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천국에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가요 = 누가복음9;28-36(260111)

열려라 에바다 2026. 1. 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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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목사추천 1조회 5126.01.08 08:22댓글 1 

 

PW : 믿음            BIW : 기대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천국에서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이코 독서회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이 독서회를 만들었습니다.

두꺼운 책을 가져와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 회원, “이 책은 주인공이 많은데 형식이 나열식이고 천편일률적이야,”

다른 회원, “무슨 소리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하고 좋구먼,”

그렇게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급하게 뛰어 들어와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전화번호부를 몽땅 왜! 여기로 가져왔어요?”

요즘은 전화번호 책이 별로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화번호 책이 아주 유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번호 책으로 독서 토론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정신병원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신앙서적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받은 은혜, 새롭게 깨달은 은혜를 서로서로 나누고 공유하면 아주 좋겠습니다.

 

P4.

 

우리나라는 아파트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큰 건설회사에서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시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모델하우스를 건설하여 아파트단지를 홍보한다.

시민들은 모델하우스로 찾아와서 아파트단지의 이모조모를 살펴보면서 새롭게 건설하는 최첨단의 아파트에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꿈을 꾸게 된다.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우리 가족도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 보았으면... 하는 꿈을 꾸게 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있듯이 한 번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는 것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면서 좀 무리해서라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희생하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국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을 알리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상속자가 되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겟을 획득했다고, 믿음으로 획득했다고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이라고 하니까 머릿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하나님의 왕국이 어떤 모습인지, 천국이 어떤 모양인지 잘 그려 지지가 않는다.

뭔가 머릿속에 어슴푸레하게라도 그려지면 좋겠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잘 그려 지지가 않는다.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아주 약간 보여주려고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보여주려고 하시는 천국의 모델하우스는 어떤 모습일까?

천국의 모델하우스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천국의 모델하우스를 바라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일까?

 

D4.

 

 기도하시러 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시는 예수님.

 

28절에서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판신과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세워진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8일이 지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기도하시기 위하여 가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왜 이들 세 제자만 데리고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신 것일까?

다른 제자들은 섭섭해하지 않을까?

목사님께서 나만 빼놓았다면 다른 누군가만 데리고 어딘가를 가신다고 생각하면 과연 나는 괜찮을까?

나도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 것이다.

 

예수님께서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찾아가신 산은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복음서에 구체적인 장소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어느 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와중에 변화 받으신 산을 변화산이라고 부른다.

변화산으로 알려진 산이 어디에 위치하는 산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갈릴리 지역에 있는 다볼산이거나 헬몬산이지 않을까? 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감하고 새로운 예루살렘 사역의 현장으로 옮겨가기 전에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이다.

기도는 예수님과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자녀들, 신앙인들에게 부여해 주신 특권이다.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분별할 수 있고, 영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신앙인들이 하늘 아버지와 깊은 영적인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성령 하나님께서 신앙인들 내면의 세계로 찾아오시고 임재하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더욱더 영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변화받으시는 예수님.

 

29절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을 마태복음17:2에서는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9:2-3에서는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변화된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그 당시 인간의 문자로 기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고의 찬사로, 최상의 찬사로 표현하면서 기록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이 표현보다 더 강력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고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변화받은 모습은 인간이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모습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인간의 언어에는 포현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인간의 언어로 최고의 찬사를 표현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용모가 변화되고 빨래하는 여인네가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는 정도가 가장 잘 표현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 천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더 웅장하고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기록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인간의 언어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께서 변화받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와중에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받으시는 모습은 신앙인들이 앞으로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 변화받는 모습의 아마도 1/10000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이 천국에서 변화받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해도 그 모습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은 큰 강단의 아주 작은 모서리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점 하나 수준이라고나 할까?

너무 비약한 적인 비교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신앙인들의 모습은 이제 갓 엄마의 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갓난아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갓난아기가 어떻게 어른들의 세계를 판단하며 이해할 수 있을까?

갓난아기는 갓난아기의 수준일 뿐이다.

아무리 갓난아기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도 갓난아기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갓난아기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과 애정 속에서 점점 더 건강하고 예쁘고 씩씩하게 자라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른들의 세계가 아주 조금씩 자신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지몽매한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준이 못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아주 적은 수준이라도 보여주심에 감사하게 받으면 된다.

그 모습이 천국의 전체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천국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오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흔히 내가 본 천국 시리즈와 같은 것들이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들이다.

한때 한국교회에 내가 본 천국 시리즈가 유행하면서 교회의 큰 몸살을 앓게 했던 때가 있었다.

