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새해에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자 (이사야 56장 1~8절)

열려라 에바다 2025. 1. 7. 15:50
새해에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자 (이사야 56장 1~8절)
 
백대영추천 1조회 4925.01.06 11:32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정의(justice)”라는 말(미쉬파트)은 영어 “justice”에 해당하며, “재판”, “심판”, “판단”(judgment), “정의”, “공정”(justice)을 뜻합니다. “판단하다”, “재판하다”라는 동사(샤파트)에서 나왔습니다(창 18:19, 16:5).
법원 앞에 가면 조각상이 있는데, 그 조각상이 천칭을 들고 있습니다. 조각상의 이름이 “디케”입니다. “디케”는 그리스어로 “정의”를 뜻합니다. 천칭은 공평하고 엄정한 법의 기준을 뜻하며, 법 앞에 평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사법부가 정의롭지 않고 부정과 불의를 행합니다. 정의가 행해져야 할 사법부에서 부정과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이 죄인으로 판결되고, 이재명의 죄명이 밝혀져야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부가 썩고 불의한 자들이 재판석에 앉아 있다 보니 이재명이 법원에 불려 가도 떳떳하고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의”와 “공의”를 원하십니다.




1. 우리는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56장 1절에 “너희는 정의(正義)를 지키고 공의(公義)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들어오기와 나의 공의가 폭로되기에 가까움이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6~66장은 ‘섬김의 표지’며, ‘신적 성품’에 관한 내용입니다.1)
이사야를 셋으로 나눌 때 56장은 이사야 제3부의 시작 부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정의”와 “공의”고, 그는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십니다.
‘지온(Zion)이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2)
이 부분은 이사야의 마지막 문학 단위로 ‘하나님 종들의 운명’입니다.3)
페르시아가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이스라엘에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키루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꿈에서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4) 그렇지만 포로들이 약속의 땅에 돌아왔을 때 여러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귀환한 사람들과 유대 땅에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새로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5)
56~66장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포로 후기 유다 공동체를 겨냥하여 종말에 회복될 지온에 누가 들어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6)
악인들은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지 않아 언약의 수혜자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7)
핵심적 심상은 두 종류의 심상을 대비시키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등의 심상들입니다.8)
이사야 56:1~8은 ‘순종하는 외국인들’에 관한 내용입니다.9)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유전이 아니라 순종에 달린 것입니다.10)
유대인 외에 외국인을 모으려 한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외국인들도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되고 상속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키고 행하는 것은 빛의 왕국으로 옮겨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11)
공동체의 희망은 회개하는 모습이 있을 때 건설될 수 있습니다.12)
본문 56장 1~8절은 외국인들이 지온에 온다는 주제를 언급합니다.13)
1~8절은 세계적인 백성의 중심에 있는 안식일에 관한 내용입니다.14)
너희는 정의(正義)를 지키고 공의(公義)를 행하라”라는 것입니다.15)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한다면 지온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16)
하나님께서 전에 제외된 자들도 이제 받아들이실 것이 선언됩니다. 이러한 선언은 이스라엘이 열려 있는 백성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인과 고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17)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것으로 언급됩니다(사 56:7).18)
외국인을 포함한 만민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길이 열렸습니다.19)
언약을 강하게 붙잡는 고자는 자식들이 없을지라도 복을 받습니다.20)
1~2절은 ‘율법을 지킬 것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21)
3~7절은 ‘외국인들과 고자들에 대한 기쁜 소식의 선포’입니다.22)
3~4절은 ‘언약을 굳게 잡는 외국인과 고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23)
5절은 고자들을 향한 복이 ‘영원한 이름’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24)
6절은 ‘언약을 굳게 잡는 외국인들’에 관한 말씀입니다.25)
7절은 그 외국인들을 향한 복이 지온에 거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26) 이방인(異邦人)들, 외국인(外國人)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8절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27)
이사야 56장에는 내용상 1~8절이 하나의 단락으로 나타납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라는 일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28)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신다는 내용입니다.29) 그 내용은 행동을 통하여 실천하고 나타내어 보이라는 명령입니다.30)
