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달은 ‘기다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누가 복음에 나오는 말씀으로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위에 붙여진 제목을 보면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라고 되어 있으실 겁니다. 성경에서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 말씀이 베드로 전서 5장 8, 9절 말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a) 아멘.
사탄이 우리의 주적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가장 극적으로 나오는 장면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처절하게 기도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38;40;41)는 말씀을 연속적으로 세 번 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시험과 유혹이 몰려올 때 깨어 있지 않으면 사탄에게 굴복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시험을 물리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목숨과 영혼을 탈취하려는 사탄의 공격을 도무지 물리칠 수 없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대부분 종말에 관해서 연결 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깨어 있으라는 구절을 한 구절씩 읽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 13:37),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아멘.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말씀들입니다.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 복음에서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심판, 영생 이런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2;24;25;27) 아멘.
이렇듯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서신서 요한 계시록까지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심판과 영생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히 구원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확신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소망으로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깨어서 그 날이 올 때를 준비하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신 내용입니다.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35절을 읽어 드립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아멘.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는 모습이 깨어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허리에 띠를 띤다는 성경 말씀 많이 들어보셨죠? 언제 이런 행동을 보이나요?
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당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창 37:34) 하였습니다. 허리를 묶는 것은 애통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열왕기상 20장에는 아람왕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무려 12만 팔천명이 죽임 당하도록 대패하여 아벡 성읍의 골방에 숨었다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왕상 20:32)라고 항복과 목숨을 구걸합니다. 허리를 동이는 것은 목숨만을 빌려달라고 빌 때 하는 행동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욘 3:6), 금식하며 기도 할 때(느 9:1),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을 대답하여야 할 때(욥 38:3),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바랄 때(벧전 1:13) 등입니다. 특히 진심으로 참회하려는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허리를 단단히 동여 매고 재 위에 앉은 채로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는 첫 번째 마음이 왜 허리에 띠를 띠라고 했는지 아셨을 겁니다. 6월 달 내내 말씀 드리고 있는 것처럼 참회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참회하는 사람만이 진리되신 예수님을 붙잡고 허리에 단단히 묶어서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회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허리띠를 단단히 동이고 묶어 매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재림을 기다리는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되는 자세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진리의 허리띠는 단단히 묶여 있습니까? 묶을 채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여도 주님은 그것과는 상관 없이 도둑 같이 오실 겁니다.
두번째 그 때를 기다리는 자세는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입니다. 등불은 마태복음 25장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 미련한 자다섯 처녀 비유에 나오듯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열처녀 비유를 하신 후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라고 하셨습니다.
등불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은 항상 빛 가운데 자신을 드러낸 상태, 즉 영적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빛 가운데 머물러 있는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이 금방이라도 문을 두드리면 달려나가 열어줄 수 있도록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과 정결함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일들이 회개하게 하고, 거룩하게 살게하고, 깨어 기도하게 하시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자 그럼 두 가지를 묶어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를 그 날, 그 때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세는 “참회하며, 진리 되신 빛 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기다림은 있을 수 없으며, 어둠(거짓, 위선, 음란, 음행, 불의, 불순종, 교만, 정죄, 판단, 포악, 간교, 분열, 분노...)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문을 열라는 신랑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서 있으라”는 마지막 말씀은 명령형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허리 띠를 계속 매고 있어라, 등불을 계속 켜 놓아라, 그 자세로 계속 준비하며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일평생 이 자세를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하는 삶, 진리와 거룩으로 사는 삶은 권면하고 강조할 사항을 훨씬 뛰어넘어서 강요하고 강제적으로 압박해도 괜찮을 정도로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사역 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 고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회하라, 거룩하게 살아라, 진리와 동행하라,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 기다리라”이런 말씀은 듣기도 싫어하고, 들어도 그 때 뿐인 것처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우리도 포함 됩니다. 예수님은 만나고 싶고, 하나님 나라는 가고 싶은 것과 참회하며 빛과 진리 안에 사는 것은 별개인가요? 미뤄 놓았다가 나중에 해도 되는 건가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 귀에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풀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고 우리는 귀로 이 말씀을 들었으니 경각심을 느끼고 긴장감 있게 매일 매일의 삶이 진짜 그 날과 그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로,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각자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 하시렵니까? 노력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여러분이 이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움직이여서, 매일 매일 참회 하고, 매일 매일 빛과 진리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기쁜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때를 준비하는 자세를 말씀 하신 예수님은 준비된 자들이 맞이하게 될 상황에 대해서 계속해서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36~ 39절을 읽어 드립니다.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아멘.
