의 고난을 인식하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울고 있다. 예루살렘과 그 주의에 있는 변방 어디를 가든지 온통 칼로 살육당한 시체로 덮여 있으며, 기근의 침식으로 인하여 점점 더 쇠퇴해졌다.

② 유다의 계속적인 죄악을 인정하면서 이전의 언약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이루어지기를 바람(19-22)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간섭해주시기를 간구했으나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지 못했다. 유다는 하나님의 의무를 상기시키려고 했으나 반대로 언약 백성으로서의 의무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진실 된 회개와 행동으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단지 피상적인 후회에 그쳤다. 결국 유다는 가뭄을 그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뢰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으므로 심판을 돌이킬 수 없었다.

15장 : 선지자의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1. 피할 수 없는 파멸(1-9)① 전장의 후반부에 드러난 예레미야의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1-4)

하나님은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유다 백성은 네 가지 선별적인 운명에 처할 것이다. 재앙으로 인한 죽음, 칼로 인한 죽음, 기근으로 인한 죽음, 포로로 잡혀감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므낫세가 통치하면서 예루살렘을 너무 우상으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② 유다의 파멸의 심각성과 참상(5-9)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인 유일하신 하나님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심판하셔서 농부가 곡식을 까부르듯이 예루살렘을 까부러서 겨와 같은 악인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셨다. 예루살렘은 과부들이 모래알 보다 많아질 것이고, 일곱 아들을 소유한 어머니들은 노년에 기쁨을 누릴 것을 기대했으나 그것도 소용없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영광이 치욕으로 존귀가 멸시로 바뀌게 된 것이다.

2. 선지자의 고민과 하나님의 위로(10-21)① 선지자의 첫 번째 탄식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10-14)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로 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돈을 꾼 적도 없고, 꾸어주며 고리대금업을 한 적도 없는데 백성들은 그를 저주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탄식하기를 자기가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이 땅의 모든 백성이 탈취를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환난 때에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고 복을 주셔서 사람들이 그에게 간구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하셨다.

② 선지자의 두 번째 탄식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15-21)

예레미야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을 요구하고 호소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자들이 있고, 온갖 박해를 당하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마저 상실한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는데 고통이 끊임없이 계속되며 상처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다.

 

이런 탄식을 하는 예레미야를 향하여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부르시면서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라는 말씀으로 백성들의 속이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시며 그들은 향하여 돌아가지 말고 그들을 돌아오게 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이 따르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시고 구속하신다는 것이다.

16장 : 심판의 전조와 궁극적인 회복1. 심판의 전조(1-13)① 선지자의 행동을 통하여 임박한 유다의 멸망을 경고(1-9)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하여 선지자가 지켜야할 금기들을 명하셨다.

 

첫째는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다가오는 재난을 통하여 모든 정상적인 관계가 파괴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선지자의 삶은 황폐한 언약 백성의 운명에 대한 가시적인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상가 집에 들어가지 말며 울거나 동정을 보이지 말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표현을 금지시키므로 하나님의 복과 자비와 긍휼이 끊어졌음을 보여주신다. 또한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때 그 어느 누구도 슬픔을 위로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셋째, 잔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행복의 상징인 결혼식의 출입을 금지시켜 유다가 현재 누리고 있는 기쁨이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임을 알려준다.

 

② 다가오는 재앙의 원인(10-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가 근본적으로 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사악한 마음으로 완고하게 행동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2. 심판 이후의 회복의 성질① 포로 이후에 있게 될 새로운 출애굽(14-15)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의 심판이 영속적인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하나님의 복을 다시 받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유다 백성은 애굽에서 보다 바벨론에서 훨씬 큰 탄압을 받지만 반드시 그 땅에서 구원을 받을 것임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적인 계획에 의거하여 당신의 백성을 온전히 구원해 나가신다.

 

② 공의의 심판의 성격과 그 이후에 발생케 될 열방의 구원(16-21)

⑴ 심판의 결과와 원인(16-18)

 

회복은 미래에 있게 될 일이나 현재의 백성들은 당장 그 땅에서 추방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북쪽 침입자를 그물로 유다를 잡아내는 어부로, 숨어있는 자는 찾아내서 궁지로 몰아넣는 사냥꾼으로 묘사한다. 즉 다가올 심판을 벗어날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이 가증스러운 우상으로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⑵ 심판 이후에 있을 열방의 구원(19-21)

 

예레미야는 마지막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보며 이제 온 세계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 얻는 날이 이를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17장 :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1. 심판과 그 결과들(1-13)① 유다의 죄와 그 결과(1-4)

유다 사회는 아이들까지도 아세라 목상과 산당에 절할 정도로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었다. 이런 우상숭배는 온 유다 땅을 뒤덮고 있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유다의 온 땅은 약탈과 노략을 당하고 알지 못하는 땅에 노예로 끌려갈 것이다.

② 유다가 참으로 선택해야 할 길(5-8)

저주의 길 -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는 저주를 받는데, 그 결과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며, 버린 땅에 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축복의 길 - 여호와를 의지,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는데, 그 결과는 가무는 해에도 푸르며,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③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마음(9-13)

만물보다 거짓된 것은 마음인데 하나님은 각자의 마음을 살피시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다 망할 것이다.

2. 예레미야의 애가(14-18)

본 단락은 선지자의 권위와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를 무시하는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해 극심한 재앙을 바라보며 예레미야가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암담한 상황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시라는 고백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선지자의 탄원은 이전의 애가들과는 양상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자신에 대한 음모와 핍박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항변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이후이기에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3. 안식일 성수(19-27)① 유다 백성들에 대한 안식일 성수 선포와 그 선언에 대해 반역하는 백성들(19-23)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의 모든 문 입구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준수할 것을 외치라고 하셨다. 백성들은 불순종했던 선조를 본받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명하였다. 안식일은 언약백성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자기 고백이다. 그러나 유다는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

② 안식일 성수로 인해 주어지는 축복과 그렇지 못한 경우에 임하는 파멸(24-27)

반면에 안식일 성수하는 곳에는 영원한 축복이 넘칠 것이다.

18장 :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1. 토기장이의 비유(1-12)① 토기장이 집에서 목격한 사실(1-4)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토기장이가 자기의 뜻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② 목격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5-12)

토기장이와 진흙은 하나님 자신과 유다 백성들과의 관계를 지칭한다고 말씀하셨다. 유다는 마치 하나님 손에 들린 진흙과 같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민족을 멸할 수도 있고 다시 세울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런데 예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계속된 반역으로 인하여 작정하셨던 복을 보류하시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신다. ‘너희가 만일 사악한 죄의 길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성들은 완악하여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거부하였다.

2. 심판의 선포와 백성들의 반응(13-23)① 유다백성의 심판(13-17)

언약백성 유다는 신랑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처녀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순결하게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오히려 우상 숭배를 자행하므로 몸을 더럽혔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받은 유다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더렵혀진 처녀와 같이 되었다.

유다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무가치한 우상을 섬김으로 목적 없이 헤매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그 땅을 더럽힌 백성들을 동풍처럼 흩으시고, 대적자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② 예레미야의 의분의 기도(18-23)

백성들의 음모를 전해들은 예레미야의 슬픔에 가득 찬 울분의 기도.

패역한 백성들은 위협적인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비난하고 헐뜯고 무시하면서 침묵을 강요하였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선지자의 생명을 취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비탄에 가득 찬 심정으로 대적자들의 비난을 들으시고 자신의 신실함을 기억하셔서 음모를 꾸민 자들을 심판해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이전에 예레미야는 동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으나, 이제는 진노의 시기에 반드시 처리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19장 : 깨어진 오지병의 비유1. 유다의 범죄 상황(1-9)① 하나님의 명령과 유다의 범죄 행각(1-5)

예레미야는 자신이 방문한 토기장이의 집에서 진흙으로 만든 옹기를 사고,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모은 후 힌놈의 골짜기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런데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공동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예레미야는 거기에서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우상숭배의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선포한다. 우상의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살육을 자행했던 높은 산당이 자리 잡고 있는 골짜기는 사악한 백성을 진멸하는 살륙의 골짜기로 바뀌게 될 것이다.

② 장래에 있을 처절한 심판(6-9)

예레미야는 다가오는 심판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백성들은 바벨론 앞에서 칼로 쓰러질 것이며, 그들의 시체는 새들과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은 심각한 고난을 겪게 되며, 놀람의 대상이 되고 조소와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유다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한 이방인들은 비방과 조롱을 일삼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백성들은 극심한 곤경에 처하게 되면 어처구니없게도 서로 잡아먹고 자신의 자녀까지 잡아먹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참담한 결과는 백성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인 것이다.

2. 하나님의 심판 선언(10-15)①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명령과 이에 대한 선지자의 순종(10-11)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더욱 극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오지병을 깨뜨리라고 명령하신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위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직접 구두로 전파되는 것과 같은 동일한 효력을 발생한다. 쓸모없는 그릇을 깨어버리는 토기장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유다 백성들을 철저히 멸망시킬 것이다.

② 지금까지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뜻(12-15)

예레미야는 도벳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성전 마당에 나아가서 유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선언한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반드시 멸망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전에서의 직접적인 심판 선언은 전례가 없던 것으로 당시 성전을 신성시하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경우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전마저도 파괴시켜 버릴 것이라는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가시적인 영원성과 이에 근거한 안전을 확신하던 유다에게는 아주 도전적인 내용이다. 이처럼 패역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유다는 선민으로서 모든 특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20장 : 핍박 속에서의 기도1. 바스홀의 핍박(1-6)① 예레미야에 대한 바스홀의 박해(1-3)

성전 뜰에서 유다의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선언을 들은 바스홀은 심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바스홀은 제사장이며, 성전과 그 경내에서의 질서를 관장하고 난동을 부리는 자들을 처리하는 감독관이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내용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성전내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예레미야를 붙잡아 40번 채찍질한 후 착고에 감금시켰다. 예레미야가 갇힌 곳은 베냐민 윗문으로 성전 경내에 있는 문으로 성문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들었다.

② 착고에서 풀려난 예레미야의 예언(4-6)

다음날 아침 풀려난 예레미야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분명하게 유다의 심판을 선언하였다. 선지자는 바스홀에게 ‘마골밋사빕’이란 상징적인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이름은 북방의 적을 언급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이름의 변경을 통하여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바스홀과 그의 친구들에게 두려움이 되시고, 온 유다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될 것을 분명히 선언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고난이 수반된다.

2. 예레미야의 기도(7-18)① 예레미야는 현재에 자기가 처한 상황을 심각한 것으로 진단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기대하고 있다(7-13).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깊은 마음속을 토로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함으로 백성들에게 조롱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항변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의 말씀이 언약 백성에게 당연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가오는 재앙과 파멸을 경고했지만, 그들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냉소와 경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도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핍박은 더욱 거세게 다가왔다.

