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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애란 (25) 베트남 국경 세계 최악 지뢰밭에 임재하신 하나님

열려라 에바다 2012. 8. 13. 07:40

[역경의 열매] 이애란 (25) 베트남 국경 세계 최악 지뢰밭에 임재하신 하나님
 
중국 베이징에서 뒤따라 올 가족을 기다렸다. 1주일을 기다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까?’ 끊임없이 갈등했다.

38시간 동안 기차를 탔다. 남쪽으로 달릴수록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베트남의 국경도시 핑샹에는 처음 보는 과일을 이곳저곳에서 팔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과일 풍년이었다. 수박이 얼마나 달던지 혀가 넘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맛있는 과일도 북한에 남은 가족 생각을 하면 쓴 오이를 씹는 것 같았다.

베트남 국경을 넘어야 하나. 아니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결국 베트남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하노이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 들어갔다.

베트남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땅이 미끄러웠다. 몇 번을 넘어졌다. 나중엔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풀숲에서 군인이 벌떡 일어나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떠날 때 안내원은 무슨 정황이 생기면 무조건 뛰라고 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좌측으로 뛰려고 하니 천길 낭떠러지였다. 또 우측으로 뛰려니 그곳 또한 벼랑인 데다 통나무들이 쓰러져 있어서 도저히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아, 이젠 마지막인가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내자가 군인에게 뭐라 뭐라고 하더니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아마 돈을 주고 통과 허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베트남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봉고차를 타고 접선 지점으로 안내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가족이 지나온 그 지역은 세계적으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곳이라고 했다. 그해 영국의 왕세자비인 다이애나가 사망했는데 다이애나가 생전에 열심히 했던 일이 ‘대인지뢰 금지운동’이라면서 세계 각국의 대인지뢰 매설지역을 소개하는데 그때 우리가 넘어왔던 바로 그 지역이 소개됐다.

아뿔싸. 그런 끔찍한 여정 가운데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난다. 돌이켜보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계획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중국·베트남 국경을 무사히 넘은 우리 일행은 봉고차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갔다. 하노이 한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난생 처음 노래방이란 곳에 가 봤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곰곰이 생각하니 북한에서 돌격대 생활을 할 때 남조선 노래를 몇 개 몰래 익힌 것이 문득 생각났다. 김세레나의 ‘갑돌이와 갑순이’와 송대관의 ‘해뜰날’ 등. 이외에 북한 영화에서 소개한 몇 곡이 더 있었다. 그날 나는 송대관의 ’해뜰날’을 신명나게 불렀다.

“그래.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노랫말처럼 우리 가족이 다같이 만나 쨍하고 뜨는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거야….”

노랫말은 야릇한 희망에 부풀게 했다. 내 노래를 들은 안내원은 날더러 “북조선 깡패”라고 놀려댔다. 베트남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남한으로 망명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뒤 대사관 인근 한 호텔에 안내됐다. 호텔 생활은 풍요로웠다. 풍부한 식료품과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각양각색의 과일들, 매끼 곁들이는 고기, 맛있는 간식 때문에 너무 배가 불렀다. 푸짐한 식탁에 동생과 아버지의 얼굴은 어느새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동생 학철이가 말했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가 죽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풍요로운 식탁과 평온이 오히려 불안하고 어색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사형수에게 마지막 날 음식을 푸짐하게 준다. 사형수들은 전에 없이 푸짐한 음식이 들어오면 다음날 사형 집행하는 날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고 들었다. 그랬다. 우리에게 차려진 풍요와 평온은 사형수가 느끼는, 아직은 그런 것이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