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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국사를 논할 때 항상 북한산 중턱의 높은 지점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며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보면서 마음이 넓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올라가 내가 살았던 세상을 볼 때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집착하면서 살았을까? 왜 좀더 큰 마음과 넓은 눈으로 살지 못했을까?’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찾아오시고 위로하실 때 그 백성들의 눈을 높이 들어 올리신다. 초대교회가 핍박 가운데 던져지고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도요한의 눈을 높이 들어 올리셨다. ‘이리로 올라오라’(계4:1). 요한계시록의 본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높이 들어 올리신 것이다. 거기서 그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역사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로마가 교회를 잡아먹을 것 같았지만 교회는 끄떡없었고,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적인 눈을 들어 올리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에베소교회는 분열과 대립의 갈등 속에 있는 교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열의 문제부터 시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무비 카메라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도바울의 눈을 들어 올려서 창세전으로 데려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한 상담 전문가의 이야기다. 신혼부부가 삶은 감자를 앞에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부인이 감자와 함께 설탕을 가져왔는데, 남편은 고추장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고추장에 찍어 먹어.” 부인 왈, “감자를 어떻게 고추장에 찍어먹어요? 그 집안 참 웃기는 집안이네!” 집안을 들먹이는 부인의 말에 남편은 마음이 상했다. 결국 싸움이 커져 집안싸움으로 번졌고 급기야 이혼까지 거론하게 되었다. 상담 전문가에게 찾아온 이 부부가 진지하게 묻더란다. “선생님, 선생님은 감자를 설탕에 찍어먹습니까, 고추장에 찍어먹습니까?” 선생님 왈, “저는요,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데요.” 웃지 못할 이야기다. 그러나 소소한 생활의 문제들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높이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영의 눈은 날마다 높은 곳에 서야 한다. 1년에 30만명 이상의 사람이 ‘햄튼 코트’라는 미로를 찾는다고 한다. 가끔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을 위해 직원 한 명이 미로 위에 높이 설치된 단에 올라가서 대기한다고 한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이 미로를 빠져나오게 한다. 그렇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영의 눈을 높이 들어 올리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해야 한다. 요즘처럼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고 매몰되기 쉬운 때에 이것이 더 더욱 절실하다. <서울 내수동교회 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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