 

예레미야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대적자들에게 복수해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힘 있는 용사와도 같이 자기와 함께 계시며, 자신의 편에 서서 싸우시므로 대적들이 궁극적으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아직 실제적인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② 유다의 현재 상황을 자신의 출생사실과 결부시켜 그 심각함을 토로(14-18)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던 예레미야는 다시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유다를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공의를 회복시킨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이 태어난 날이 저주 받기를 고대할 만큼 고뇌가 증폭되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랬으며, 차라리 모태에서 죽었으면 이런 고통과 슬픔을 맛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하였다. 이러한 선지자의 애타는 마음은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장 : 시드기야의 요구와 예레미야의 거절1. 시드기야의 요구와 하나님의 응답(1-7)① 예레미야로 하여금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억제하도록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기를 요청(1-2)

바벨론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의 존망의 위기에 처한 시드기야왕은 이제 자신이 핍박했던 예레미야에게 말기야의 아들 바스홀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기도를 요청한다. 여기서 왕의 방백 중 한 사람인 바스홀은 나중에 예레미야를 반역죄로 처할 것을 요구한 사람이며, 스바냐는 서열에 있어서 대제사장 스라야 다음의 두 번째 제사장으로 유다 최고의 종교지도자였다.

 

이들은 예레미야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과거에 히스기야 왕 당시에 앗수르의 침공을 물리친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도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물리치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시드기야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결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적인 재난을 극복하려는 인간적인 동기에서 출발한다. 결국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판을 선언한다.

② 하나님의 답변 진술(3-7)

시드기야의 구원요청에 대하여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의하여 참담한 재앙이 임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유다가 가지고 있는 전쟁 무기들로부터 등을 돌리시고 성 밖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모으실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유다의 구원자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심판자이시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안전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숨은 사람들은 무서운 재앙으로 죽게 되며, 살아남은 자들은 염병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괴될 뿐만 아니라 유다의 왕권도 소멸하고 성전마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시드기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패역한 유다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예레미야는 확언하고 있다.

2. 생명의 길(8-14)① 바벨론의 침공 속에 유다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8-10)

유다 백성들은 다가올 심판의 현실을 겸손히 받아들이도록 요청받는다. 만약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예루살렘 성 안에 남아있기를 선택하는 자들에게는 처절한 죽음이 주어지게 된다. 반면에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항복하는 자들은 생명이 보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예루살렘에 해를 입히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돌파구요, 언약 백성이 취해야할 바람직한 태도이다.

② 여전히 회개치 않고 있는 유다 왕족의 불신앙과 그의 인한 심판의 결과(11-14)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를 왕족을 중심으로 진술한다. 사실 유다의 왕이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약속의 땅에 공의를 실현시켜야 할 대리 사역자이다. 그러나 패망 시기의 유다 왕들은 정의를 베풀지 않고 오히려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짓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사 유다를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유다의 왕은 하나님께 복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자기 자신이 그 성을 안전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자만하였다.

결국 유다의 왕과 백성들의 불복종과 자만이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22장 : 악한 왕들에 대한 심판1. 유다 왕가의 성격(1-12)① 예레미야가 성전 문 앞에서 유다 왕가에 대한 말씀 선포 (1-9)

하나님은 왕을 위시한 모든 백성들에게 공의를 수행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언약공동체는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실행되는 장이어야 한다. 만약 공의가 드러나지 않고 압제와 불의가 만연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사실 하나님은 언약 공동체 내에서 연약한 자에 대한 압제가 사라지고 오직 긍휼이 실행되기를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실제로 받고 있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공의 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만약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준수한다면 지속적인 복을 받겠지만, 반대로 거역하면 멸망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를 준행하지 않으면 유다는 언약에 따라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② 언약을 위반한 실례로서 여호아하스 왕의 범죄를 언급(10-12)

요시야의 넷째 아들로서 차기 왕 여호야김의 아우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으나 부친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느고 2세에게 죽임을 당하므로 BC. 609년 백성들이 옹위하여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는 반애굽 정책을 시행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으나 대내적으로 여전히 열조의 악행을 행하여 통치 3개월 만에 바로느고 2세에 의하여 폐위되었다.

 

예레미야는 이에 대해 여호아하스가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없으며 애굽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제의 삶속에서 실천하지 않을 때 언약을 위반했다는 점에서는 우상숭배와 별 차이가 없다.

 

2. 부가된 왕들의 범죄(13-30)① 여호야김 당시의 범죄(13-23)

개인적인 이익에만 관심을 갖는 여호야김 왕은 호화 궁전을 짓기 위하여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백향목을 구입하는데 많은 돈을 낭비하면서도 백성에게는 무임으로 일하도록 강요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이기적인 여호야김을 아버지인 요시야와 비교하고 있다. 하나님의 목자로서 요시야 왕은 바르고 정의로운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과 궁핍한 사람들을 옹위해 주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오로지 더러운 이윤, 피 흘림, 억압 강요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의 백성들에 대한 억압으로 인하여 마치 나귀와 같이 장사되며, 또한 백성들은 전혀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② 여호야긴 당시의 범죄(24-30)

여호야김에 이어 왕위를 이어받은 여호야긴은 통치 3개월 만에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으로 유배되어 여생을 보낸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을 인장반지만큼 귀하게 여겼지만 그 죄로 인하여 인장반지를 빼앗겠다고 하셨다. 설령 여호야긴이 하나님께 중요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죄를 짓게 허락하지 않으시고 징계하는 편을 택하신다.

23장 :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승리1. 다윗 왕가의 회복(1-8)① 유다를 죄악의 길로 이끌었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질책(1-2)

예레미야는 유다의 악한 왕들을 하나님의 양을 파멸시키고 흩어지게 하는 악한 목자로 비유하면서, 선한목자를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언한다. 사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맡겨진 양들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학대하고 착취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못된 지도자들을 제하여 버리고 대신 흩어진 백성 가운데서 남은 자들을 모아 본토로 데리고 오실 것이며, 자신이 원했던 방법으로 백성을 보살피는 새로운 목자를 백성들 위에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②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왕을 통하여 몰락한 다윗왕가를 재건(3-8)

예레미야는 포로된 유다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참된 목자를 대표하는 영원한 목자이신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한다. 메시야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분으로서 지금까지의 유다의 왕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공평과 정의로 통치를 하게 된다.

 

이러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예표로서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사건은 너무나 극적으로 전개되어 첫 번째 출애굽 사건이 기억 속에 희미해질 정도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파멸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구원으로 연결될 것임을 분명히 제시한다.

2. 유다의 거짓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9-40)①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부패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계(9-22)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의 불신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예언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다고 단언한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가뭄의 저주를 내리셔서 땅이 갈라지고 시들게 되었을 때 거짓 예언자들은 죄로 인하여 가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을 악의 길로 끌고 갈려고 한다. 원래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영적 온도계로서 언약의 이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확신을 조장한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근본적으로 종교지도자들의 불신 태도에 기인한다. 그들은 바알을 의지해서 잘못된 길로 갔던 사마리아 예언자들의 길을 답습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쑥과 독한 물을 먹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배도에 대해 심판하신다.

② 거짓 선지자들의 헛된 몽사(23-3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능력을 분명히 제시한다. 하나님은 땅과 하늘에 편만하신 분으로 우주와 역사를 홀로 지배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계시는 결코 아무런 유익을 제공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잊도록 만들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만이 정확하며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고 반석을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이 힘이 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의 몽사의 헛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높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③ 거짓 선지자들의 죄와 그 영향(33-40)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엄중한 신탁이 무엇인지를 반문하고 있지만 그들의 불신에 대해 책망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탁을 찾았다고 말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신탁은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다를 버리셨으므로 다른 신탁을 주장하는 자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믿지 않고 다른 신탁을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명백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계속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의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4장 : 무화과 두 광주리 비유1. 제시된 환상의 모습(1-3)

① 환상의 내용을 서술(1-2)

 

② 이에 대한 예레미야의 대답(3)

 

본 단락은 제2 차 바벨론 포로 사건 이후 (즉 여호야긴 왕과 다른 예루살렘 거민들이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유배된 이후에) 하나님의 성전 앞에 놓인 상이한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이다.

 

그런데 첫 번째 광주리에 담겨져 있는 무화과나무는 대단히 품질이 좋고 잘 익은 것으로서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하였다. 반면에 두 번째 광주리에 담긴 열매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심히 썩어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평범한 사실을 보게 한 후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와 축복 아래 있는 선택된 광주리 속의 무화과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예루살렘에 남은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썩은 무화과로서 온 세상의 치욕거리가 됨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고 예루살렘에 살아있는 자신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와 은총 속에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2. 환상에 대한 해석(4-10)① 좋은 무화과 나무에 대한 해석(4-7)

하나님께서는 환상의 내용을 설명하시면서 좋은 무화과나무는 유다로부터 멀리 바벨론으로 옮겨가게 된 유배자들을 암시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대단히 경이로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하여 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지켜주심으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데려 오시리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그 때에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포로된 백성들의 귀환과 회복을 선언함으로써 절망 속에 빠진 백성들에 새로운 소망을 제공하고 있다.

② 나쁜 무화과나무에 대한 해석(8-10)

하나님께서는 나쁜 무화과나무는 시드기야를 포함하여 이스라엘과 애굽에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지상에 있는 모든 왕국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조롱을 당하며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회복의 조짐이 보일지라도 이 저주는 지속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심판의 도구들 (칼, 기근 재앙)을 보내실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끝까지 반항하는 자들은 일시적으로 재앙을 모면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

25장 : 바벨론 포로에 관한 예언1. 유다와 바벨론에 임할 심판(1-14)① 유다에 내려진 과거 예언을 돌이켜보고 죄악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임하게 될 심판을 언급(1-11)

⑴ 예언의 시기와 대상(1,2)

 

⑵ 예언 사역에 대한 회고(3,4)

 

⑶ 회개에 대한 요청(5,6)

 

⑷ 백성들의 반응(7)

 

⑸ 심판에로의 회귀(8)

 

⑹ 유다에 대한 심판 선언(9-11)

②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2-14)

본 단락은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중점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메시지는 느부갓네살 원년이었던 BC. 605년에 선포된 것으로서 지금까지 23년간의 예언을 총 결산하고 있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등 세 명의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심판을 예언했지만 그들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적으로 거역할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경고에 순응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 땅에 계속 거주하게 하시며 비참한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거듭 거부하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하신다. 특별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행한다는 맥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그 동맹국들을 완전히 진멸하기 위해서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이제 유다의 모든 성읍들은 황폐케 되어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가 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벨론으로 유배되어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70년이 다 된 후에 바벨론에 심판을 행하신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심판을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수행한 나머지 하나님의 성전의 기물을 파괴하는 죄악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일시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나 이제 죄악으로 인하여 유다와 마찬가지로 심판에 처하게 된다.

2. 열방의 심판 사실(15-38)① 전반부에는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언급(15-2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손에 잔을 들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 그 잔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사역은 보냄을 받은 모든 열방들에게 그 잔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첫 번째 나라는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열방들에게도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열방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토하고 쓰러질 것이며, 하나님은 이와 같은 환상을 통하여 죄악이 관영한 나라는 예외 없이 심판을 받게 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불의와 불신앙에 가득 찬 자들은 잠시 흥왕하는 것 같으나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한다.

② 후반부에는 전우주적인 심판이 설명(30-38)

예레미야는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계속하여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먹이를 덮치기 전에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하늘의 거룩한 보좌로부터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모든 열방들에게 벌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선포하신다. 특히 이 심판은 모든 열방을 삼켜버릴 강한 폭풍으로 묘사되고 있다. 살육이 곳곳에 퍼지게 되며 열방의 시체는 유다백성과 마찬가지로 땅에 묻히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정교한 그릇이 마루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듯이 열방의 지도자들이 철저히 파멸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도망갈 수 없는 파멸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땅을 파멸시키시며 열방을 황폐케 하실 것이다.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공의를 재판을 시행하신다.