대부분 꾸며낸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천국의 모습, 천국의 비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그 수준까지만 이해하면 된다.

믿음으로 더 찬란하고 웅장하고 화려한 천국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신앙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변화받으시는 과정에 구약성경의 두 위대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변화받으시는 예수님께로 찾아오신다.

왜 다른 위대한 인물도 많은데 다른 위대한 인물이 찾아오지 않고 모세와 엘리야가 찾아온 것일까?

히브리 민족의 원조격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영적인 어둠의 세계를 깨뜨린 사무엘이나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인 다윗이나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이 찾아올 수 있었을텐데, 이들이 찾아오지 않고 왜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온 것일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인도한 지도자이다.

출애굽은 죄악 된 애굽에서 구원을 베풀어낸 사건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영적인 상태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가 등장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여 올라간 사람이다.

엘리야는 천국으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죄에서의 구원과 천국에로의 승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다른 위대한 인물들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그림자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죄에서의 구원과 천국에로의 승천이라는 두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께서 변화하는 곳에 찾아오도록 하시는 것이다.

 

31절에서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17:3에서는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라고 기록한다.

마가복음9:4에서도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만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한글성경에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는 말씀을 헬라어원문직역성경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에 관하여 말하였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서 이루어가실 구원의 역사, 십자가 보혈과 복음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고 하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와 왕국을 회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갈 것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구원의 길로 순종하여 가시는 길에 응원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응원하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신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옆에서 누군가가 응원해 주면 든든해지고 더욱더 힘을 얻게 된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이나 존경하는 이들의 응원을 받을 때 잘 해내고 싶은 용기와 힘이 솟아난다.

신앙인들은 누군가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응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더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입게 되는 것이다.

 

 구름으로 덮어주시는 성령님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 피곤하여 한참 동안 졸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로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하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애타시는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졸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이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특별하게 세 사람만 데리고 기도하시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왔는데, 제자라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애타시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막중한 시간에 제자들은 왜 깨어 있지 못한 것일까?

 

병원에 입원하여 너무 아파서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데, 옆에 간호한다는 누군가가 옆에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아예 꿀꿀 자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마음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성으로 올라가서 걸어가야 하는 십자가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 성령님과 깊은 영적인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왔는데,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자들은 매일매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너무 피곤했을 것이다.

육신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다보니 육신의 피곤이 몰려오면서 졸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졸고 있는 와중에 예수님은 변화 받으셨고, 모세와 엘리야가 찾아와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구원의 길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응원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졸던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와 변화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순간 너무나 놀랬을 것이다.

변화 받으신 예수님은 평소에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알려진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설왕설래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얼떨결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주여라는 단어를 헬라어원문직역성경이나 다른 성경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에 대하여 메시야라든지 주님이라든지 God이라든지 Lord라는 개념이 제대로 완전하게 서 있지 못한 상태였다.

베드로는 자신도 너무나 놀래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툭하고 내뱉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순간적으로 착각하여 엉뚱한 말을 툭 툭 내 뱉는다.

 

그러면 왜 베드로는 초막을 짓자고 제안했을까?

변화산에 초막을 세우자고 제안하는 것은 별장을 짓자고 제안하는 것과 같다.

별장을 짓는데, 이왕이면 몇 층 짜리 큰 건물을 세우라고 제안할 것이지 왜 초라한 초막을 짓자고 제안한 것일까?

우리나라 산에 가보면 큰 건물을 지어서 기도원도 하고, 수도원도 하고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니 이왕이면 큰 건물을 지어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제자들이 함께 거주하면서 신앙공동체로 수도원처럼 지내기도 하고 호텔업하여 돈도 벌면서 살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제안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산에 세워야 하는 별장이기 때문에 큰 건물은 필요치 않다고 여겼던 것일까?

예수님 당시에는 초막도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고급 주택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초막이란 광야 40년 생활을 회상할 수 있는 처소이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에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회상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이 찾아오면 각각 자신의 집이나 공원이나 야외에 초막을 세워서 집을 떠나 그 초막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지켜주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회상할 수 있는 초막을 세워서 그 초막에서 지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광야에서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었고, 엘리야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한 천국으로 올라가신 것처럼 자신들도 영원한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한 천국으로 올라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더불어 지내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살았으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라는 소망을 담아서 초막을 짓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신앙인들도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불러가시기 전까지 비록 초가삼간과 같은 초라한 장막터라 할지라도 온 가족이 단락하게 오손도손 살면서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다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처럼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면서 살지 못하더라도 온 가족이 함께 건강하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웃음꽃을 피우면서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아멘 아멘 하면서 천국으로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성령님.

