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오해와 진실(막3:20-30)

열려라 에바다 2024. 6. 10. 13:32

오해를 넘어서는 능력 :마가복음3:20-35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13324.06.08 13:48댓글 1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두 번의 오해를 받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흔히 있었던 오해는 조상신을 모시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예수교는 조상도 모르는 불효의 종교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당은 연애 당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유교문화에 익숙했던 시절 남녀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이 그들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로마 기독교가 핍박을 받을 당시 교인들은 카타콤이라는 무덤에 들어가 비밀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성찬을 행하면서 이것은 내 피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다. 이것을 마시라 먹으라.’ 하는 말을 들으면서 기독교인들은 피와 살을 먹는 식인종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개종하고 복음을 전할 때 한번은 감옥에 갇혀서 베스도 총독에게 자신의 개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를 전하면서 특별히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였을 때 총독 베스도는 바울을 미쳤다고 진단합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사역초기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붙들러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당시의 상황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난 소문 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사렛에서 30년 동안 목수 일을 하던 나사렛 예수가 갑자기 사람들을 몰고 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고 이상한 말을 하니까 사람들의 눈에는 미쳤다고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당국자들은 사실파악을 위해 사찰단을 보냈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이상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현장을 보니까 이것은 미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었고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귀신이 쫓겨나가고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은 절대 미친 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던 사찰단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부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를 선지자로 인정하기도 싫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결론을 맺게 됩니다.

여기에 대하여 반박하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이 미쳤다고 하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를 붙들러 나왔다는 것은 친족들이 예수가 정말 미쳤다고 인정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입니다.

소문을 들은 가족들은 많이 걱정을 했겠지요.

그래서 정말 소문이 사실인가 확인도 할 겸 사실이면 예수를 붙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찾아 온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오해였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오해가 생겼겠습니까?

평범한 인간 목수의 삶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사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세 있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바뀐 예수님의 삶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결코 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열심이었고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변화의 모습을 경험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가 전부인 줄 알고 세상을 좇다가 그것을 벗어버리고 영의 가치를 좇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하고,

주님의 일을 하면서 정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을 내는 모습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주님을 좇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계셨는데요, 그 분은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라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제자훈련 세미나를 가면 제일 먼저 강의하는 내용이 광인론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주님에게 미쳐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예수에게 미쳐야 진정한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 자신이 평신도를 깨운다는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국교회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두 번은 미쳐봐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 있어 -인간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늘 그렇게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때가 있어야 하고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미쳤다는 것은 헛된 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삶이 변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미쳤다는 오해를 넘어서서 능력과 헌신과 충성의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쳤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향하여 네가 미쳤다고 했을 때 바울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합니다.’ 라고 항변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조금 미쳤다고 해야 그것이 진정하고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낮아지고 겸손하고 희생적으로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를 무서워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해를 넘어서는 능력과 헌신과 충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사실 예수님의 행적을 시찰한 시찰단원들이 궁여지책으로 내 놓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 자체에 벌써 모순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귀신의 왕이 자기 부하를 쫓아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모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반박하면서 분쟁하는 나라나 분쟁하는 집이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26)

이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반박의 말씀입니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분쟁하는 자는 망한다는 주님의 귀한 교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규태 씨가 쓴 한국인의 버릇에 보면 버리고 싶은 버릇중 하나가 파당병입니다.

이 지적처럼 우리나라는 지금 내부의 갈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여와 야의 정치권 싸움,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 사용자와 노동자의 갈등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심각한 형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의한 두려움보다 우리 내부끼리 싸우다가 스스로 망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외부의 침략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끼리의 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수 반란 사건이나 제주 4. 3사건들이 그 예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갈등의 많은 부분이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과 조금 다른 생각이나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분쟁하는 나라나 가정은 설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 현충일에 국내성지순례로 강화도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1896년에 세워진 홍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

그리고 강화도 최초의 기독교식 장례를 치루고 성경에 나와 있는 희년과 같은 의미로 종순일이 빚을 탕감해주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개명을 하였는데 성은 바꿀 수 없어서 이름만 바꾸었는데 마지막은 모든 성도가 하나의 형제라는 의미에서 한일()자를 썼다는 것입니다.

종순일, 박능일, 권신일 등의 이름이 그 예입니다.

양반과 상놈의 사회적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은 정말 기독교인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 됨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을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 되는 일,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욱 힘써야 하고 그럴 때 이 나라의 갈등과 분쟁은 점차로 해소되어질 줄 믿습니다.

 

3. 이런 교훈을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귀신이 쫓겨나가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절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탄을 결박하고 사탄을 물리쳤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십니다.

권능과 영광과 존귀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결박하고 쫓아내시기에 귀신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능력으로 각종 귀신을 쫓아내실 뿐 아니라 아픈 자를 고치시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바로 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조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11:6)

하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본주의자들의 말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닙니다.

그 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어서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살아계시기에 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분명한 상을 주십니다.

그 상은 기도의 응답일 수 있고 헌신에 대한 축복일 수도 있고 이 땅의 축복이거나 영원한 나라의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상이 되었든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우리의 헌신과 충성에 대해 그것이 크던 작던, 알려졌던 알려지지 않았던, 그것과 상관없이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상을 주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더욱 헌신하시고 충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28, 29)

여기에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지금 예루살렘의 사찰단은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미친 것이 아니다. 분명코 자신들의 눈앞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믿지 않고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성령의 역사에 정면으로 대항을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십니다.

그 성령의 역사에 우리는 아멘 하면서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성령의 역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7:54)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귀를 막고 이를 갑니다. 스데반을 돌로 칩니다.

성령의 역사를 억지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거부하거나 거절하지 말고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이 세상에서 축복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오해하고 곡해할지라도 우리는 오해를 넘어서는 헌신과 충성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