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로 본 새 마음 (창1:1~2:3)
新 婦추천 0조회 1526.01.04 20:38댓글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하 생략)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성도들과 가정에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 여러분에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새해를 억만 번 맞이해도 우리가 새롭게 되지 않으면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새 마음을 가진 새 사람에 하늘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지창조로 본 새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마음의 새 창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신령한 의미에서의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후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비밀을 성경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이 천지창조 이전과 같이 흑암과 절망 가운데 있다면 오늘 말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우리 영혼에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오기 전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빛이 비치기 전 우리 마음은 죄악과 근심과 공허와 절망으로 앞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에 빛이 비치기 시작되었습니다.
요1:9-11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바울도 고후4:6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바울도 창세기의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소망이 생깁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몰라 방황하던 우리에게 주님은 태양보다 밝은 빛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는 전도지 문구가 생각납니다.
2. 주님이 찾아오시면 거룩한 삶이 시작됩니다.
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둘째 날, 하나님은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나누셨습니다. 빛이 비치자 수분의 대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빛은 태양의 빛은 아닙니다. 그러나 태양 가지고 설명은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양이 사라지면 이 지구는 창조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빛이 비치자 물로 덮인 지구가 꿈틀거리더니 하늘의 물과 땅의 물로 구분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받아들이면 어둠이 사라지고 거룩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거룩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30에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모시면 거룩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구분이 됩니다.
3. 주님이 찾아오시면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11절에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셋째 날, 물이 물러가고 뭍이 드러나면서 그 땅에도 생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풀과 나무와 채소와 꽃이 만발합니다. 이처럼 예수를 영접하면 불신이 사라지고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옥토로 바뀝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30배 60배 100배 열매 맺는 옥토는 다름 아닌 성령 받은 마음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을 드려 더 열심히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주님이 찾아오시면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16절에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넷째 날 만드신 해와 달은 낮과 밤을 주관합니다. 이처럼 인생에는 형통과 기쁨의 낮도 있고 고난과 슬픔의 밤도 있습니다. 시30:5에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시면 환경을 지배합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 는 찬송과 같이 이기는 능력입니다. 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 아는"(빌4:12)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능욕을 당하고 매를 맞아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5. 주님이 찾아오시면 은혜로 충만하게 됩니다.
20절에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 하늘 위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다섯째 날, 물속의 고기와 하늘의 새가 창조되었습니다. 바다 얼마나 넓고 험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 물고기가 그 풍파를 이기고 번성해 갑니다. 하늘 역시 얼마나 크고 높습니까? 어마어마한 중력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새에게도 복을 주시니 번성해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 들이면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긴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 이긴 자라고 하는 자는 사기꾼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가 이긴 자입니다. 세상의 풍파도 세상의 유혹도 이깁니다.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강해집니다. 고후4:16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이것이 예수를 중심에 모신 자의 고백입니다.
6. 주님이 찾아오시면 하나님 형상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짐승의 육신을 가졌지만, 짐승처럼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모시면 의와 진리와 거룩과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됩니다.
나의 악하고 부족함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이 우리 인격과 삶에 나타납니다. 이 비밀을 안다면 도 닦는 사람들 다 올 것인데 알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 비밀을 모르고 신과 합일에 이르려고 이방종교를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한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7. 마지막 주님이 찾아오시면 온전한 안식을 누립니다.
창2:20-3에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 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조의 결과는 안식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임하시면 안식이 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그 임재의 체험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쉴 때까지는 진정한 평안이 없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평강이 내 평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모시는 것만으로도 이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밥 존스 목사는 1975년 심장마비로 사후 세계를 경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흔히 낙원이라 불리는 1층천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 세상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곳은 어떤 두려움도, 염려도, 통증도 없는 완벽한 안식의 장소였습니다." 1층천이 그렇다면 3층천은 어떠하겠습니까? 가히 이르지 못한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 천국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삼고 잘 모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지막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다른 날과 다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 날이 예배의 날이었습니다. 신약에는 안식 후 첫날에 모이는 습관이 생겼지만, 예배의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잘드리면 안식과 창조가 보전되고 발전하나 예배가 무너지면 또다시 흑암의 죄악 가운데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른 날도 도미노처럼 다 무너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사야 43장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새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이 구주 예수님을 나의 주로 삼고 얼마나 잘 모시느냐에 달렸습니다. 거기에 새 창조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창조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참된 안식에 이르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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