 

34-35절에서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졸다가 깨어났는데 모세와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구름이 짝 덮이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것이다.

모세도 엘리야도 예수님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분이지, 이들이 추앙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 보여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어떤 위대한 인물도, 어떤 사건도, 어떤 사상이나 학문도 예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무대장치 또는 도구에 불과한 것들이다.

아무리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 해도 주연보다 더 돋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배우들이나 음향이나 배경과 같은 무대장치는 주연을 통해서 그 연극이 원하는 목표점을 이루어가기 위한 도구들에 불과한 것들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가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세와 엘리야가 잠시 등장했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보여야 하는 것이고, 오직 예수님만 돋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들도 예수님보다 앞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명한 설교나 강의도 설교하는 목사님이나 강의하는 강사가 높아져서는 안 된다.

어느 유명한 인사를 거론하면서 그가 이런 말 했다, 저런 말 했다 하면서 그 사람을 높이려는 경향이 많다.

그 사람을 높이고 그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자기 자신도 유명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설교나 강의를 통해서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돋보여져야만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나 강사라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구름 속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마태복음17;5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9;7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으로 찾아오셔서 감동적인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제자 3인방은 이 말씀을 처음 듣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는데, 그 때에는 제자들이 없었다.

재자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얼마나 놀랬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것이다.

구름속에서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더 예수님의 실존에 대하여 말씀으로 확신을 심어주신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하여 계속 확인시켜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심을 확신시켜 주고 계신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마가복음9:9에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라고 경고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아무에게도 변화산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 몇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다음에 베드로가 베드로후서1:16-18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 3인방에게 구름 속에서 음성을 들려주셨던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도 하늘의 신령한 음성을 들려주시길 소망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의 내면의 세계로 찾아오셔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내 사랑하는 딸이라고, 내가 너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내가 너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사랑하여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너를 구원하였노라.”라는 음성을 감동으로 들려주시길 소망한다.

 

L4 & B4

 

번화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천국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변화받으신 예수님의 모습,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사역을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더 확신을 심어주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천국의 모델하우스를 공개하신다.

 

변화산에서의 모습은 천국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천국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모델하우스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모델하우스를 보여줌으로써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천국에서 변화 받으면 이런 모습이라고 아주 조금, 새 발의 피 정도 보여주고 계신다.

새 발의 피 정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천국의 전부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천국의 진짜 모습은 아무리 보여주어도 인간의 언어 수준을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된다.

천국의 진짜 모습은 차후에 천국에 가면 볼 수 있고, 그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신앙의 의인들을 만나게 된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찾아오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 왕국, 천국에는 지구촌에 왔다간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는 말씀이다.

아담으로 시작하여 에녹, 므두셀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야곱의 12아들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여호수아와 갈렙, 기드온,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히스기야, 예레미야, 학개, 말라기 선지자들까지 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12제자를 비롯하여 속사도들,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 신앙의 개혁자들, 루터, 칼빈, 쯔빙글리, 무디를 비롯하여 신앙의 의인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굵직한 신앙의 족적을 남긴 주기철목사님, 한경직목사님, 조용기 목사님같은 신앙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들 가까이로는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들,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신앙인들이 흠모하던 분들을 천국에서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얼마나 큰 위로와 은혜가 되겠는가.

신앙의 의인들을 만나 뵐 것을 기대하면 저절로 힘이 솟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된다.

 

 천국에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변화를 받는다.

 

예수님께서 변화 받으시는 모습은 신앙인들이 천국으로 이사 가면 천국에서 변화될 모습을 미리 아주 조금 맛보기로 보여주는 정도이다.

이미 천국에 올라가 있는 믿음의 의인들은 이미 다 변화받았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변화받을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아직 그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음에도 그 아파트에서 사는 꿈을 꾸듯이 예수님께서 변화 받으신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도 천국에 가면 변화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에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세주, 주님, 왕으로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은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변화되는 삶을 살아간다.

성령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끝까지 견인(牽引, Perseverance)해 주시면서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단계로 이끌어 가신다.

성화의 단계를 지나면 영화(靈化, Glorification))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단계는 현재 살아있는 신앙인들이 육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하직하면 영혼이 곧바로 영화하여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고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또한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고 언약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은 영화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단계가 바로 영원한 천국에서 변화 받는 모습이다.

영화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주신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처럼 신령한 존재로 변화받는 것이다.

변화산에서 변화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마음에 그리면서 신앙인들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평안과 안식과 자유를 기대하고, 영화로운 존재로 변화받은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변화받은 영혼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면서 영원한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