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역경의 열매] 이애란 (26) 中 안착 아버지, 눈물 흘리며 성경 암송에 찬송까지

열려라 에바다 2012. 8. 13. 19:50

[역경의 열매] 이애란 (26) 中 안착 아버지, 눈물 흘리며 성경 암송에 찬송까지
 
중국 베이징을 떠나기 이틀 전쯤으로 기억된다. 저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성경구절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아버지의 두 볼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뿐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찬송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10절까지 있는 매우 긴 찬송이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동안 북한에 갇혀 가슴 속에 묻고 살았던 기독교 신앙을 펼쳐내시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런 반동 아버지를 33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니….’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북한에서 수십 년간 무신론 교육을 받아온 나와 내 동생 학철에게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기독교, 예수는 북한에서 무신론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 공포의 존재였다. 섬찍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바로 내 아버지가 성경을 외우고 찬송을 부르며 눈물까지 흘리다니…. 비록 북한을 탈출한 상태였지만 아직 기독교라는 종교가 무서운 것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산주의는 승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마음속에 품고 산 성경과 찬송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기나긴 47년 동안 아버지에게 그 성경과 신앙을 빼앗아 가지 못했다. 그래 공산주의는 분명 실패한거야….”

나중에 아버지의 과거 신앙경력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평양 창동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중학교에서 퇴학을 맞고 잠깐 평양 성화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했다. 할아버지는 평양 창동교회 집사셨고 할머니는 권찰을 지내셨다. 나름 뿌리가 있는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1·4후퇴 때 남한으로 피난을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해주에서 북한 내무서에 체포되셨다. 당시 아버지는 평양 창동교회 담임목사였던 채필근 목사님의 아들인 채희춘과 함께 체포되셨다. 그런데 채희춘은 나이가 많아 인민군에 징집된 반면, 아버지는 나이가 어려 평양으로 다시 돌려보내졌다는 것이었다. 평양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진달래꽃이 다시 피면 돌아온다’는 말을 믿고 남한의 국방군을 기다리며 열심히 YMCA 기독교 청년활동을 했다. 하지만 남한의 국방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북한 정치보위부에 체포돼 17년형을 언도받았다. 평안북도 동림에 있는 교화소에서 6·25전쟁 기간 내내 감옥에서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아뿔싸, 아버지의 이런 절절한 과거를 가족마저 모르고 살았다니…. 이런 이유 때문에 늘 반동 딱지가 따라다녔고 되는 일이 없었던 처지를 한탄만 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남한에 정착한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예수를 믿는 신앙인이 됐다. 돌이켜 보니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속아 살았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아버지의 그 신앙과 정신을 모르고 출신 성분만 탓하고 미워했어요….”

요즘 이제 백발이 성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효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신앙의 핍박을 당하신 아버지, 이제 자유의 나라 이 남한 땅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