26장 : 유다 백성의 타락상1. 성전설교(1-7)

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것을 명함(1-2)

 

② 그 예언의 말씀을 묘사(3-5)

 

③ 선포된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될 결과(6-7)

 

본 단락의 메시지는 본래 7-10장의 성전설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여기서는 유다 백성들의 메시지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지의 초점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함으로써 사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려는데 있다. 그래서 심판을 선언하면서도 만일 백성들이 지금이라도 범죄를 자각하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던 재앙을 취소하실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예루살렘 성전의 존재여부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종들인 선지자들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실로에서 있었던 성막에 재앙을 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철저한 회개만이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임을 깨닫게 된다.

2. 백성들의 반응(8-15)①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8-11)

본 단락은 예루살렘 성전 내에 있던 제사장들,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를 듣고 난 후 반응을 기술하고 있다. 특히 예레미야가 백성들로부터 당하게 된 고소의 죄명은 거짓 예언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과 성전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예언 때문에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째든 그 결과 예레미야는 법정의 재판에 회부되었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 그에 대한 예레미야의 입장(12-15)

예레미야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어서 심판의 메시지는 조건적인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지금이라도 백성들이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자기를 죽인다면 무고한 피를 흘리게 됨으로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3. 방백들의 변호 및 우리야 이야기(16-24)① 일부 방백들의 예레미야 변호(16-19)

예레미야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방백들과 모든 백성들은 제사장과 선지자들과는 달리 예레미야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으며 어떤 장로들은 미가의 말을 인용해 그 판결을 지원하기도 했다. 곧 70년 전 미가 선지자도 성과 성전에 대해 예레미야와 똑같은 예언을 하였는데 그 당시 히스기야 왕은 미가를 죽으려는 대신에 오히려 그 말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으므로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장로들은 유다가 히스기야의 전례를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② 우리야 선지자의 순교사건(20-24)

당시 선지자 중에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가 예레미야와 동일한 유다멸망을 선포했다. 여호야김 왕은 이 메시지를 듣고 우리야를 죽이려고 했다. 우리야는 이 음모를 사전에 알고 애굽으로 도피했다. 왕은 사람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우리야를 끌어내어 반역죄로 죽이고 시체는 평민의 무덤위에 던졌다. 이에 반해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그 어려움을 벗어났다. 예레미야는 외국으로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

27장 : 바벨론에게 항복 요구1. 줄과 멍에의 상징(1-11)① 선지자의 줄과 멍에를 통한 상징적인 행위와 이에 대한 해석(1-8)② 예레미야의 예언과 상충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9-11)

 

줄과 멍에를 통하여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임을 설명하고 있다. 바벨론의 멍에 아래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족속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칼, 기근, 염병 등으로 벌을 받게 된다. 이 사실을 언급한 후에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당시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반되게 바벨론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반란을 도모하는 민족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언약을 파기한 자들의 최후에 대해 경고하며, 더 나아가 남은 자의 구속을 계시하기를 원하신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이 열방을 정복하도록 역사하신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에서 평안하게 지내도록 보호하실 것임을 천명하신다. 당장은 괴롭고 힘든 포로생활이겠지만 곧 익숙해져서 어느 정도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이 예언은 바벨론이 앗수르의 혼합정책과는 달리 각 나라의 종교를 허용하고 공동생활을 보장하는 유화정책을 전개하므로 실현된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포로생활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더 나아가 포로 귀환을 통해 완전한 회복을 이루도록 하셨다.

2. 지도자들에 대한 권면(12-22)① 시드기야 왕에 대한 경고(12-15)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도록 권고한다. 선지자는 열방들에게 선포하였던 동일한 메시지를 유다 왕에게 전하고 있다. 먼저 시드기야가 바벨론의 멍에 아래 굴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바벨론을 섬기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선언한다.

 

또한 잘못된 사상을 불어넣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신뢰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유다의 멸망과 파괴를 부인하고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백성들의 구미에 맞는 말을 하여 언약 백성을 미혹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징계를 기꺼이 감수하고 바벨론을 섬김으로써 진정한 회복을 맞게 되기를 거듭 권면하고 있다.

②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거짓예언의 무익함을 설명(16-22)

예레미야는 예언의 대상을 왕과 제사장들에게로 옮기고 있다. 선지자는 바벨론의 멍에가 속히 끝난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유다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은 바벨론에 대한 반역을 부추겨서 결국 바벨론의 맹렬한 공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 예언자들은 바벨론으로 가져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이 곧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로 여호야긴 유배 시에 탈취되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남아있던 기구들까지 바벨론으로 옮겨졌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끝난 후에 되돌려 졌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히 성취되었다.

28장 :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립1. 예레미야와 하나냐와의 논쟁(1-11)① 하나냐의 예언(1-4)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4년 5월에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앗술의 아들 하나냐라는 선지자에 의하여 도전을 받게 되었다. 하나냐는 에스겔 선지자에 의해서 비난을 받은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형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9.6Km정도 떨어진 기브온에서 출생했다. 기브온은 요시야 왕이 제사장들에게 할당해 준 땅이므로 하나냐도 제사장 가문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하나냐의 메시지는 예레미야의 예언과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억압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유다와 열방들을 설득해서 바벨론에 항거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반란은 성공할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2년 이내에 하나님께서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다시 유다에로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잡혀간 여호야긴 왕과 다른 포로들이 곧 돌아올 것이라고 선포했다.

② 이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5-9)③ 하나냐가 예레미야를 박해(10-11)

 

예레미야는 하나냐와 상이한 예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선지자들의 최종 진위는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곧 예언이 성취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냐는 자신의 예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레미야의 상징적인 행위에 버금가도록 예레미야의 목에 채운 멍에를 풀어 꺾어 버린다. 이 행위는 하나님께서 2년 안에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어 버리실 것을 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이런 공개적인 모욕에 대항하지 아니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예언을 견지한다.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에 예레미야의 예언이 사실임을 증명되었다. 예레미야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으므로 조급하게 굴지 않고 담대하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2. 하나냐에 대한 예레미야의 메시지(12-17)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시는 말씀(12-14)

⑴ 하나냐가 예레미야를 박해(12)

 

⑵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쇠 멍에 만듦(13)

 

⑶ 피할 수 없는 재앙 선포(14)

 

②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냐를 대상으로 예언을 선언(15-17)

⑴ 하나냐에 대한 예레미야의 메세지(15-16)

 

⑵ 하나냐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 성취(17)

 

본 단락은 당시 유다사회에 있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적으로 거짓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포로 기간을 임의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언약 계획 속에서 정하셨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하나냐의 행동을 다가오는 심판의 가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냐는 나무로 만든 멍에를 꺾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더 이상 깰 수 없는 쇠 멍에로 대치하셨다. 이 쇠 멍에는 예루살렘 주위에 모인 모든 열방들이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될 것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하나냐의 자격을 공격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냐를 대변자로 보내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유다백성에게 거짓말을 믿도록 설복하였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하나냐에게 내린 심판으로 그해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결국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신실한 예레미야는 옹호하시고 거짓 예언자 하나냐는 심판하셨다.

29장 : 바벨론 포로들과의 서신1. 포로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서신(1-9)

① 당시의 시대적 상황 및 배경(1-4)

 

② 예레미야가 보낸 서신의 내용(5-9)

 

본 단락은 문맥상으로 볼 때에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심판 선언이 주로 바벨론 포로 상태를 결과적 선언의 양태로 보고한 반면, 본 단락은 바벨론 포로 자체가 가지는 상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언약관계가 결코 소멸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유다의 궁극적인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지의 삶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을 포함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장기간의 거주가 될 것임으로 집을 짓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한 유다 백성에게 정상적인 생활이 되도록 결혼을 하여 아들과 딸을 낳으라고 하신다. 더구나 바벨론이 빨리 패망하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평화와 번영을 갈구하도록 충고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새로운 성장의 계기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2. 포로귀환의 예언과 유다에 거주하는 백성들에 대한 경고(10-19)① 포로들의 귀환(10-14)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이 70년 후에 귀환할 것임을 천명하고 계신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은혜로운 약속을 기억하시고 포로들을 가나안 본토로 되돌려 보내실 것이다. 사실 바벨론에서의 70년간의 유배생활은 유다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과 연단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포로된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전적인 마음의 헌신을 통한 순종을 보여야 한다.

② 유다에 남아 있는 자들에 내려질 재앙(15-19)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메시지의 핵심이 성전중심의 고착된 사상과 다르고, 더구나 바벨론에 있는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무시하고 포로로 잡혀 가지 않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의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결국 BC.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성전의 모든 기물까지 빼앗기는 수치를 당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궁극적으로 멸망하게 된다.

3. 거짓 선지자들의 실상 및 미래(20-32)① 거짓 예언자들의 실상과 종말(20-23)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혼돈시킨다. 본문에 등장하는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선포했다. 그들은 하나냐처럼 유다의 평안과 바벨론 포로의 조속한 귀향을 선포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에 동조하는 백성들이 철저히 저주를 받게 될 것을 말하면서 그 징표로서 두 선지자를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어 반란 선동죄로 불에 태워 처형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하는 행위는 큰 죄악에 속한다.

② 스마야의 핍박과 예레미야의 반응(24-32)

거짓 선지자들은 영적 지도자들을 유혹하여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하도록 유도한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는 당시 성전을 책임 맡은 마세야의 아들 스바냐에게 서신을 보내어 마치 예언자처럼 행동하는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워 칼을 메우게 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보낸 첫 번째 편지를 증거로 삼아 예레미야가 반드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고소했다.

 

그러나 스바냐는 예레미야의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스마야의 모함을 그대로 전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두 번째 편지를 보내 하나님의 예언을 반역한 스마야와 그 가족들이 모두 벌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결국 스마야의 악한 시도는 실패하고 도리어 멸망에 빠지게 되었다.

30장 :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1. 포로로부터의 귀환(1-11)

① 포로로부터의 귀환을 결과적으로 선언(1-3)

 

②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전체의 회복묘사(4-9)

 

③ 귀환이후 드러날 회복의 모습(10-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과 회복을 동시적으로 선언하신다. 여기서 예레미야가 사용하는 ‘그 날’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파멸의 때’로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말한다.

 

둘째는 ‘회복의 때’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새로운 관계를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포로 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언약을 기억하고 선택된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기 전에 불행의 시기가 있게 된다. 그 때에 평화의 소리 대신에 두려움과 공포의 소리가 포로들 사이에서 들려올 것이다. 예레미야는 허리를 움켜잡고 있는 남자들의 고통을 해산하는 여인으로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서 완벽한 구원을 실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던 시기에 구원을 성취시키신다. 거짓 선지자들은 구원이 조속한 시일 내에 성취된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하신 기한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구원을 베푸신다. 그 때 언약의 백성들은 이방 권세자들을 섬기는 대신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권의 권위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평화와 안전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흩어지게 했던 열방들을 완전히 파괴시킴으로 당신의 공의를 확립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2. 이스라엘의 회복의 의미(12-17)

① 이스라엘과 유다가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었음(12-15)

 

② 하나님께서 상처를 치유해 주실 것임(16-17)

 

본 단락에서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상황은 심각한 상태이다. 그들은 너무나 깊은 상처로 인하여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의 열방들도 외면해 버렸다. 이처럼 일체의 희망이 차단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현재의 불행을 근본적으로 탈피하여 의와 평강을 회복하도록 역사하신다.

