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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소동까지 일으키며 좋은 대학을 갈망했다. 하지만 전문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출신성분이 뭔지…. 전공은 식료과였다. 졸업하면 식품 만드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든 일에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지냈다. 2학기에 동해안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첫 코스 원산은 참 아름다운 도시였다. 3박4일 동안 머물렀는데 보트 타는 것이 신이 났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일도 즐거웠다. 그런데 그만 첫사랑을 거기서 만날 줄이야. 첫사랑 상대는 김일성종합대학 화학부 김○○라는 학생이었다. 대학생여관에 머물렀는데 이 여관에 김일성종합대학 화학부 학생들이 머물렀던 것이다. 그는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제대군인으로 소대장이었던 그는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노총각이었다. 견학하는 곳마다 내 옆에 서성거렸다. 버스를 탈 때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많은 것을 묻고 이야기했다. 길에서 만나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같이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그가 내심 싫지 않았다. 우리는 재미나는 퀴즈도 하고 노래도 함께 부르면서 친해졌다. 그 사람은 평양의 고급 과자를 주곤 했다. 동료 여학생들은 좋아라고 얻어먹으면서도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때라 그 사람이 나타나면 나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게 “애란아, 종합대학 소대장한테 해 달라고 해”라고 놀리면서 말이다. 우리는 함경도로 갈 때도 한 기차에 탔다. 그는 아예 내 옆으로 자리를 정했다. 정말 난처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만 아니었다면 그 사람의 관심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산에서 청진까지는 2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소대장이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여관도 한 여관에 들었다. 짐을 풀고 식당에서 만났을 때 소대장은 내게 돌돌 만 쪽지를 건넸다. 저녁에 여관 앞 공원에서 만나자는 편지였다. 북한에선 학생이 연애를 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연애를 하는 사실이 밝혀지면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고민이 됐다. 만나러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다 그날 저녁 선생들은 우리 학생들을 불러놓고 일장 연설을 해댔다. “종합대학 학생이라고 하니까 우리 여학생들 중에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다. 조심해라. 만약 사소한 사고라도 생기면 문제삼을 것이다. 순간의 잘못으로 일생을 망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잘 처신하라.” 남자들이 방을 찾을 수 있으니 문 앞에 유리병을 세워놓고 자도록 지시까지 했다. 선생 4명이 각각 30분 이상씩 이야기하다보니 11시가 넘어 회의가 끝났다. 결국 난 약속시간에 공원에 나갈 수 없었다. 선생들은 일정을 바꿔 종합대학 학생보다 하루 먼저 그곳을 뜨도록 지시했다. 불상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소대장이 몹시 섭섭한 표정으로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나중에 편지 할게요. 어제는 회의가 늦게까지 있었어요.” 그가 내게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학교로 보내면 된다고 말하곤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잘못하면 불량학생으로 판명돼 사상투쟁 무대에서 비판을 받고 학교에서 내쫓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날, 그는 밖에까지 따라 나와 “혜산 동무들 잘 가라요. 평양에 오면 찾아오시라요”하고 배웅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눈은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했다.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곳을 떠났다. 정리=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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