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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해 ‘푸른 길’을 걷다… ‘환상의 바닷길’ 영덕 블루로드

열려라 에바다 2016. 1. 7. 08:47

겨울, 동해 ‘푸른 길’을 걷다… ‘환상의 바닷길’ 영덕 블루로드

새해에는 걸어볼까요… 동해를 따라 4개 코스 64.6㎞

 
겨울, 동해 ‘푸른 길’을 걷다… ‘환상의 바닷길’ 영덕 블루로드 기사의 사진
경북 영덕 ‘블루로드’ B코스의 들머리인 해맞이공원 너머로 붉은빛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영덕을 상징하는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한 창포말등대 전망대에서 보면 푸른 바다가 환상적이다.
경북 영덕에는 시퍼런 그리움이 묻어나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를 곁에 끼고 ‘밀당’하며 걸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블루로드’(Blue Road)다. 영덕군 초입 남정면 부경리를 출발해 강구항과 축산항을 거쳐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4개 코스 64.6㎞의 탐방로다. 각 코스 모두 푸른 바다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5∼6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블루로드 최고의 길은 ‘환상의 바닷길’로 불리는 B코스다. 바다가 시야를 벗어나는 때가 거의 없다.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대게원조마을을 거쳐 축산항을 잇는 이 구간은 ‘블루로드’란 이름을 낳게 한 길로, 말 그대로 걷는 내내 쪽빛 바다를 시야에 담을 수 있는 탐방로다.

B코스의 들머리는 해맞이공원이다. 1997년 대형 산불로 황폐해진 곳에 해안산책로와 침목계단,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한 창포말등대, 수선화 단지 등을 조성했다. 공원 뒤쪽 언덕 위의 풍력발전기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바닷바람을 벗 삼아 거대한 바람개비를 돌린다.

이른 새벽 구름이 끼어 있는 수평선 너머로 여명이 밝아온다. 해맞이공원에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섬처럼 둥 둥 떠 있는 고깃배들 위로 하늘이 연분홍에서 채색되더니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을 쏟아낸다.

‘해맞이공원’ 돌비석 안내판에서 침목계단을 하나 둘 내려가다 보면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파도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바닷길에 세워진 정자에 닿으면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만드는 하얀 포말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정표의 오른쪽은 창포말등대와 강구항 방향이고, 왼쪽은 ‘오보해수욕장’이다.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민박을 겸한 어촌마을 대탄마을과 대탄해수욕장이 나오고, 도로를 따라 한 모퉁이를 돌아 산책로를 걷다 보면 오보해수욕장이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만드는 하얀 포말이 청량감을 더해 준다.

블루로드는 7번 국도와 강축해안도로와 만나고 헤어지지만 잠깐 길을 벗어나더라도 팻말과 리본, 바닥 표식을 따라 바닷가로 가면 쉽게 길을 이을 수 있다. 그 어디서든지 은빛 물결 반짝이는 바다, 양식장에 떠 있는 어선이 평온을 선물한다.

오보해수욕장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 500m 올라가면 노물리 방파제로 내려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윗길로 이어진다. 노물리 방파제에서 석리까지는 약 2.5㎞ 해안초소길이다. 이 길은 특히 해안초소가 많다.

발밑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음미하며 바윗길을 걷는다. 원래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초소길이었고 낚시꾼이 낚싯대 메고 다니던 길이었다. 지금은 푸른 바닷길, 블루로드가 됐다. 동해는 해안가부터 곧장 파랗다. 길 중간에 물질하는 해녀상이 사람처럼 서 있다.

석리마을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이 멀리서 보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가 연상돼 ‘따개비마을’로 불린다. 마을 끝에서 다시 계단과 바윗돌 길을 걷게 된다. 길 중간 쉼터의 해안 절벽엔 군인상이 서 있다. 예전에 군인 초소였던 곳이다. 바닷길을 걷다 보면 작은 어촌 마을인 경정3리에 닿는다. 마을의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을 입구에는 오매 향나무가 풍채를 자랑한다. 경정3리는 원래 오두산과 매화산에 둘러싸여 있어 마을이름이 ‘오매’(烏梅)였다고 한다. 향나무는 동신당 뒤에 뿌리박아 기암절벽을 온통 뒤덮고 있으며, 그 굵기는 50㎝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수백 년의 연륜이 느껴진다.

블루로드는 경정 석산 컨베이어와 경정해수욕장을 지나간다. 물이 맑고 파도가 잔잔한 경정해수욕장은 2009년 ‘알려지지 않은 전국의 해수욕장 100선’에 선정됐듯이 번잡하지 않다. 포구마다 오징어가 바람을 맞으며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다. 올해는 오징어 풍년이란다.

경정리 바다낚시터를 지나면 대게의 원조마을인 경정2리다. 고려 29대 충목왕 때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수레 ‘차’(車), 넘을 ‘유’(踰)를 써서 차유마을이 됐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대게원조비와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영덕대게는 각종 아미노산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특유의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대게는 12∼5월이 제철로, 게가 크다고 ‘대(大)게’가 아니라 다리모양이 대나무처럼 곧고 마디가 있어 ‘대(竹)게’라는 이름이 붙었다.

차유 마을을 빠져나와 죽도산 전망대로 향한다. 이 길은 도로와는 산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조용하고 자연에 가까운 코스다. 땀을 닦으며 말미산(113.5m)을 벗어나면 기암절벽 아래 활처럼 휘어진 축산해변이 반긴다. 길이 300m 남짓의 작은 해변과 현수교인 블루로드다리, 그리고 죽도산(87m)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야간조명이 빚어내는 풍경이 황홀한 139m 길이의 블루로드다리는 26m 높이의 현수교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움직이는 출렁다리다. 블루로드다리 아래의 모래톱은 축산천과 바다가 이웃한 경계지역으로 갈매기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블루로드다리를 건너 죽도산을 오른다. 산 전체에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정상까지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다. 봄에는 분홍색 복숭아꽃이 나무데크 주변에서 화사한 얼굴로 탐방객들을 맞는다. 한 계단 한 계단 걸을 때마다 동해와 축산 항구의 풍광과 감흥이 달라진다. 바닷바람에 장단 맞추는 댓잎 소리가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죽도산 정상에는 일제강점기에 세운 등대가 있었으나 일제 말에 미군들의 폭격 표적이 된다 해서 철거됐다. 광복 후에 다시 등대를 세웠지만 몇 해 전 헐리고 엘리베이터를 갖춘 전망대가 들어섰다.

전망대에 오르면 풍력발전기부터 오보해수욕장, 경정마을 등 지나온 길들을 조망해볼 수 있다. 깊고 푸른 바다는 쾌감으로 다가온다. 육지 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대소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를 나와 바닷가 해안선을 에두르는 산길을 돌아 나오면 동해안에서 제일 가는 미항인 축산항과 B코스 종착 지점이자 C코스 출발 지점인 영양 남씨 발상지 안내비에 닿는다. 블루로드는 여기서 다시 3코스 ‘목은 사색의 길’로 이어진다.

영덕=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