이 비유에서 혼인 집이 나오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밤 늦도록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언제 올지 모를 그 때를 묘사하는 적절한 배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6~37절은 주인이 예상하던 시간에(예:늦은 밤이 아닌 저녁 즈음) 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말합니다.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 왔을 때 기다리는 사람(종들)이 있었습니다. 예상한 시기에 왔다고 해서 다 기다린 것은 아니고 물론 이 때도 기다리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이고, 기다리는 사람은 36절에서 말하는 허리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서서 기다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주인이 일찍 오시든, 더디 오시든, 한 밤 중에 오시든, 새벽에 오시든, 어느 시간이든이 상관 없이 주인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깨어 있던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의 자세와 태도를 보고 매우 기뻐 합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깨어 기다리던)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라고 했습니다.
수종 든다는 것은 섬겨 준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너무 기쁜 나머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먹고 마시고 즐기도록 손수 시중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복이 있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섬겨주는 것도 감동이지만 복이 있다고 말한 것이 진짜 선물입니다.
지난 주에 복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자체가 복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복중의 복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보았거나,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생명 길이 보이거나, 더럽고 불결한 죄와 악을 끊어내고 사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이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주인이 기다리던 종들에게 “너희는 복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할 것이고, 너희는 나를 보고 살 것이며, 너희는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너희는 영원히 죄와 악이 침범하지 못하는 거룩함으로 살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는 이러한 복이 있으리라 라고 말씀 한 겁니다.
엄청 나지 않습니까?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를 그 날 그 때를 위해서 항상 허리 띠를 매고 항상 등불을 켜고 서서 기다리기를 계속 했더니, 이런 엄청난 대접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길이 참고 기다리던 그 모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넘치도록 보상을 다 받았습니다.
함께하는 복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복 중의 복입니다. 이것을 받으려고 우리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비유에 나오는 기다리고 있던 종들이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우리가 만약 진실로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38~39절은 주인이 완전히 늦게 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경, 삼경이라는 시간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 해가 질 때로부터 다음날 새벽 해 뜰 때까지를 3등분해서, 해질 때부터 밤 10시경을 초저녁으로, 밤 10시~새벽 2시경을 이경으로, 새벽 2시~해 뜰 때까지를 삼경으로 구분했습니다.
이경, 삼경은 진짜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도둑들이 새벽2~3시에 활동한다고 합니다. 39절에도 도둑이 나옵니다. 도둑이 드는 시간이 언제 인지 뻔히 알고 있다면 그 시간에 종들은 교대로라도 야간 경계를 해야 맞습니다. 아마 주인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을 겁니다.
저녁 이른 시간이 아닌 이경, 삼경 늦은 새벽까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 종들 역시 복이 있으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벽까지 기다렸다고 해서 더 큰 상급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예수님)자체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할 수 있는 복을 받았다면 어느 누구라도 불평을 가질 수 없이 최고의 복, 최대의 복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녁 시간에 기다린 종들, 그리고 새벽 까지 기다린 종들을 나누어서 이야기 한 것은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며, 언제까지 준비하고 깨어 있음을 흐트러트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날, 그 때, 그 시간은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상하며 맞춤형으로 그 시간에만 한정해서 기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전체의 시간은 단 1초도 허비하지 않고 재림의 그 날, 그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시는 비유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언제인지도 모를 그 날을 매일, 매 시간, 매 초마다 집중하고 긴장감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신 겁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굳게 붇잡아 주셔서 기다리는 마음을 놓치지 않게, 기다리는 마음 변하지 않게, 기다리는 인내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길만이 새벽까지 기다리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항상 간구 하시고, 기다리는 자에게 영원한 복이 있으리라 말씀 하시는 그 날의 음성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성령이 주는 위로와 평안과 능력 가운데 살아가시는 충성된 기다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 말씀 40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하리라,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아시느니라”이런 말씀들과 느낌이 비슷한 말씀입니다.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은 앞서 35절의 ‘서 있으라’는 말씀과 동일하게 명령형으로, 문법적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지 이런 말씀들만 보면 굉장한 부담감이 듭니다.
그런데 부담감이 들수록 사실은 굉장히 좋은 겁니다. 이런 것을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예수)가 오실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도 안하고 살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자녀(종, 백성)들이기에 우리의 평생 임무는 그 날과 그 때를 한 시도 잊지 말고 “생각하며 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달리 주님은 오시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뜻하신 대로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시면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고 약속 하셨고,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이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온 인류에게 소망으로 역사할 겁니다.
기다리는 것에 충실한 우리들, 오시는 것에 신실하신 우리 주님,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준비하고, 깨어 있고, 기다리는 것을 모두 함축하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상황입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렇기 때문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당시의 제자들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나 들으라고, 나에게 대놓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준비하고, 기다리고, 깨어 있는 것이 앞으로는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익숙한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담가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응원과 격려의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듣던 싫증나는 말씀이 아니라 함께 있는 복을 주시려는 가장 큰 은혜의 말씀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여러분들의 삶이 깨어서 기다리는 삶, 그 때를 준비하는 삶, 영원히 함께함을 간절히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하루 하루가 우리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하는 복중의 복을 누리는 기쁨의 시간들로 채워져 가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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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여 주셔서 깨어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붙잡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너희에게 복이 있으리라”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기쁨과 감사 가운데 길이 참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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