3. 회복의 내용(18-24)① 전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 내용(18-22)

예루살렘 성은 재건되고 바벨론에 의하여 잠잠했던 축제의 소리가 다시 들리게 되고 이스라엘 민족은 숫자적으로 증가된다. 이스라엘은 새 지도자를 세워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② 약속의 실현 이전에 있게 될 악인에 대한 징계(23-24)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전에 악인들은 궤멸된다. 언약 백성을 가혹하게 대했던 사악한 민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보응은 이스라엘을 온전한 공동체로 형성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시행된다.

31장 : 이스라엘의 회복1. 북 이스라엘의 회복(1-22)① 회복에 대한 약속과 회복의 모습(1-14)

하나님께서는 북 왕국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선언을 하신다. 대적의 손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출애굽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으로 자유를 맛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이스라엘 민족과도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여기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예언하신다.

 

그 새로운 시기는 새로운 기쁨의 시기이다. 이때가 오면 이스라엘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기쁘게 춤을 추게 된다.

둘째로 백성들이 사마리아 언덕에 포도밭을 일굴 수 있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이다. 이스라엘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가나안 땅의 과실을 만끽할 수 있다.

셋째는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언약의 시기이다. 에브라임 산 위에 서 있는 파수꾼은 백성들을 모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시온으로 올라가게 할 것이다.

② 포로현지에서의 귀환과 영적 소생(15-22)

이스라엘의 미래의 소망은 현재의 불행과 대조를 이룬다. 비록 현재는 울고 있지만 미래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자식들이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바라보면서 회개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유다 백성들에게 포로로 사로잡힐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신앙을 회복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치 말고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현재의 불행을 극복해야 한다.

2. 남 왕국 유다의 회복(23-26)

① 도입(23a)

 

②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23b)

 

③ 귀환 이후의 축복(24,25)

 

④ 예레미야 선지자의 만족(26)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남 유다도 역시 변화시켜 주실 것임을 밝힌다. 유다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의로운 처소)과 거룩한 산에 대한 복을 기원하게 될 것이다. 의로운 처소와 거룩한 산이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온 산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언약의 백성들을 의로 통치하심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임하도록 하신다. 선지자는 이와 같은 미래의 소망을 제시함으로써 바벨론의 침략으로 절망에 빠진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롭게 언약을 신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3. 진정한 회복과 새 언약(27-40)

① 하나님의 공의와 유다의 새로운 출발(27-30)

 

② 하나님께서 언약 공동체와 맺을 새 언약(31-37)

 

③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새로운 관계성(38-40)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선언을 취소하시고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 언약은 이전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선조들과 맺었던 언약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먼저 새 언약은 마음의 변화를 수반함으로써 율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에스겔은 이 변화를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 위에 부여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것으로 묘사한다. 또한 새 언약은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처리할 수 있다. 사실 백성들은 범죄함으로 인하여 옛 언약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주체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악함을 용서하시고 더 이상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실재를 하늘과 땅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낮에 해가 뜨게 하시고 밤에 달과 별들이 비치게 하신 것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완전히 도말하시고 영원히 지속되도록 지키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옛 언약은 파기 된다기 보다는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셨고, 메시야 시대를 대망하며 임박한 멸망을 견디어 내도록 위로하셨

32장 : 예루살렘의 재건에 관한 예언1. 예레미야의 투옥과 밭의 매입(1-15)① 예레미야의 투옥 사실 및 그 사건의 원인(1-5)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시드기야 왕이 어떤 기대를 갖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시드기야 왕은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다고 예언을 한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감금되고 만다.

 

말씀을 맡은 자의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를 때 핍박과 고난이 오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온전히 보호하심으로써 궁극적으로 의와 평강과 축복을 누리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② 예레미야의 아나돗 밭의 구입과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6-15)

예레미야는 아나돗에 있는 사촌 하나멜의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했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말씀대로 토지를 사서 친구인 바룩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문서를 토기 속에 보관하도록 요청하였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비록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지만 미래에 반드시 회복되어 기업을 차지하게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선지자는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순종했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2. 예레미야의 갈등과 하나님의 답변(16-44)① 예레미야의 안타까운 심경의 토로와 하나님의 응답(16-25)

예레미야는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도드리고 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소유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지만, 죄에 대해서서는 철저하게 벌하신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고 각자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여 공의로운 보응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검증되었다. 출애굽에서 가나안땅까지의 여정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 후 불순종의 죄로 저주와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고 있다.

② 언약의 파기에 대한 대가로서 피할 수 없는 보응이 유다에 임할 것임(26-35)③ 언약 갱신을 통한 유다의 회복과 백성들에게 내릴 복(36-44)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질문에 응답해 주신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자이심을 상기시키신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근거하여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파괴시키셨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한 죄로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불타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절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가증스러운 우상으로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자신의 아들과 딸을 몰렉에게 희생 제물로 바쳤다. 이러한 배도적인 상황 때문에 예루살렘은 재

앙을 받아 파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이 완전히 패망하지 않을 것을 단언하신다. 곧 택한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여 안전하게 지키신다고 약속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언약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환하여 언약의 하나님을 찾음으로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즉 분명한 회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33장 : 이스라엘의 영원한 회복1. 포로귀환과 풍요로운 삶(1-13)① 예루살렘이 범죄함으로 멸망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선언(1-9)② 바벨론의 침입으로 인하여 황폐해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해질 것을 선언(10-1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과 능력에 근거하여 언약백성의 회복을 약속하신다. 사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파멸될 운명에 놓여 있는 민족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크고 신비한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비록 일시적으로 예루살렘 성과 왕궁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힐지라도 미래에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땅의 회복, 죄의 용서와 신앙의 회복, 영광스러운 위치의 회복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예루살렘 회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바벨론 침략이후 황폐한 예루살렘 거리들이 다시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 이 기쁨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목소리로,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목소리로 나타난다.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유다의 성읍들은 평화와 번영을 다시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은 양 무리에게 안전한 초목을 제공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최상의 복락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2. 왕조 및 제사장직의 영속(14-26)① 다윗 왕권의 계열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가지가 출현하여 새롭게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것을 예언(14-16)② 다윗 언약과 제사장직 언약이 귀환 이후에 재건됨(17-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의 결과로서 드러난 포로생활이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왕권을 지속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이 주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되고 있다.

 

첫째는 다윗왕권의 회복은 다윗계열에서 등장하게 될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된다. 메시야는 이전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 신실한 언약을 이행한다.

 

둘째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받게 될 예루살렘 성이 장래에 재건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읍은 이전과 같이 불법과 우상숭배가 자행되는 중심지가 아니라 메시야의 진정한 통치를 받는 영적인 중심지가 된다. 이처럼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전 이스라엘은 더욱 완전한 구원의 상태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권과 제사장직의 계승을 통해 메시야를 예표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다윗 왕권과 제사장직의 회복이 멸망 이전에 주어진 이유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셨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켜 포로지에서 참된 언약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려는 의도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유다 멸망 이후에 다윗 왕가의 대는 표면적으로 완전히 끊어졌으며 제사장직의 계승 또는 포로 귀환 이후 잠시 계속되는 듯하였으나 ,결국은 끊기게 되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직, 제사장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취이며 율법의 완성이다.

34장 : 시드기야 왕과 백성에 대한 경고1. 시드기야 왕에 관한 예언(1-7)

바벨론의 비호 아래 유다의 왕이 된 시드기야가 애굽의 세력에 편승하여 바벨론의 영향력을 벗어나려고 함으로써 비참한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유다의 완전한 멸망에 대한 예언을 무시하고 애굽이 다시 일어나 도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거듭해서 왕과 백성의 멸망을 예언했다.

 

본문은 특별히 시드기야 왕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운명을 정확히 경고하고 순종하도록 요구하신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역하면 더욱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따르는 길만이 성도에게 있어서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다.

2. 율법의 불이행으로 인한 심판(8-22)① 시드기야와 방백들과 백성들이 노예에 관한 언약을 어긴 사실을 언급(8-11)② 언약의 불이행에 따른 하나님의 경고(12-16)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유다 백성들이 동족을 노비로 삼음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다고 말씀하신다. 유다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한 술책으로 노예 해방 정책을 시도한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가 애굽 군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떠나갔을 때 이전에 맺었던 율법에 대한 서약을 휴지조각처럼 저버렸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을 속이는 죄까지 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반 율법적인 행위는 심판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인을 사랑하실지라도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보응하신다.

③ 유다백성들의 언약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서의 심판(17-22)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성전에서 맺는 언약 의식 중에 송아지를 잡아 둘로 갈라놓은 다음에 그 사이로 걸어가는 의식이 있다. 여기서 두 쪽으로 갈라놓은 제물 사이로 걸어가는 것은 만일 언약을 어긴다면 송아지와 같은 죽임을 당하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적 상황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이러한 규정에 입각하여 언약을 깨뜨린 유다는 그들의 시체가 새들과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 시드기야와 방백들과 백성들의 언약 파기는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잠시 물러간 바벨론을 다시 돌아오게 했으며 엄청난 파괴와 방화와 살육을 초래했다. 이처럼 언약의 파기는 철저한 파괴와 멸망과 황폐로 귀결될 뿐이다.

35장 : 레갑 족속의 교훈1. 레갑 족속의 신실한 행위(1-11)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레갑 족속을 익다랴의 아들 하난의 아들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으로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사발에 가득 찬 포도주와 잔들을 주고 마시도록 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본문에 요나답은 BC. 830년경의 인물로 (약 200년 전의 인물이다) 당시 사회가 부패하고 부조리와 불의가 관영하므로 퇴폐생활들로부터 경건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독특한 가훈을 제정하였다. 그는 가족들에게 금주생활, 장막생활, 유랑생활을 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런 생활 방식은 하나님만을 마음의 기쁨으로 삼고 소유욕을 억제하며 강인하게 살도록 유도했다.

당시 총체적인 부패와 반역으로 물들어 있던 유다 사회에 바람직한 신앙의 모델이되었던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생활방식을 지켜 올바르게 살아가는 레갑 족속의 삶은 진정한 신자의 삶이다. 우리는 관행을 좇아 타협하지 말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

2. 레갑 족속을 통한 교훈(12-19)

본 단락은 레갑 족속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유다의 불순종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포도주를 마시라는 예레미야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 레갑 족속의 신실한 행위를 예로 들면서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회개를 촉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는 유다의 배역을 책망하고 심판의 필연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반면 시종일관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행한 레갑 족속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소유하게 된다. 특별히 ‘내 앞에 설 사람’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받게 된다. 당시에 자신들만이 언약 백성이며 예루살렘만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 간주하여 교만했던 유다 백성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며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씀을 등한히 하고 교만에 빠질 수 있다. 참된 성도는 언제나 말씀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올바른 생활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

36장 : 두루마리에 기록된 심판 선언1. 두루마리의 기록(1-8)

본 단락은 여호야김 통치 때에 발생한 두루마리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처음 소명을 받았던 시점로부터 지금까지의 예언의 말씀을 모두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에 의거하여 예레미야는 서기관인 바룩에게 두루마리의 모든 예언의 내용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금식 일에 백성들 앞에서 선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것은 전 장(35장)의 레갑의 교훈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레갑 족속의 신실한 행위는 간접적으로 유다의 반 언약적 태도를 표출하는 것이며, 본 단락에서 예언의 내용을 두루마리에 적어서 백성들에게 선포하라는 것은 유다의 반 언약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본 단락에서는 백성들의 범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계속됨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선포한 후에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모든 악과 죄가 사해질 것이라고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금식 일에 낭독하도록 하여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실 금식일은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리며 악한 길에서 떠나는 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열려있을 때 회개를 촉구하여 용서를 베풀려 하신 것이다.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과 뜨거운 사랑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의거하여 구원을 보증을 받는 것이다.

