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3국에 계신다는 작은아버지를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밑바닥 인생, 내려갈 데까지 다 내려갔으니 이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생사를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출신 성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당연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조국과 민족을 향해 얼마나 나쁜 짓을 했길래 우릴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알고 싶었다. 당시 재미교포들이 북한 친척들에게 달러를 주고 갔기 때문에 더 친척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소식이 있은 지 3년이 지나도록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맥주공장 품질감독원으로 근무했던 나는 평양에 갈 수 있는 출장증명서를 뗄 수 있었다. 북한에서 평양에 가려면 붉은 두 줄이 굵게 그어진 어마어마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친척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나 결혼식이 있어도 잘 받을 수 없는 것이 평양여행 승인번호다. 그래서 평생 평양 한번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병아리도 평양에 가고 싶어 “피양, 피양”한다는 것이 바로 평양인 것이다. 약간의 뇌물을 건네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또 뇌물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평양 교포총국 직원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처음엔 만나주지 않았다. 하지만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날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점심도 거르고 대기실에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3일째 되는 날 만나주었다. “동지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부탁하오. 편지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사나 알아보려고 그럽네다.” “알았소. 그런데 이렇게 찾아다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오. 가서 기다리시오.” “3년 전에도 기다리라고 해서 지금까지 기다렸습네다.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을 했다. 우리 집안의 중대사가 걸린, 우리의 한이 맺힌 일을 해결하는 일이니 몹시 흥분됐던 것이다. “알았소. 내려가서 기다리시오. 알아보고 소식 줄 테니까.” 그 사람은 더 이상 대화에 응하지 않았고 곧 나가버렸다. 컴컴한 대기실에서 추위에 몸이 꽁꽁 얼었다. 너무 기가 막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가족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찾아갔다. 하지만 지방출장을 가고 없어 직원을 만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내려왔다가 다시 전화를 하고 네 번이나 선물을 싸들고 평양을 찾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드디어 작은아버지의 주소를 알아냈다. 작은아버지는 미국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도 알 수 없었다. 설렘 반 기대 반.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작은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북한에서는 개인의 편지를 검열하기 때문에 될수록 정부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표현을 골랐다. 우리 가족은 어디에 살고 있고 언제 헤어졌으며 등 우리의 생사만을 알리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혹시라도 편지가 가지 않을까봐 평양에 가는 인편에 부탁해 국제 통신국에서 편지를 친히 부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일은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식구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일이 잘못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비장의 각오를 다졌다. 다같이 고통을 감당하기엔 그 고통의 깊이와 크기가 너무 컸다. 잘못하면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에 또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참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3개월 뒤쯤 드디어 작은아버지가 보낸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순간 떨렸다. 할머니를 비롯한 아버지 형제 가족이 미국 땅 로스앤젤레스라는 곳에 정착해 2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작은아버지의 편지는 ‘자나 깨나 보고 싶은 형님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경의 열매] 이애란 (21) 1994년 김일성 사망… 울다 죽은 이들 애국열사로 (0) | 2012.08.06 |
---|---|
[역경의 열매] 이애란 (20) 美 작은아버지 편지엔 태어나 처음 본 ‘하나님’이 (0) | 2012.08.05 |
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47) (0) | 2012.08.02 |
[기독출판] 교회 재산은 누구의 것? 이단 비판도 명예훼손?…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 (0) | 2012.08.02 |
[역경의 열매] 이애란 (19) 美서 날아온 편지 “자나 깨나 보고싶은 형님께” (0) | 2012.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