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비상
제목 : 칼럼
<< 내용 >>
병균(病菌)이라는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병균 대신 병귀(病鬼)가 드나들며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았다. 그 많은 병의 가지수 만큼 성깔이 각기 다른 많은 병귀가 있었으며 따라서 병귀에도 남성-여성하는 성(性)이 정해져 있기도 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만 골라 붙는 홍역의 병귀는 여성이다. 여성이되 아이 낳다 죽은 젊 은 어머니의 원령(怨靈)이 그 실체다. 그 원기(怨氣)가 사무치면 아기들을 찾아다니며 홍역을 앓게 함으로써 아기 못 가진 데 대한 투정을 발산한다. 홍역은 이렇게 질투의 역학에서 탄생되고 있다. 따라서 홍역의 예방도 이 질투의 역학 에서 합리적으로 전개됐었다. 홍역이 돌 때 아기가 울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병귀가 찾아든다 하여 포대기로 덮어 씌워 울음소리를 차단하는 것이라든지 어린이들에게 어 른 저고리를 입혀 위장시킴으로써 병귀를 착각시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아기의 꽃신 한 짝을 동구 밖에 걸어 두기도 하는데 아기 못 가진 한을 그 꽃신으 로 유인, 동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심리전법이다. 홍역이 돌면 집문 앞에 고 추와 보리(麥) 이삭을 꽂은 금줄을 치기도 하는데 사내아이 성기(性器)를 상징하는 고 추와 계집아이 성기를 상징하는 보리로 아기 못 갖고 죽은 이 어머니 귀신을 유인, 집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역시 같은 심리전법이다. 이 홍역이 처음 등장하는 우리 문헌은 명의 허준(許浚)의 `벽역방(癖疫方)'(光海 5년) 이다. 당홍역(唐紅疫)이라는 속명으로 나오고 있다. 같은 무렵 문헌인 `지봉유설(芝峰 類設)'에는 당독역(唐毒疫)으로 나오는데 서역(西域) 중국을 거쳐 광해 5년에 우리 나 라에 처음 전염된 열병이라 하고 이전에 없던 일로 어린 목숨을 쓸어갔다 했다. 그 후 10년 주기형(型)과 23년 주기형(型) 두 가지 홍역이 서북방에서 전염해 내리고 있는 데 숙종(肅宗) 정해년에는 `시구문 밖에 아시(兒屍)가 산적하고 종가(鐘街)에 그 흔하 던 아이들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여염의 길가에는 온 식구가 몰사하여 빈 집이 부지기 수였다'할 정도였다. 영조 19년에는 왕세자가 홍역을 앓다 회복되자 이를 경하(慶賀) 하여 과거를 설치했을 정도다. 속칭 홍역이 돌면 `십사일생(十死一生)'한다 했으니 그 러했을 만하다. 얼마 전 북한에서 이 홍역성의 괴질이 만연, 2백여 명이 죽었다더니 지금 영동 북부 해안지방에 그 홍역이 만연 남하기세에 있다. 하필이면 온 민족이 터지길 염원하고 있 는 금강산 루트를 타고 이 불청객이 먼저 찾아든다는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