2. 두루마리의 낭독에 대한 유다의 반응(9-32)① 두루마리의 낭독과 소각(9-26)② 다시 기록된 두루마리(27-32)

 

본 단락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두루마리 말씀을 들은 유다 방백들과 왕과 신하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으며, 불태워진 두루마리가 새롭게 작성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두루마리 예언을 들은 지도층 인사들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으며, 심지어 여호야김 왕은 낭독하는 대로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서 화로에 던져 넣고 기록한 자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숨기시고 다시 두루마리를 기록하였으며 여기에는 여호야김을 향한 저주를 첨가시켰다.

 

두루마리에 담긴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들은 방백들은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방백들 중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 말씀 듣기를 원했고, 선지자의 종 바룩을 잘 영접했다. 그러나 방백들은 인간적인 야심으로 인하여 양심이 부패해졌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보다 세상 왕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적인 왕에 대한 충성을 조화시켜 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권세나 힘에 관심을 집중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한 여호야김 왕은 다음과 같은 저주를 받는다.

첫째, 어떤 후손도 영구히 다윗의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

둘째, 왕은 온전히 묻히지 못하고 시체는 땅위에 노출될 것이다.

셋째, 왕의 자녀들과 측근들은 죄악으로 인하여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청종치 않고 고의적으로 거부한 왕에게 철저하게 심판함으로써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의 종말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경되지 않으며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37장 : 시위대 뜰 안에 갇힌 예레미야1.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1-10)① 시드기야의 예레미야에 대한 간청(1-5)②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6-10)

 

본 단락은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바벨론이 후퇴한 상황에서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 대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시드기야는 반 바벨론 정책이 성공할 것에 대한 확신을 지금까지 멸망만을 선언하던 예레미야를 통해서 확인받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시드기야의 소망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애굽 군대는 돌아가고, 잠시 후퇴했던 바벨론 군대는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을 파괴시키게 된다고 선언한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거짓된 희망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예레미야의 보증을 받고자 한다. 당시 예레미야는 아직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이고, 바로의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하여 진군한 상황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하나님을 설득하여 애굽 군대의 승리를 허락하므로 팔레스틴에서 바벨론 군대를 완전히 몰아낼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왕의 기대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의 상황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하였다.

2. 예레미야의 투옥과 시드기야의 질문(11-21)① 예레미야의 투옥(11-15)

잠시 바벨론의 후퇴로 유다에는 잠정적인 평화가 주어졌고, 예레미야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루살렘을 벗어나 베냐민 영토로 떠나려하다 문지기 이리야에게 체포되어 방백들에게 넘겨졌고, 방백들은 법적인 근거를 들어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예레미야의 모습. 복음을 위하여 일평생을 받쳤던 바울 역시 온갖 환난과 핍박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 생명의 면류관을 소유하게 된다.

② 예레미야와 시드기야의 거듭된 대면과 예레미야의 감옥으로부터 해방(16-21)

시드기야는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데리고 오게 했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백성들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기에 비밀리에 옥에서 나와야만 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이 있었는지를 재차 물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멸망과 시드기야의 포로 됨을 일관되게 전했다.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대하는 시드기야의 희망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종종 미련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와 만나는 동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치는 거짓 예언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며, 자신을 이전에 감옥으로 보내지 말 것을 요청한다. 결국 예레미야는 왕궁에 있는 시위대 뜰로 옮겨지게 되었다. 거기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했으며, 성읍이 포위되어 곡식 공급이 고갈될 때까지 떡을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사명자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신다.

38장 : 예레미야의 위기1. 진흙 구덩이 속에 던져진 예레미야(1-13)① 예레미야의 예언 내용과 감금(1-6)

예레미야는 다시 한 번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 예언은 이전의 메시지의 반복인 동시에 요약이기도 하다. 곧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은 칼, 기근, 혹은 재앙으로 죽을 것이며, 바벨론으로 탈주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로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여 생명을 도모하라고 권고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네 명의 방백인 맛단의 아들 스바댜, 바스홀의 아들 그다랴, 셀레먀의 아들 유갈, 그리고 말기야의 아들 바스홀이 듣게 되었다. 방백들은 왕에게 반역적인 언사로 군인들과 모든 백성들의 사기를 현저하게 저하시킨 예레미야를 죽이도록 요구했다. 이에 시드기야가 동의함으로써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 안에 있는 말기야의 진흙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하고 웅덩이에 가두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사람은 의로운 성도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고통을 가한다.

② 예레미야의 구출 및 이후 상황(7-13)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주셨다. 예레미야는 구스인으로서 왕궁에서 봉사하고 있었던 에벳멜렉의 도움으로 구출 받아 생명을 구원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도처에 숨겨진 의인을 통하여 사명자를 보호하신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노래하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때를 따라 믿는 자를 돌보시는 은혜로우신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뢰하여야 한다.

2.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마지막 대면(14-28)① 시드기야의 질문 및 예레미야의 답변(14-23)② 소심한 시드기야의 태도와 예레미야의 상태(24-28)

 

본 단락은 예루살렘의 패망 직전에 시드기야와 예레미야 사이의 마지막 대면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드기야는 구덩이에서 구출된 예레미야에게 비밀리에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답변은 동일하게 유다의 파괴를 언급하며, 바벨론에 항복함으로써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더 이상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진언을 듣지 않고, 현실적인 조롱과 핍박의 두려움에 함몰되어 항복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간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다.

39장 : 예루살렘의 함락1. 예루살렘의 함락(1-10)① 예루살렘의 함락(1-3)

시드기야 왕 제11년 4월 9일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다.

② 시드기야 왕의 상태와 유다 땅의 상태(4-10)

이런 상황에서 시드기야 왕은 도망하다가 잡히게 되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다가 그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보게 되고, 귀인들이 죽는 것을 보며,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히게 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예루살렘의 집들이 불태워지고 성벽이 허물어지며 많은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빈민들만 남아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함락,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감, 그의 자손들이 비참하게 죽음, 많은 유다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 등이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실제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천국과 지옥, 심판과 축복의 분명한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경고)을 듣고도 따르기를 포기했던 시드기야의 최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했다면 그런 비참한 결과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길을 찾는 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음으로 진정한 평안과 행복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

 

2. 예레미야의 석방 및 에벳멜렉의 구원(11-18)① 예레미야의 석방(11-14)② 에벳멜렉의 구원과 하나님의 축복(15-18)

 

본 단락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구출된 예레미야와 에벳멜렉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한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자들의 종말과는대조적으로 의인의 복된 결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면 어떤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항복을 촉구했음을 알고 그를 잘 돌보도록 지시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구해줬던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루살렘이 패망하여 모든 방백이 죽게 될 때 그가 죽지 않도록 구해주셨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으로 예레미야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했던 예레미야와 신실한 믿음으로 예레미야를 구했던 에벳멜렉에게 크신 은혜와 생명의 복을 주셨다.

40장 : 예레미야의 석방1. 석방된 예레미야(1-6)

본 단락의 내용은 예레미야에 대한 호의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부분으로서,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도중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의 도움으로 인해 포로에서 풀려나게 됨을 설명한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갈 경우에 후대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황폐의 땅 유다로 돌아온 예레미야의 신앙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일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친 바벨론적인 발언을 한 어용 선지자라고 의심을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선지자는 기꺼이 고통스러운 유다 땅을 택함으로 이러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언약이 완전히 파기된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을 심어 주었다. 예레미야는 인간적인 안락과 재물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고 결단하였다.

2. 그다랴의 정책(7-12)

본 단락은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총독이 된 그다랴가 대외적으로는 친 바벨론 정책을 폈고, 대내적으로는 경제 부흥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다랴는 오래 전부터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믿고 적극적으로 시행에 옮겼다.

 

적극적으로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유했으며, 전쟁의 혼란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땅에 정착하여 포도, 여름과일, 기름 등을 수확하는데 전념하도록 말했다. 이런 그다랴의 정책이 전해지면서 도망한 피난민들이 정착하기 위해서 귀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점진적인 안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3. 이스마엘의 그다랴 암살 계획(13-16)

본 단락은 왕족이었던 이스마엘이 그다랴가 다윗 계열의 왕족이 아닌 단지 귀족의 후손이라는 점을 이유로 불만을 품고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설명한다. 당시 유다의 재건을 묵과할 수 없었던 암몬 왕 바알리스는 그다랴를 살해하고 새로운 유다 정부를 세우고자 이스마엘을 사주하기에 이른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인 마음에 유혹되어 엄청난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유다를 다시 한 번 파멸로 몰아넣게 되었다.

 

암몬은 그다랴의 친 바벨론 노선 대신에 이스마엘과 같은 반바벨론 지도자를 선택하여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다랴는 장군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요하난이 비밀리에 그다랴를 만나 이스마엘을 죽이자고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그다랴는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했으나 인간을 지나치게 과신하여 결과적으로 살해되기에 이른다.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고 거짓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음모에 대하여 자세하게 조사를 해보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지도자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소유해야 한다.

41장 : 살해된 그다랴1. 그다랴의 살해(1-10)

본 단락은 유다가 패망된 후 왕의 종친으로서 유다에 돌아왔던 이스마엘이 미스바에 있는 그다랴와 호위하던 바벨론 군사들을 죽이고, 성전에 온 순례자들까지 살해한 후에 도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① 그다랴 암살(1-3)② 순례자 학살과 그 후의 이스마엘의 상태(4-10)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각처로 도망했던 유다의 장관들은 유다 재건의 환상을 가지고 그다랴에게 모여 들었다. 그러나 그다랴의 친 바벨론 정책에 희의를 품고, 암몬의 도움을 받아 반역을 기도한다, 이스마엘 일당은 만찬석상에서 음식을 먹다가 그다랴를 덮쳐서 살해하고, 그곳에 있는 바벨론 군사까지 모두 다 죽여 버렸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와하던 중 그다랴가 총독이 되어 질서를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겜, 실로.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에 온 80명의 순례자들을 무참하게 살육한다.

 

유다의 남은 나쁜 무화고 나무들은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의 도움을 받아 무력으로 바벨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헛된 시도를 반복한다.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고, 유다 땅은 폐허가 된 채로 버려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율법을 지켜 준행할 때에 축복이 보장된다.

2. 요하난의 의거(11-18)① 요하난이 이스마엘에게 잡힌 유다 백성들을 구출(11-14)② 이스마엘의 도피와 요하난의 애굽 망명(15-18)

 

본 단락은 이스마엘이 그다랴 살해 후 발생한 유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에 이스마엘과 함께 그다랴에 왔던 요하난이 이스마엘의 반역 소식을 접한 후에 추격대를 이끌고 가서 잡혀간 백성들을 구출하였으나 반역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두려워 애굽으로 망명한다.

