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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주민 누구도 김일성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일성은 평범하게 밥 먹고 뒷간 가고 죽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신’으로 착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1994년 7월의 그날 아침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직장 동료와 함께 농장의 콩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뜨거운 한낮에는 일하기 어려워 아침 일찍 밭에 올라갔다. 오전 10시쯤, 갑자기 낮 12시에 중대 방송이 있으니 모두 산에서 내려오라는 전갈이 왔다. 상당히 중요한 방송인 것 같았다. 이렇게 콩밭에 김매러 간 사람에게까지 내려와서 들으라는 방송인 것을 보니 말이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직장으로 돌아와 TV가 있는 집에서 긴급 뉴스를 들었다. 흑백 텔레비전 화면엔 북한의 텔레비전 아나운서 중에 가장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주 슬픔에 잠긴 어조로 천천히 김일성의 부고를 전했다. 참으로 난처했다. 부고를 듣는 순간,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멍해졌던 것이다.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는지, 누가 가장 애석하게 행동으로 표현하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북한 주민들은 늘 피곤하고 고달팠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나라와 조직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하루에 두 번씩 김일성 동상 참배를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또 100리, 200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꽃을 꺾어다 동상 앞에 바쳤다. 나중엔 북한의 산에 야생화가 전멸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양귀비꽃까지 김일성 추모 행렬에 바쳤다. 이미 죽은 시체였지만 김일성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게다가 인정받고 출세하고 싶은 북한 사람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아첨을 강요했다. 충성심 경쟁이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한 건이라도 먼저 해서 당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난리였다. 전국에 제사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김일성 동상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매일 참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가족에겐 변변치 못한 음식상을 차려주면서도 김일성 참배 제사상만은 시장에서 쌀을 사다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참배행렬에 끼느라 모두들 난리였다. 우리도 제사상을 차려 가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 제사상을 차리기로 했다. 아끼던 바꿈돈표(달러대행 바꿈돈 1원은 북한 돈 80원, 북한노동자 한 달 생활비) 10원으로 외화 상점에 가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고가의 식품들을 샀다. 돈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내일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충성심 검증을 위한 비용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준비를 해 김일성 동상으로 가니 이미 제사상 행렬이 몇 백 미터나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자 합동제사를 지냈다. 20만 혜산 주민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제사는 그날 밤 자정을 넘어 새벽 5시까지 계속됐다. 10일장을 치르는 동안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온 나라가 오직 장례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내려 쪼이는 7월의 태양은 몹시 뜨거웠다. 여기에다 검은색 상복을 입으라고 지시해 거의 다 겨울옷을 꺼내 입고 나왔다. 옷 사정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이 검은 색으로 만든 얇은 여름옷이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시달린 사람들은 갈증에, 더위에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행사장 주변의 개인 집들은 물을 얻어 마시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오지 않는 눈물까지 짜내야만 했다. 다들 우느라 난리인데 울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일성의 시신을 발인하는 TV 방영시간에는 너무 울다가 쇼크사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애국열사로 인정됐다. 어찌 보면 수지맞는 일이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이렇게 마치면 죽어서라도 자식들에게 탄탄대로를 열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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