이에 비해 9절 이하에 이사야 예언자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이유를 바탕으로 하여 1~8절은 하나의 해석 단락으로 정해집니다.31)
‘외국의 예배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32)
이사야 56장 1절에 “너희는 정의(正義)를 지키고 공의(公義)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들어오기와 나의 공의가 폭로되기에 가까움이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는 언약으로 정의되는 관계에서 본질에서 옳은 것입니다.33)
앞부분에 “정의”와 동의어로 뒷부분에 “구원”과 동의어로 나옵니다. 즉, “공의”라는 용어 안에는 “구원”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34)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직접 행동을 통하여 실천하고 나타내 보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35)
“정의”는 독립적이기보다는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도 쓰이는 말이며 약자를 위해 행동하여 인간관계를 정상화해 주는 행동을 나타냅니다.36)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기록되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오기에 가까움입니다(is about to come).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온 것이 아니라 가까운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잡으려고 쫓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 까닭에 구원을 따놓은 것은 아니며,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멀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막 12:34).
구원이 오기에 가까운 까닭에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니 구원의 확신을 하고 살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원이 오기에 가깝기에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만 합니다.37) “정의”와 “공의”에 관심 없이 삶을 사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운 자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38)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으니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우니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종말에 지온에 들어가려면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39) 공의를 행하여야 하니,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본문 56:1의 하나님의 권고에는 사람의 책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40)
사람은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41)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우며 그의 왕국이 가깝기 때문입니다.42)
이사야 56장 2절에 “이것을 행하는 인간(人間)은 복되노라”라고 하고, “그것을 강하게 붙잡는 인류(人類)는 복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사야는 비슷한 말을 쌍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인간”과 “그것을 붙잡는 인류”는 복되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내용을 말할 수 있으나, 1절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는 인간이 복된 자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모든 사람이 “아담의 자손”이므로 “인류”를 뜻합니다. 그것을 붙드는(takes hold of) 인류, 붙잡는(lays hold on) 인류입니다.
그는 안식일을 더럽히기로부터(from profaning) 지키는 자고, 그 손을 모든 악을 행하기로부터(from doing any evil) 지키는 자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에 합류하였음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43)
그 자신의 손을 지키는 것도 복된 자의 생활 방식에 속한 것입니다.44)
“안식일”은 그 백성이 성전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왕국에서 예배의 특권을 누릴지 이해합니다.45)
2절 후반부에는 “지키는”이라는 동사가 분사형으로 2번 사용되었는데 십계명에서 하나님을 향한 계명과 사람을 향한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파울은 이 2가지를 불경 불의라는 용어로 표현하였습니다( 1:18).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경건이고 자기 손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복된 자는 안식일을 더럽히기로부터 지키는 것으로만 예배하지 아니하고 나머지 6일의 삶에 악을 행하기로부터 지키는 것으로도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배는 일요일에 1시간으로 끝나지 않고 매일의 행위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56장 3절에 “야훼에 연합한 외국인의 자손은 말하지 아니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 곁에서 나를 나누실 것이라라고 말하지 말 것이고, 그 고자는 자 나는 시든 나무라고 말하지 말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3~7절은 아무도 배제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입니다. “외국인”과 “고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배타주의적이지 아니하였습니다.46)
유감스럽게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배타주의적인 듯이 오해되었으나,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순수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독특한 정체성을 잃지 아니하기 위해서입니다.47)