 

죄는 결코 영원히 은폐될 수 없다.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은밀히 살해했으나 결국 군대장관들에게 발각되어 추격을 받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범죄할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정의감이나 애국심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을 추적하여 포로로 잡혀 가는 자들을 구출했지만, 이스마엘의 반역으로 인한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신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요하난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고, 단지 인간적인 의리에서 행동하였다. 그는 정당하게 행동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이스마엘은 요하난의 군대를 맞아 싸움한 번 해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는 그 분명한 보응이 현세에도 따른다.

42장 : 백성들의 애굽 이주와 하나님의 경고1. 요하난의 중보기도 요청(1-6)

본 단락은 전장에서 이스마엘의 반란을 진압한 요하난이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애굽으로 도주하려는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애굽으로 가려는 속셈을 알고 있는 예레미야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한다. 이와 같은 유다백성들의 배도적인 태도가 다시 나타나는 본 단락은 유다에 남겨진 백성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퇴조하게 된다. 이후로 선지자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백성들에게 주의를 집중하면서 새로운 구원을 대망한다.

 

본 단락은 유다에 잔존한 사람들의 배역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마엘을 진압하고 백성들을 구출한 요나단과 모든 군대 장관들과 온 백성들은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길에 대해서 축복받기 위해서 예레미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갈 길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런 요청은 거짓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거나 순종하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명령(7-22)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유다에 머무를 경우 받게 될 축복과 애굽으로 내려갈 경우 내릴 재앙(7-17)② 불순종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내릴 최후의 경고(18-22)

 

본 단락은 율법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거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상을 보다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애굽으로 가도 되느냐는 요하난과 그 일행들의 물음에 대해 예레미야는 그들이 유다 땅에 계속해서 거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애굽으로 가게 될 경우에는 멸망당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메시지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예레미야가 일관되게 주장한 사상이다. 유다에 거하면서 바벨론에 순복한다면 느부갓네살 왕이 땅을 되돌려주고 온갖 혜택을 베풀어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살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스스로 맹세를 저버린 대가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 정착한 자들을 칼과 기근과 재앙으로 죽게 만들 것이다

 

즉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백성들로부터 피하기를 원했던 모든 재앙들이 내려지고, 아무도 그 재앙을 피할 수 없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예레미야는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43장 : 애굽으로 끌려간 예레미야1. 요하난과 그 일행들의 애굽으로의 도주(1-7)① 요하난과 일행들의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거부(1-3)② 애굽으로의 도피(4-7)

 

예레미야가 요하난과 그 일행들의 중보기도 요청에 따른 하나님의 응답을 제시했을 때, 아사랴와 요하난과 그리고 그와 함께하고 있던 모든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신실함에 도전하며 반발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한 것은 신뢰할 수 없는 거짓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경고가 나오게 된 것은 예레미야의 서기관인 바룩이 예레미야를 부추켜서 이전의 그다랴를 죽인 자들을 바벨론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죽게 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룩은 느부사라단이 바벨론에 가자고 권유했을 때, 조국과 백성들을 사랑해서 예레미야와 함께 폐허가 된 유대 땅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룩을 비난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기들의 애굽 행을 변호하고 합리화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언을 끝내 거부하고 애굽으로 아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와 바룩까지도 애굽으로 가도록 강요하였다. 그 결과 애굽으로 이동하여 다바네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끝까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반역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나름대로 모든 결정을 다 내려놓고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추인받으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2. 애굽에 임할 재앙(8-13)①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상징적인 행위와 그에 따른 예레미야의 행동(8-9)② 상징적인 행위가 지시하는 애굽의 심판(10-13)

 

본 단락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거부하고 애굽으로 내려간 행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말씀을 어기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만 멸망한 것이 아니라, 애굽 전체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끌려간 예레미야에게 큰 돌을 모은 다음 바로의 궁전 입구의 큰 뜰을 덮고 있는 벽돌 아래 진흙에 묻도록 지시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애굽에 내려오도록 허락하시고 애굽 왕궁 위의 화려한 장막을 치게 되며 죽음, 포로, 칼의 그림자들이 애굽의 전역을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은 애굽의 성전들을 불태워 신상들을 노획하고 마치 목자가 몸에 옷을 두른 것 같이 자신의 몸에 두르고 애굽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은 실제로 BC 568-566 사이에 느부갓네살이 실제로 애굽을 침공하였고, 이때에 애굽으로 내려갔던 유다의 남은 자들은 대부분 생명을 빼앗겼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수용하지 않고 말씀을 거부할 때 그 결국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경우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44장 : 애굽의 유다인들에 관한 예언1. 우상숭배를 일삼는 것에 관한 교훈(1-14)① 애굽에 내려간 자들에게 유다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준다(1-6)② 애굽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할 재앙(7-14)

 

예레미야는 이전에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교훈을 애굽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적용하면서 동일한 전철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은 조상의 죄를 통하여 교훈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다른 이방신들에게 분향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대가로 심판을 행하셨고, 그들은 이방인의 저주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법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치 유다에 행하셨던 것과 똑같이 애굽에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칼과 기근으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리고 이 심판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임하며, 애굽에 살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파괴시킬 때 사용했던 방법과 동일한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유다 땅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도망친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돌아오도록 허락한 몇몇 도피자 외에는 모두 진멸 당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배역하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2. 우상숭배의 현실에 따른 하나님의 최종 경고(15-30)①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반응(15-19)② 유다 백성들의 주장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박과 심판 예언(20-30)

 

본 단락은 하나님의 훈계의 말씀을 들은 유다백성들의 반응과 여전히 우상 숭배를 일삼고 있는 백성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애굽에 내려간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현재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 때문이 아니라 유다에서 섬기던 이방 신들에 대한 부족한 신앙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예레미야의 경고를 들은 애굽에 거하는 유다인들은 끝내 회개하기를 거부하였으므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오히려 이전에 유다 땅에서의 우상 숭배보다 훨씬 도가 지나친 우상숭배에 몰두하였고, 급기야 이방 신인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는 사태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유다 백성들이 공공연하게 이방 신들을 섬긴 것은 조상들, 왕들, 방백들이 보편적으로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이방 신에 대한 우상숭배를 멈춘다는 것은 해가 된다고까지 여겼다. 즉 하늘 여신에게 재물을 바침으로 풍성한 음식을 향유할 수 있었으나, 분향을 멈추자 칼과 기근으로 인한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순종은 축복을 가져다주고,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은 저주를 가져다준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심판은 역사 속에서 실현된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느부갓네살은 리비아의 군사적인 멸망과 애굽 내의 반란을 틈타 애굽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되는 것이다.

45장 : 바룩에 관한 메세지

본 장은 유다에 대한 예언(2-45장)의 마지막으로 내용상으로는 36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당시 바룩은 성전 출입 금지령을 받은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성전에 올라가 장차 유다에 임할 징계를 선포하게 되고,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룩에 의해 기록되고 선포된다. 그런데 바룩은 자신이 기록한 메시지로 인하여 서글펐으며 또한 동족들이 받게 될 징계와 자신의 고난으로 인하여 크게 슬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택한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이 훨씬 더 큼을 가르침으로 바룩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①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2)② 바룩의 상태와 하나님의 축복(3-5)

 

이 짧은 메시지는 36:1-8의 보충적 내용으로서 바룩의 생애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바룩은 당시(BC. 605년)부터 예레미야의 서기관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항상 예레미야와 함께 동행하며 때때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결국 바룩은 본서 전체에서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에 대하여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유다 백성으로서 예레미야 개인의 서기관이 아닌 하나님의 예언 사역의 한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룩은 자기가 예레미야의 명령으로 기록한 예언(36:1-8)으로 인하여 심각한 낙담에 빠져 있었다. 즉 자기 동족의 멸망과 고통을 미리 알고 나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싸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예레미야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께서 슬픔을 더해 주셨다고 느끼게 되었고,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룩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신앙의 감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으신 것을 참으로 파괴하고, 심으신 것을 뽑아버릴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은 범죄로 인하여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권고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기뻐해야 한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온 사방에 재앙이 있을지라도 바룩에게 피할 길을 내시며, 은혜로 보호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바룩은 동시대에 사람인 하박국 과 같이 모든 상황이 비관적으로 보일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참혹한 민족적인 심판이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온 확고한 소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바룩의 신앙은 희망이 없는 재앙의 현실 속에서도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하여 언약을 유지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를 가시적으로 엿보게 하는 좋은 실례이다.

 

본 단락에서 우리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경고와 더불어 택한 자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볼 수 있다.

46장 : 애굽에 대한 예언1. 바벨론에 의한 애굽의 패망(1-12)① 열방에 대한 예언 선포와 애굽의 군사력을 역설적으로 표현(1-4)② 전쟁의 패배로 인한 애굽의 비참한 상황(5-12)

 

본 단락은 이방에 관한 심판 예언(46-51장)의 첫 부분으로 애굽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이방에 대한 예언 중에 애굽에 대한 예언이 처음 등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애굽에서의 유다인들의 행태와 하나님의 경고를 진술하고 있는 42-45장과의 논리적인 연결을 위해서이며,

둘째는 유다가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며 선지자들의 심판 메시지를 거부한 직접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애굽에 대한 강한 의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조롱 섞인 어조로 애굽의 군대를 불러 방패를 준비하여 바벨론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라고 하셨다. 기병들은 말들에게 마구를 채워 올라타고, 보병부대는 창과 무기를 구비하고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다. 그러나 싸움은 애굽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바벨론의 빠른 공격으로 애굽 사람들은 두려워하였으며 공포에 질린 군사들은 다급하게 도망치게 되었다. 외견상 말들과 마부들로 구성된 애굽 군대의 물결은 마치 힘 있는 강의 굽이침과 같았다. 그러나 비록 애굽이 막강한 군대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싸움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쳐서 패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무리 강한 나라일지라도 당신의 뜻에 따라 처리하신다.

2. 애굽의 패배와 이스라엘의 회복(13-28)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애굽 침공과 애굽의 패주(13-19)② 애굽의 완전한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20-28)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용사들을 넘어뜨렸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용병들은 서로 밟고 비틀거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는 길만이 압제자의 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호브라는 바벨론 군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을 했지만, 참패한 군사들은 더 이상 왕의 큰소리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때 바벨론은 마치 가볼과 갈멜 산 같이 당당하게 높임을 받았으며, 애굽 사람들은 유랑을 위해 물건들을 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의 공격으로 애굽은 거민이 없는 황폐한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유일한 주관자이시다.

 

예레미야는 애굽을 아름다운 암소로 비유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날아온 쇠파리가 물어뜯을 것이라고 했다(20절). 또한 애굽의 용병들은 도살하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살찐 암소로 비유하고 있다. 그들은 재앙의 날이 다가오면 도주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21절). 그리고 애굽은 마치 나무꾼의 도끼를 피하려고 도망가는 뱀에 비유하고 있으며(22절), 바벨론의 군대 규모는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는 곤충으로 묘사하였다(23절). 이상의 비유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애굽을 북방의 민족에게 붙이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한 심판 속에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은 애굽의 신들과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을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과거처럼 사람이 거주하게 될 것이라도 약속하셨다. 이것은 추방된 애굽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도 미래에 포로 상태에서 회복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47장 : 블레셋을 향한 예언

본장은 열방에 관한 예언(46-51장)들 중 두 번째 부분으로서 블레셋이 북방 민족인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블레셋은 다윗 왕 시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서서히 세력을 만회하기 시작하여 유다에게 매우 위험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블레셋을 심판하심으로써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응하신다.

