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사과
제목 : 칼럼
<< 내용 >>
인생을 살아가면서 염원농도가 진한 몇 가지 소망 가운데 하나가 급제랄 것이다. 절실 했던 만큼 급제에 수반된 미신도 다양할 수 밖에 없었다. 합격할 수 있게 하는 신통력 , 곧 주력(呪力)은 그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이를테면 시집 가는 딸이 있으면 아버지는 구리거울 은밀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 거울의 뒤켠에는 오자 등과(五子登科)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등과 거울이라고도 한다. 다섯 아들이 모두 과 거에 급제한다는 뜻으로서 전통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영예가 바로 오자등과였다. 첫 날 밤 이 거울을 손아귀에 쥐고자야 하며 수태한 후에도 계속 이 손거울을 굴림으로써 급제의 주력을 뱃속에 든 아이에게 전도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오자등과 대신 장원급 제란 말을 새기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글을 읽을 나이가 되면 아버지의 고된 작업이 시 작된다. 아들놈이 익힐 천자문의 글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쓴 글씨라야 급제의 주 력을 얻는다 하여 급제한 사람을 수소문, 팔도를 돌아다니며 천자중 한자를 써 달라는 글씨동냥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녀들 합격을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다는 한국의 학부모도 옛 학부모에 비하면 약과다. 여염옷으로 갈아입고 민정을 곧잘 살폈던 성종(成宗)이 한 밤중에 부부가 옷을 벗고 울안 나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무슨 망측한 짓거리냐고 물었다. 대꾸는 간단했다. 과거를 앞두고 울안 동쪽나무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지으면 급제한다 하여 딴 나무에 있는 까치집을 동쪽나무에 옮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임금은 그 해 과거의 시제 (試題)를 동작소(東鵲巢)로 하여 이 서생의 염원을 성취시키고 있다. 과거 날짜가 닥치면 산야에 산재된 비석을 찾아 다니며 문(文)무(武)인(仁)의(義)예( 禮)지(智)-같은 상서로운 비문글씨를 파 그 돌가루를 물에 타 마심으로써 급제의 주력 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고비(古碑)의 비문 가운데 이같은 상서로운 글자가 모조리 파여져 없어진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나 대과 에 급제한 사람의 뜰 흙을 파들고 과장(科場)에 들어가 시험지 밑에 깔면 급제한다는 미신도 보편화 돼 있었다. 지금 대학 입시철을 앞두고 `합격 사과'가 나돌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사과에 빛 깔이 들 무렵 합격이란 글자가 씌어진 스티커를 붙여 자연스럽게 사과는 급제에 주력 을 얻고 싶은 전통적 심리를 잘도 파악한 성공적 상혼이랄 수가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