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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애란 (17) 중3때 김정일 호위총국 1차 통과… 순결검사까지

열려라 에바다 2012. 8. 1. 08:23

[역경의 열매] 이애란 (17) 중3때 김정일 호위총국 1차 통과… 순결검사까지
 
최근 북한 뉴스를 보니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예술단 출신이라고 하던데, 나는 호위총국이란 곳에 선발될 뻔했다. 당시 호위총국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와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조직이었다. 남한으로 말하면 청와대 경호처에 해당된다.

모진 가난에도 키가 늘씬했던 나는 우리 중학교 350명의 여학생 가운데 2명을 뽑는 호위총국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처녀로 순결한지 검사까지 받았다. 북한은 정교한 5과 시스템이 있어서 전국에서 예쁘고 늘씬한 여성들을 뽑아 올리는 과정이 잘 돼 있다. 미모만 뛰어나서도 안 되고 신체검사까지 다 마쳐야 한다, 호위총국 선발은 말하자면 인물과 몸매가 예쁜 딸을 나라에 진상하는 것이다. 내용을 잘 모르는 부모들은 당이나 국가를 위한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그곳에 가는 것을 말렸다. 외삼촌도 가지 말라고 했다. 외삼촌은 그곳이 무엇 하는 곳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도 잘하는데 그냥 대학이나 가라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호위총국에 뽑힌다면 평생 괴롭히는 출신성분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최종 선발에 불합격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놈의 출신성분이 문제였다. 그렇게 출신성분이라는 꼬리표는 인생의 고비 때마다 앞길을 가로막았다. 1989년 6월, 평양에선 세계 13차 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남쪽의 임수경이 평양에 와서 북한사람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놨다. 평양에 도착한 임수경은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조국통일이 곧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국제적인 행사로 잠시 집에 와 계시던 아버지는 행사가 끝나자 또다시 평양으로 작업을 하러 떠나게 됐다. 아버지와 떨어져 산 세월이 15년이 넘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한동안 미워했지만 이젠 정말 아버지랑 한집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 떠나야 하는 몸이었다. 이제 떠나면 또 언제 오실지 모르는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병맥주를 차에 실어 드리려 여느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그날은 집안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 또 다른 사건이 생긴 것만은 확실했다.

“아버지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일은 무슨 일. 아무 일 없었어.”

이 한마디 말씀을 남기고 아버지는 차 시간이 바쁘다고 하면서 급히 나가셨다. 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려 역전에 다녀와서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머니, 아까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께서 또 무슨 잘못을 하셨대요.”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잘하면 우리 집안의 소원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잘못하면 우리 집안이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 동생이 아버지를 찾았대.”

“예, 동생이라니. 아버지는 4대째 독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동생이 찾는 것은 어떻게 알았대요. 동생은 어디에 계시고요.”

어떻게 된 일일까. 하지만 혹시라도 우리를 그동안 끊임없이 괴롭혀오던 문제의 한 고리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초급 당비서가 너의 아버지를 오라고 해서 가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셨대. 그런데 이력을 기만했다고 비판도 받으신 모양이더라. 그리고 교포총국에 가보라고 해서 가봤더니 정말 동생이 찾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그저 3국에서 살고 있다고만 하더라. 좀 해명이 돼서 너희들 문제나 풀렸으면 오죽이나 좋겠니.”

어머니가 힘들어했다. 전문대학에 이어, 운 좋게 신의주경공업대학에 다니며 취직했던 나도 많이 걱정이 됐다. 그땐 우리 가족이 이 일로 북한을 탈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