 

① 역사적 시기 및 상황(1)

 

② 바벨론 침입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2-3)

 

③ 심판의 목적(4-5)

 

④ 블레셋의 철저한 멸망(6-7)

 

당시 블레셋은 애굽의 바로느고의 공략을 당하기 전으로서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장은 이러한 블레셋이 북방에서 밀려온 거대한 홍수로 순식간에 엄몰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유다가 그렇게 의지했던 동맹군과 섬기던 우상의 무력함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블레셋의 멸망은 이미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되었던 것이다.

 

블레셋은 유다의 해안 쪽 광야를 점유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나라였다. 그들은 힘이 강해질 때마다 해변 광야에서 유다의 산에 있는 성까지 세력을 확장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유다의 사사인 삼갈, 삼손, 사울 등에 의해서 좌절되곤 하였다. 그러다가 급기야 다윗에 의해 완전히 평정되었고,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 이스라엘이 분단된 이후 힘의 균형이 흔들려 유다는 여호사밧과 웃시야의 통치기간에는 블레셋을 조정할 수 있었으나, 여호람과 아하스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오히려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블레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다를 공격해서 못살게 굴던 적국으로 하나님은 완전히 멸절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바벨론 사람들을 마치 북에서 올라오는 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쓸어버리려고 넘쳐흐르는 급류와 같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굽이치는 말굽소리와 적들의 병거 소리가 들려올 때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동맹국들인 두로와 시돈도 전혀 도와줄 수 없게 되었다. 블레셋의 대표적인 두 도시 중 가사는 애굽 사람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고, 아스글론은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파괴가 되었다. 그 결과 블레셋은 슬픔과 비탄의 표시로 삭발을 하고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악인의 강인함과 능력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의인을 높이시고 악인을 멸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해야 할 것이다.

48장 : 모압에 대한 예언1. 모압 성읍들의 황폐(1-10)① 모압 전 지역의 파멸예언(1-5)② 모압의 전 사회 영역과 종교영역의 파괴(6-10)

 

본 단락에서는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고 있다. 이러한 예언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선언했던 내용과 동일하다. 예레미야는 느보가 황폐해지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며 헤스본에서 반란의 모의가 있고 맛멘의 성읍이 적막하게 되고 호로나임에서 파멸의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모압 땅 전체에 임한다.

 

비록 모압인들이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칠지라도 버림을 받게 되고 고독한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참혹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압은 유다처럼 우상 그모스와 부를 신뢰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기를 섬기는 일에 태만했던 모압을 파멸시킴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세상에 널리 알리신다. 본 단락은 범죄한 자의 멸망은 필연적이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만한 장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2. 모압 파멸의 원인들(11-35)① 모압 파멸의 첫 번째 원인-우상숭배(11-25)② 모압 파멸의 두 번째 원인-교만한 마음(26-35)

 

모압은 지금까지 비교적 평온한 나라였으나, 교만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모압을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붓지 않고 찌끼 위에 남아 있는 술로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지나치게 자만했던 모압 백성들을 표현한 것이다. 모압은 마치 다른 그릇에 붓지 않은 포도주처럼 포로의 가혹한 실제를 느끼지 못하며, 자신들의 태도를 조금도 변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모압이 스스로 자만을 깨닫게 할 것이다. 즉 모압은 이스라엘이 벧엘을 믿었을 때 수치를 당한 것처럼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압은 하나님을 경시하고 전투에 용감했던 용사들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파멸을 막아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 못가서 살육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통해 안전을 기도했던 모압은 완전한 패망에 이르게 된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두 가지 상징으로 모압의 파멸을 예언하고 있다.

첫째는 모압의 뿔이 잘릴 것이다. 뿔은 힘의 상징이다.

둘째는 모압의 팔이 꺾이게 될 것이다. 팔은 힘의 상징이다. 결국 모압의 국력이 쇠퇴하고 급기야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 모압은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토해낸 것에 미끄러져 타인의 조롱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 성읍을 버리고 적들을 피해 바위에 숨게 될 것이다. 상대적인 평화의 만끽으로 자만에 빠져있던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홀히 여김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교만을 가장 미워하신다.

 

3. 모압이 당할 수치와 이방인에게 미칠 하나님의 구원(36-47)

① 장차 모압이 당할 심판과 수치(36-44)

② 모압의 회복으로 인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암시(45-47)

모압은 아주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도처에서 들리는 슬픔의 외침은 마치 피리의 높은 음과 같이 외쳐지게 되고, 그들이 소유한 부는 모두 상실된다. 그리하여 교만했던 나라는 조소와 공포의 대상이 된다. 모압의 적들은 독수리처럼 날아와 모압을 사로잡으며, 포로가 될 것이고, 그들을 지켜주던 용사들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같이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압은 길 잃은 미아처럼 슬픔과 고통 속에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모압이 파멸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에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자는 반드시 패망한다.

이제 모압은 완전히 패망하고 그들의 아들 딸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끝내지 않고 어느 시기에 모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49장 :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 엘람에 대한 예언1. 암몬에 대한 심판(1-6)

본 단락은 풍요로웠으나 하나님을 멀리했던 암몬의 몰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암몬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포로가 되어 세계 만방으로 흩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다시는 본래의 영토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추측하면서 이스라엘 땅을 차지했다. 특히 암몬은 이스라엘의 갓 족속이 소유했던 영역을 차지했고 그 성읍에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암몬의 수도인 랍바를 공격할 때가 올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랍바는 패망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암몬 사람을 쫓아낸 후 거기 정착하게 될 것이다.

 

모압과 마찬가지로 암몬도 교만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암몬은 골짜기의 풍성함을 자랑하고 부를 신뢰하며 자신들에게 공격을 감행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꺾으셨고 공포를 주실 것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과 수단으로써는 결코 하나님의 징계를 막지 못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2. 에돔에 대한 심판(7-22)

① 두 가지의 상징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보여준다(7-13)

 

② 심판 이후에 있게 될 에돔의 비참한 위치(14-18)

 

③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재앙(19-22)

 

한편 에돔은 모압의 남쪽 사해의 동쪽에 자리 잡은 나라로서 유다에 많은 해악을 끼친 대표적인 나라이다.

 

예레미야는 두 가지 상징으로 에돔의 심판이 철저함을 보여주고 있다(9절).

첫째는 익은 포도를 딸 때 단지 몇 송이만을 남겨두고 몽땅 따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임할 것이다.

둘째는 밤중에 도둑들이 원하는 대로 훔쳐가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임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에돔 사람을 진멸하시고 단지 과부와 고아들만 구제하실 것이다. 에돔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폐허가 되고 열방 중에 가장 작은 자가 될 것이다. 원래 에돔은 자신들의 강한 방어 상태에 자만하였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힘과 풍요로움을 빼앗음으로서 파괴되었다.

3. 다메섹의 심판에 대한 예언(23-27)

본 단락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에 관한 심판예언이다. 아람은 광대한 국토와 경제적인 풍요로 인하여 온갖 쾌락을 탐닉했음을 지적하며, 결국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하여 처참하게 패망될 것이다.

 

4. 게달과 하솔에 대한 심판 예언(28-33)① 느부갓네살 왕이 게달을 파멸시킴(28-29)② 하솔의 파괴되는 모습(30-33)

 

게달과 하솔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는 유목민이다. 특히 게달은 대규모로 양을 치고 인접한 항구 도시인 시돈과 두로와 교역하여 많은 부를 축척하였다. 뿐만 아니라 능숙한 궁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호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부족이면서도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한 게달과 하솔에 대하여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공격하신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쾌락에 안주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5. 엘람에 대한 예언(34-39)

엘람은 능한 궁수를 많이 거느리고 무력을 통하여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침공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앗수르 왕에게 정복당하면서부터는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약소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무력을 지나치게 의지함으로 멸망 받게 되었다.

50장 : 바벨론의 멸망1. 바벨론의 패배(1-16)

① 바벨론에 대한 멸망 예언(1-3)

 

② 이스라엘의 회복(4-8)

 

③ 바벨론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9-16)

 

본 단락은 문맥상으로 지금까지의 이방에 대한 예언의 결론으로서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숨겨진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방에 대한 심판은 심판 자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와 이방의 멸망에 따른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형성에 있다.

 

특별히 본 단락은 바벨론의 파멸과 유다의 재건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바벨론 사람들은 포로로 잡히게 되고, 므로닥으로 알려졌던 바벨론 최고의 신 벨도 수치를 당하게 된다. 바벨론은 북방에서 온 나라에 의해 파멸을 당하게 되므로 거주자가 없게 된다. 그런데 바벨론의 처참한 파멸과 반비례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이 성취되어 회복된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심판했던 회초리를 꺾어버리심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현실적으로 성취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과도하게 파괴했던 바벨론에게 진노를 내리시고 지나가는 사람이 비웃을 정도로 철저한 파멸을 내리신다.

 

2. 예루살렘의 회복과 바벨론의 파멸의 원인(17-32)① 예루살렘의 회복(17-20)② 바벨론이 심판당하는 모습과 그 원인에 대한 예언(21-32)

 

하나님은 이미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다시금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신다. 특히 이 사실은 가나안 여러 곳의 지명을 언급하면서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백성들 가운데 영적인 각성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며, 어떤 자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들먹거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벨론의 파괴와 연관성을 갖게 된다. 다른 나라를 쳐부수기를 즐겨하던 바벨론은 동일한 멸망을 경험하게 된다. 바벨론은 무참하게 살육당하며, 이스라엘로 돌아온 사람들은 말하기를 바벨론의 파멸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것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인들의 일시적인 흥왕에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3. 반복되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33-46)① 결국 심판을 받게 되는 바벨론의 참상(33-40)② 범죄한 바벨론을 침입하는 대적과 바벨론의 반응(41-46)

 

본 단락은 언약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귀환을 보장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선언은 포로 현지에서 심판으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며, 불안감을 해소시킴으로써 언약을 상기시켜 준다. 특별히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칼은 방백들, 현인, 거짓 예언자, 그리고 군사들에게 차례로 임할 것이다. 그리고 풍요했던 도시들은 황폐한 광야가 되어서 사막의 생물들, 시랑 올빼미들이 사는 처참한 장소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심판을 집행하기 위하여 북방으로부터 내려올 이방 나라를 사용하신다. 그들은 바벨론에 대한 공격을 하는데 이전에 바벨론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잔인한 행동을 한다. 마치 새끼 양을 공격하는 사자처럼 잔인하게 공격을 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공의의 도구로 사용된 자라 할지라도 타락하면 영락없이 징계하신다.