우리의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민족을 절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어야 할 악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로부터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 독특한 정체성을 보존하고 그 토대 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48)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열방의 국제 정치에 휘말려 드는 것에 대해 그것을 반대하고 거기에 맞서 싸웠습니다.49)
이사야는 또한 외국인과 고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50)
그의 보편주의는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점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입장은 이사야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51)
3절은 ‘하나님께 연합한 외국인’에 관한 내용입니다(사 56:3).52)
“연합된”이냐 “연합한”이냐 둘 중에서 “연합한”으로 읽은 것입니다.53)
3절의 하나님께 연합한 “외국인의 자손”은 유대교의 개종자입니다. 혈통으로는 유대인이 아니나 회당의 일원이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54)
율법의 정신은 외국인이라 해서 모두 입회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거 행실을 바탕으로 입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외국인에게 총회에 들어올 길이 열렸습니다.55)
하나님께 연합한 이들은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됩니다.56)
구원이 가까우므로 인종적 국가적 구별과 자격이 사라질 것입니다.57)
자손을 낳을 수 없는 고자도 하나님의 왕국에서 제외되지 아니합니다.58)
시든 나무’라는 말은 아버지가 못 되는 무능함에 대한 언급입니다.59) 하나님께서 고자에게 이런 자책의 말을 말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고자들도 자손을 못 낳는 것 때문에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60) 이제는 고자들도 언약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신 23:1). 외국인들과 고자(鼓子)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들에 영생이 주어집니다.


이사야 56장 4~7절에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강하게 붙잡는 고자들에게. 내가 내 집과 내 성벽들 안에 자녀들보다 더 좋은 손과 이름을 줄 것이며 내가 그에게 그것이 잘라냄을 받을 것이 아닌 영원의 이름을 줄 것이고. 야훼에 대하여 자신을 연합한 외국의 자손(foreigner)들이니 그를 봉사하기와 그의 이름을 사랑하기와 그에 종들에 있기 위한 것이며 안식일을 더럽히기부터 지키고 나의 언약 안에 강하게 붙잡는 자들이라. 내가 나의 성별의 산에 데려오겠고 나의 기도의 집에 기쁘게 만들겠으며 그들의 번제들과 희생 제물들을 나의 제단에 기꺼이 받아들임에 만드니, 이유는 내 집은 모든 그 백성들에게 기도의 집으로 불릴 것임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매주 있는 안식일과 모든 안식해야 할 날을 지키면 고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제외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61) 고자들도 안식일과 지킴으로써 언약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62)
안식일 준수는 헌신의 시간이 중요한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63) 안식일 준수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64)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의 언약을 강하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언약을 강하게 붙잡는다는 것은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야훼께서 그 집과 그 성벽 안에 자녀보다 더 좋은 손과 이름을 주시고 그들에게 잘라냄을 받지 아니할 영원의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사 56:5).
하나님의 “집”과 “성벽들”은 하나님의 가족(household)입니다.6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집 안과 그 성벽 안에 주실 것이 있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 안과 그의 성벽 안에 복된 삶을 영원히 누리겠고, 하나님께서는 잘라냄을 받지 아니할 것으로 각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자녀들이 주는 복보다 더 좋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66)
“손”은 기념비를 가리키며, 그 이름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67)
고자들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이름이 잊힐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유교식으로 하면 그들을 위해 제사할 자손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줄 자손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고자들에게 이름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것은 아들들과 딸들보다 좋은 이름인데 영원한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고자들의 충실함이 미래에 기억함이 있을 것으로 약속된 것입니다.68)
영원히 산다면 비문이나 자손을 통하여 대신 기억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잘라냄을 받지 아니할 영원한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히 산다면 그의 이름을 남길 기념비가 필요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자손들이 제사를 지냄으로 자신의 기억을 대대로 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은 5절까지만 살폈습니다.
본문 56장 2절에 “이것을 행하는 인간(人間)은 복되노라”라고 하였고, “그것을 강하게 붙잡는 인류(人類)는 복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인간은 복되고 그것을 강하게 붙잡는 인류는 복됩니다. 영원한 이름을 받는 “복된” 자들이 됩시다(사 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