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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애란 (23) 탈북준비 완료 암호 ‘맨드라미꽃이 피었습니다’

열려라 에바다 2012. 8. 9. 08:51

[역경의 열매] 이애란 (23) 탈북준비 완료 암호 ‘맨드라미꽃이 피었습니다’
 
중국에서 또다시 인편으로 편지가 왔다. 이번엔 할머니나 고모부의 편지가 아닌 김 선생이라는 모르는 사람의 편지였다. 편지는 한눈에 보아도 남조선에서 보낸 문체였다. 들키면 큰일이다. 온 가족이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랐다. 편지엔 빨리 탈북하라며 우리 가족이 탈북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맨드라미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연락을 보내면 탈북준비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문득 ‘남한 안기부에서 꼬드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근거가 타당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황장엽 선생 같은 거물도 아니고 요직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반인을 상대로 공작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북한 보위부의 역공작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은 가끔 사건을 만들어내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는 것을 주위에서 들었다.

생각 끝에 아버지를 중국에 다녀오시게 했다. 아버지는 조선족을 따라 중국에 간 지 일주일 만에 돌아오셨다. 중국에서 할머니와 김 선생이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0명이나 되는 식구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그리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남편과 올케에겐 말도 꺼내지 못했다. 혈육끼리만 모여 계속 토의를 했다. 토의할 때도 혹시 도청장치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바깥에 나가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중국에선 빨리 건너오라고 연락이 오고 도저히 믿을 수는 없고…. 급기야 내가 100일 된 아기를 업고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 갔다. 남한에서 온 김 선생 일행을 만났다. 김 선생에게 사촌동생인 혜리가 미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책을 냈는데 그것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책의 내용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란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그 책에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김일성 물러가라”라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는 사실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나는 가족을 데리러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국경경비대에 걸릴 경우를 대비해 아래옷을 모두 벗었다. 옷에 물이 묻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데려다 준 남자는 중국 조선족이었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람이었다. 만약 일상생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나는 미친 여자일 것이다. 하지만 실수하면 온 가족의 생명이 잘못되는 것이니 체면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압록강에 들어섰는데 곧 국경경비대가 달려오며 “서라”고 소리쳤다. 나를 데리고 떠났던 조선족 남자는 내게 “경비대에게 잘 말해 놓았으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경비대원들이 강 한복판에 서 있는 날 끌어냈다. 잠시 뒤, 그들은 깜짝 놀라 소릴 질렀다.

“야, 이 간나 쪽발라 벗었네.”

그들은 달빛에 드러난 벗은 내 하체를 보고 기겁을 했던 것이다. 빨리 옷을 입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비대원들은 21살에서 24살 정도 되는 어린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발에 걷어차여 강가 자갈밭에 쓰러졌다. 아기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 넘어지면서 턱이 자갈밭에 닿는 바람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움켜쥐었던 바지에서 편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중국에서 어머니에게 빨리 탈북해야 한다고 썼던 편지였다. 위험천만이었다. 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온 정신은 편지 숨기는 데 가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챙기는 척 하면서 재빨리 편지를 모래밭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곳을 발로 디디고 섰다.

다가온 경비대원들은 먼저 몸을 수색했다. 중대본부로 끌려 갔다가 도 보위부까지 호송됐다. 그런데 조선족의 말대로 그들은 뇌물을 먹어서인지 몇 시간 뒤 풀어주고 바래다주기까지 했다. 구사일생으로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집은 마치 초상이 난 것 같았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