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은혜가 떨어지면 내려갑니다. / 창 12 : 10-20

열려라 에바다 2024. 5. 11. 14:54

은혜가 떨어지면 내려갑니다. /  12 : 10-20 (주달영 목사)

 

병든 물고기는 밑으로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위쪽을 향해 올라갑니다.

병든 독수리는 땅을 걸어 다니다가 죽지만 건강한 독수리는 힘차게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우리 신앙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신앙이 되어야지

병든 물고기처럼 세상 시류를 따라 세상 더러운 곳으로 떠내려가면 안 됩니다.

 

고라 일당이 은혜가 떨어지자 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하다가 스올까지 내려갔습니다.

(16:31-33)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욥바로 내려갔다가 다시 배 밑층으로 내려가 잠을 자다가 해초가 있는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그 영혼은 스올까지 내려갔습니다.

엘리멜렉도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갔다가 자기도 죽고 두 아들도 죽어 스올로 내려갔지만 나오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올라왔습니다.

 

1,본문은 아브람이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가 애굽까지 내려가 고통을 당하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올라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드리며 감사함으로 찬송과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은혜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아브람의 공동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선하심을 맛봄으로 소망이 생겼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는 담대함과 믿음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가나안 땅의 환경은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좋은 땅들은 원주민들이 차지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곳을 떠나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다 보니 점점 은혜도 떨어지고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다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기뻐하며 이제 부터는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만 주어진 환경은 여전히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짜 나를 사랑할까라는 의심이 들며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스라엘이 계속 죄를 짓다가 나라가 망했고 바벨론 포로가 되어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복의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좌절할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데 어려운 환경들을 빨리 해결해 주지 않을까요?

그런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훈련시켜 마음을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호랑이나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강아지나 닭처럼 키우지 않고 강하게 훈련시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실 때 영적전쟁을 수행할 하나님의 군대로 불렀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면서 환경을 통해 훈련시키고 연단시키는 것입니다.

광야 훈련을 통해 죄성을 제거하고 온유한 믿음의 용사로 성장시켜 마귀와 싸울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2,아브람은 기근이 오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식과 풀이 풍성한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방법은 기근이 올 때 가나안 사람들이 취했던 생활방식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당장은 옳은 것 같지만 얼마가지 않아 실패와 고통으로 끝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방식을 취하지 말고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뜻을 정하고 애굽으로 내려갈 땐 막지 않고 그 아들 이삭이 내려갈 때는 찾아오셔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26:1-2)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그래서 이삭은 순종하여 그랄에 머물렀더니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맛보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왜 막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시험입니다.

아브람은 이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는데 인내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함으로 시험에 넘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세워줄 수 있지만 넘어지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14: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그래서 지금까지 잘 서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로 서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넘어졌다고 해서 낙심해서도 안되고 이런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허물을 알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3.아브람은 내려가면서 걱정이 있었습니다.

(12-13)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그래서 부부가 아니라 오빠와 누이동생으로 서로 합의하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사래가 애굽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고 고관들이 사래를 왕에게 추천했습니다.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왕은 사래를 보고 흡족하여 아브람을 불렀는데 이때라도 사실대로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하고 재물을 받고 말았습니다.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결국 아브람은 지참금을 받고 자기 아내를 판 것이 되어 가슴을 치며 후회했지만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낙심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잘못을 회개하며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미리 뜻을 알려 주지만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그대로 놔두심으로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그때서야 자기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지만 톡톡한 댓가를 치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

조금 늦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황논리에 따라 살아갑니다.

상황논리는 객관적 사실이나 원칙에 의거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상황논리에 빠지지 말고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도 당하지만 인내하며 기다리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4,하나님은 아브람의 간구를 들으시고 바로를 간섭하여 큰 재앙을 내렸습니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 이유는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린다고 했습니다.

 

앞에 저주(칼랄)는 감소시키다, 낮게 여기다 인데 아브라함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면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행위가 됩니다. 뒤에 저주(아랄)는 파문, 제거시키다 인데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그들을 감소시켜 파문되거나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음으로 그의 이웃들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화평하게 지내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아브람이 누구인지를 몰라 축복하지 못하고 아브람의 아내를 취함으로 결국 아브람을 하찮케 여기는 행위가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바로는 궁에 들어온 여인이 아브람의 아내임을 알았고 그를 불러 책망은 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죽이지 않고 많은 소유물과 함께 보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해를 당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5,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상황에 따라 거짓말 하고 사람을 속이면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과 사람을 통해 거짓된 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하며 믿음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살면 사탄에게 속는 것이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이런 일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어디에 있던지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았고

나의 삶은 상황논리가 아니라 언약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올라가는 신앙을 위해 예배드리기를 기뻐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늘 은혜를 사모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