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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교 기간이 빨리 끝났으면 싶었다. 출신성분이 나빠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데다 내라는 것이 너무 많아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멘트와 모래, 자갈, 페인트, 신나, 판자, 유리, 비닐, 못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북한은 늘 물자가 부족했다. 때문에 학교는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려가야 했다. 열악한 상황은 전문학교뿐 아니라 탁아소와 유치원, 중학교, 대학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라는 물품들은 집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상점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은 도둑질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 인근 동네의 창고 물건들이 성한 데가 없었다. 추위가 닥칠 때는 이것저것 뜯어다 불을 때곤 했다. 묘비까지 도둑맞아 누구의 묘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는 낡은 시멘트 바닥이었던 학교 교실과 복도 바닥을 값싼 대리석으로 만들고 있던 때였다. 우리 학급에서도 시멘트와 모래, 자갈, 인조석, 페인트, 신나, 유리, 판자 등을 가져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인조석을 구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우리는 야밤에 인조석을 훔치기로 모의했다. 도(道) 중재부(법원) 마당에 쌓아놓은 인조석을 점찍었다. 경비 상태는 어떠하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웠다. 사람들이 곤히 자는 새벽 2시 반부터 4시 사이에 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비록 도둑질하는 일이었지만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일이 아니고 학교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은 없었다. 오히려 스릴이 있었다. 중재부 경비는 새벽이라 마음을 놓았는지 불까지 끈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한 명이 망을 봤다. 그리고 셋은 부지런히 소랭이(소쿠리)에 인조석을 담아 마대에 채워 넣었다. 마당에 있던 인조석을 모두 담으니 마대로 3개나 됐다. 이어 유유히 구루마를 끌고 학교로 와 교실에 두고 집에 왔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동틀 무렵이었다. 우리는 조금 눈을 붙인 후 급히 세수를 하고 학교로 갔다. 어젯밤 무용담을 신나게 이야기할 요량이었다. 의기양양하게 교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가 가져온 마대가 통째로 없어졌다. 몇 시간 뒤 우리는 모두 교장실로 불려갔다. 교장실에는 중재부 사람 5명이 와 있었다. 그리고는 중재부로 우리를 끌고 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중재부가 무엇하는 곳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한 명씩 방에 끌고 들어가 심문을 하며 형법 몇 항 몇 조는 어떻고, 어떤 벌을 받아야 한다는 등을 들먹이는 바람에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러다가 진짜 감방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싶어 급기야 여학생들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진술서를 썼다. 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쓰고 지장을 찍은 후 풀려났다.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발각됐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들이 끌고 온 인조석 자루 하나가 구멍이 나 우리 학급까지 하얗게 줄이 그어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출근한 중재부 사람들이 그걸 따라 오다보니 우리 학급에서 멎었다고 했다. 중재부 사람들의 눈에 우리 교실에 인조석 자루가 3개나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발각됐다. 그런데 하늘의 도우심일까. 중재부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를 문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우리 학급에 인조석을 한 차 실어다 주었다. 그 사람들도 어느 딸의 아버지이고 학부형이니 처녀애들이 새벽에 일어나 그렇게 무서운 일을 한 것이 가슴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 학교 선생과 중재부 사람들은 처녀들의 야밤 도둑질을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삼곤 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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