51장 : 바벨론 심판의 필연성1. 하나님의 능력과 바벨론의 멸망(1-19)

① 바벨론을 파괴시킬 자(1-6)

 

② 바벨론의 멸망을 금잔의 파괴로 비유(7-10)

 

③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11-14)

 

④ 창조주에 대한 노래(15-19)

 

본 단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세력의 상징인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한 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나님을 벗어나 자기 힘을 의지하던 강대국 바벨론은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며, 세계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암시해 준다. 결국 바벨론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 바벨론의 무력함(20-44)

① 바벨론의 과거 행적에 상응하는 심판(20-32)

 

② 바벨론이 하나님께 행했던 일들에 대한 심판(33-35)

 

③ 바벨론의 총체적인 심판(36-44)

 

바벨론은 열방들보다 강한 나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심판당할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바벨론은 강한 군사력으로 주위의 열방들에게 철저한 파괴를 일삼았고 당시의 모든 나라들, 특히 유다에게 있어서 힘과 권력의 커다란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함으로써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바벨론의 심판의 원인은 잘못된 종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벨’은 일종의 수호신으로서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자로 추앙을 받았다. 이러한 종교관은 삶을 파괴적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에도 심각한 위험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이러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바벨론은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배역하였고, 그 결과로 유다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3.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원(45-64)

① 바벨론 포로들에 대한 메시지(45-51)

 

② 바벨론의 피할 수 없는 전적인 심판(52-58)

 

③ 총체적인 역사 진술(59-64)

 

본 단락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누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로 심판을 받는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신실한 백성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오셨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던 것이다.

52장 : 예루살렘의 함락1.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 가게 됨(1-11)① 시드기야의 죄(1-3)② 예루살렘의 포위된 상황과 시드기야의 수치(4-11)

 

본 단락은 예루살렘 멸망의 신학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함락은 ‘하나님께서 언약 공동체를 완전히 버리셨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인해 유다 백성들에게 심각한 좌절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유다의 패망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러나 하나님은 유다의 패망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루시지 않는다. 물론 심판이란 것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선명하게 부각된다. 바벨론에서의 다니엘의 활동은 세상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의 반영이다. 예레미야는 이 두 역사를 동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루살렘의 멸망 사건은 죄로 인해 비롯되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의 흐름을 인간이 결코 거스릴 수가 없다.

시드기야 왕에 대한 심판은 이미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왕의 제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들의 통치를 끝내고 왕에 의한 통치를 요구했을 때부터 이미 문제는 시작되었다. 물론 하나님이 왕정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다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왕정 제도자체의 내적 동기, 즉 그것이 반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동기에서 왕을 요구했던 사악함이 시드기야 시대에 와서 결정적으로 표출된다. 이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사명을 잃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대리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2. 예루살렘의 파괴(12-27)

① 예루살렘의 모든 집에 대한 심판(12-16)

 

② 성전 기물의 약탈(17-23)

 

③ 유다의 종교지도자들의 사로잡히게 됨(24-26)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및 예루살렘의 모든 집이 불살라졌으며, 예루살렘 사면의 성벽은 무너지게 된다. 또한 성중에 남아 있던 백성들과 항복한 자들과 남은 무리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다. 그리고 항복하기를 거부했던 대제사장과 방백들은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성전의 기구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성전의 모든 기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유다에서 떠났다는 말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적인 욕심과 우상에 현혹될 때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다의 종교지도자들은 사로잡히고 말았다. 유다 패망의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지도자들의 죄악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영적인 지도자들이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들의 타락은 곧 이스라엘 전체의 타락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3. 포로의 수와 이스라엘의 소망(28-34)① 바벨론 포로의 수(28-30)②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31-34)

 

본 단락에서는 유다의 패망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바벨론에 의한 현실의 고통 가운데서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가깝게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통한 회복을, 멀게는 신약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애가 1장 : 유다의 슬픔1. 유다의 멸망에 대한 선지자의 슬픔(1-11)①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가장 큰 슬픔을 느껴야 한다(1-4)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극도의 슬픔을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선지자의 슬픔은 선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확립되어지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할 때 비참한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벗어날 때 아픔과 두려움을 느끼며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이전의 영광이 다 사라진다(5-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확인시키기 위하여 이전에 누렸던 모든 영광을 거두어 가신다. 열방들은 이스라엘을 유린하고 지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상황을 비웃는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점이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필연적으로 멸망과 파괴가 수반된다.

③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이유는 죄 때문이다(8-11).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도의 슬픔을 당하고 이전의 영광이 떠나가게 된 것은 죄악 된 본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진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이다. 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교제를 방해하며, 더 나아가서 대인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파괴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영역은 왜곡되고 부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혀 있는 죄의 담을 무너뜨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이다.

2. 예루살렘 성의 애가(12-22)① 예루살렘의 현재 상황(12-15)

현재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선지자는 비참한 결과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현재의 상황을 ‘멍에’로 표현하므로써 지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과거의 모든 영광을 상실하고 열방에 의해 정복당하는 가련한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② 예루살렘의 현재 상황에 대한 슬픔(16-19)

예루살렘을 의인화시켜 슬픔을 묘사하는 선지자는 감정의 폭을 더욱 더 극대화하기 위하여 ‘운다’는 표현을 쓴다. 이러한 슬픔은 이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때 더욱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인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은 단지 인간적인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는데서 오는 신앙적인 슬픔이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모습은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이다.

③ 예루살렘의 현재 상황에 대한 호소(20-22)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이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한다. 이러한 호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해주시고 언약을 완전히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호소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간구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치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 애가 2장 :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한 슬픔1.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심판(1-9)① 하나님의 전 국가적 심판(1-5)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요 거룩한 나라였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셨고, 모든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셨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열방 중에서 건짐을 받은 언약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을 바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하게 범죄하므로 하나님께 전 국가적인 심판을 받게 된다.

②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심판(6-9)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성전이 부패하고 타락하므로 하나님은 가혹한 심판을 내리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왜 국가적인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의 원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의 슬픔(10-17)①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심판을 당할 때 진정으로 회개하게 된다(10-12)

이스라엘에 닥친 심판은 비록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므로 심판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차기 보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13-14)

특별히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계시를 전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③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을 때 세상 백성들보다 더욱 수치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15-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수여자로써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받은 만큼 더욱 거룩하고 성결한 삶의 질이 요구되었다. 즉 독특한 신분과 특권을 향유한 만큼 의무와 책임의 온전한 이행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이 결여된다면 세상 백성들보다 더 수치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3. 기도와 응답(18-22)①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 참된 회개를 해야 한다(18-19)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진정한 눈물을 흘리는 회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제사에서 벗어나 마음을 찟고 통곡하는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맺게 될 때 진정한 변혁과 갱신이 가능하다.

② 예루살렘 성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20-22)

예루살렘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이나 특권의식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오로지 간구해야 한다. 현실의 상황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메달려야 한다. 하나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애가 3장 : 좌절에서 소망으로1. 한 개인의 슬픔(1-18)① 저자 자신의 한계적인 상황에 대한 탄식(1-13)

저자가 당하는 개인적인 고난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고난과 같다.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고난은 예루살렘의 파멸에서 기인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처한 전 공동체적 고난을 자신의 개인적인 고난과 동일시한다. 이것은 신약의 교회와 성도의 관계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고난이 자신의 고난이었듯이, 교회의 아픔은 곧 성도의 아픔이다. 이런 한 지체 의식이 오늘날 성도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②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무효화되는 슬픔(14-18)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절망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끊어질 때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연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믿음을 가질 때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경우에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는 외형적인 사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큰 고통이었다.

2. 여호와의 긍휼하심에 근거한 소망(19-39)

①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내용(19-26)

 

② 여호와의 근본적인 목적(27-33)

 

③ 인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34-39).

 

본 단락에서는 심판 속에서도 구원을 소망하는 선지자의 자세가 잘 드러나고 있다. 유다가 이방 나라들의 포로가 되는 상황에서도 궁극적인 소망을 더욱 심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런 소망의 핵심은 여호와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혈통적,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고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를 구속하심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언약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3.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권고(40-51)

① 회개를 촉구(40-41)

 

② 회개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42-47)

 

③ 재차 예루살렘을 긍휼히 여길 것을 바라는 심정(48-51)

 

본 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신앙적 자세를 전제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4. 대적이 가져다주는 고통(52-66)① 대적에 의해 겪는 어려움(52-54)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개인적인 고통의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즉 이스라엘이 주변 열방의 수치거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반역할 때 이웃과 사회 속에서의 갈등과 소외가 극대화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② 여호와께 간구(55-66)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변호자가 되어주신다. 저자는 이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예레미야 애가 4장 : 예루살렘의 과거와 미래1.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재(1-10)

①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재의 신분(1-8)

 

② 현재의 비참함(9-10)

성경 과거 현재
1절 금, 정금, 성소의 돌 퇴색하고 거리에서 떨어짐
보배, 정금
2절 토기장이의 질항아리
진수를 먹던 자,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
5절 거리의 외로움, 거름더미를 안고 있음
7,8절 얼굴이 숯보다 검고, 막대기 같이 되었음
존귀한 자의 몸, 마광한 청옥

 

이상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맺고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축복스러운 상황인가를 보여주고, 동시에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강력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상실했을 때 가장 비참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찾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방 민족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상태에서 기근이 찾아온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들짐승도 새끼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데 이스라엘은 자식에게 양식을 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언약백성은 축복은 상실하고 좌절과 고난만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2. 종교지도자들의 죄(11-16)① 종교지도자들의 죄(11-14)② 그들의 구체적인 행동(15-16)

 

본 단락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죄악의 심각성을 문둥병에 걸린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문둥병자들은 이웃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는 자들로서 심각한 죄인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종교 지도자들에게 쓰여졌다는 사실은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지 않고 인간의 사상이나 생각을 전파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죄를 범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헛된 소원(17-20)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의지해서는 안된다(17-18).

유다백성들의 끊임없는 유혹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방 백성들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강대국과 협약을 맺거나 동맹을 맺으므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독특한 백성들이다.

② 세상을 의지하면 가장 수치스러운 결과를 경험한다.(19-20)

유다 백성들이 세상(애굽)을 의지한 결과 이방 백성들의 침략을 받고 나라를 빼앗기는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던 영광스러운 축복을 상실하고 가장 치욕적인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겪게 되는 당연한 결과이다.

4. 에돔의 심판(21-22)

에돔은 바벨론을 부추켜서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였다. 본 단락은 바로 그런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는 에돔의 파멸을 예언하므로써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제시하고 있다.

 

예레미야 애가 5장 : 예레미야의 마지막 기도1. 이스라엘의 현재 신분에 대한 재 진술(1-7)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추된 신분(1-4) - 예레미야의 중보기도

예레미야는 부와 명예와 영광을 모두 상실한 이스라엘을 위해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아픔을 놓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간절히 부르짖는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②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연합한 결과(5-7) - 기도할 때 죄를 깨닫게 됨.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을 가장 확실하게 경험케 하는 신앙의 의식으로서 영적각성을 가능케 해준다. 선지자는 무감각한 백성들과는 달리 민족의 죄악을 깨닫고 앞장서서 회개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눌 때 죄의 두려움을 심각하게 느낄 수가 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2. 이스라엘의 수치스러운 모습(8-18)① 이스라엘의 종 된 상태(8-14)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세상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종 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신앙은 전혀 없이 오직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만을 최대의 관심사로 삼았다. 이처럼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추구하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심각하게 경고하였던 것이다.

② 종 된 상황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15-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사랑한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마음속에 평강이 사라졌다.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가 쌓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 다르며 그 평안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영적인 무지가 뒤따랐다. 세상을 사랑하면 자연적으로 하나님 의식이 사라지고 무감각해지고, 미련하고 허망해진다.

3.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19-22)① 여호와의 영원하신 약속을 상기하는 호소(19-20)②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21-22)

 

본 단락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상에 근거하여 간절히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은 백성들 자체 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성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것이다. 성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언약에 근거하여 새로운 소망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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