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세 번의 만남 - 의복을 바꾸어 입고 장신구를 떼어내라
(창세기 35장 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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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지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 합니다. 성경 인물 중에 다사다난이란 말에 적합한 인물이 야곱일 겁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건너가 바로왕 앞에 섰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 삼십년인데,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라고 자신의 일생을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야곱의 일생은 험악했습니다. 파란만장(波瀾萬丈-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인다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기복과 변화가 몹시 심함을 이르는 말) 하다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정말 굴곡진 인생을 살아간 인물이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장자인 에서의 뒤를 이어 차자의 설움을 안고 장막에서 어머니랑 지낸 기간이 무려 7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팥죽과 장자 축복 사건으로 인해 형을 피해 밧단아람 자방의 하란에서 20년 동안이나 힘든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하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참혹한 봉변을 당합니다. 100세가 넘어 사랑하는 라헬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출생하던 중에 그만 베들레헴 길가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들에서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130세에 머나먼 애굽 땅으로 이민을 가야 했습니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기구한 인생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쉬운 인생길은 없겠지만, 야곱처럼 험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험악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나타나셔서 그를 인도해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에게는 중요한 세 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상황과 방법은 다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적어도 세 번은 크게 개입 하십니다. 곧, 야곱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을 보시면서, 내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첫 번째 만남은, 야곱이 고향을 떠나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던 중 들판에서 (나중에 이 곳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 지어 부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창 28장) 상상해 보세요.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형을 피해 옷가지, 먹거리도 변변히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들판으로 도망쳐 나온 야곱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엄마와 함께 평안한 장막에서 무려 70년이나 지냈으니, 세상에 홀로 나간다는 것이 엄청난 두려움을 떠나서 충격과 공포의 수준 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소위 멘붕(속어, 멘탈붕괴 mental collapsing)과 패닉(공황을 초래하다 panic)상태였습니다. 형에게 죽임 당할 것 같은 두려움, 먼 길을 홀로 가야 하는 두려움, 사랑하는 부모를 떠나 낮선 땅에서 생활하게 될 두려움, 야곱은 온통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들판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와 같이 눈물 콧물 흘리며 대성통곡 했을 것입니다. 70세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저 심정이면 아마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야곱과 같은 절망과 공포의 상황, 그리고 극심한 두려움에 빠져 세상에 홀로 던져진 사람들에게 나타나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두려움에 빠진 인생 가운데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네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시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멘(28:15)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실존 한다는 것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속의 허황된 가공의 존재도 아니요, 잡다한 여러 잡신들 중에 하나도 아니요, 불러도 대답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상 살아계시고, 나타나시고, 말씀 하시고, 인도하시는 유일하고 강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야곱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와 항상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 하셨듯이 우리 인생 가운데 선포 하십니다.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여 주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와 함께 하여, 네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 이니라” 아멘.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신가요? 야곱처럼 들판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두려우십니까? 가족도 한 명 없는 것처럼 외로우십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십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십니까? 미움과 증오 때문에 치가 떨리십니까? 이런 불안 가운데 계신 분이라면, 딱 야곱이 들판으로 나간 것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만남이 계획된 신앙의 벧엘에 머물러 계신 것입니다.
이 때가 기회입니다. “보여 주세요, 나타나 주세요”, 하나님의 존재를 구하십시오. “붙들어 주세요. 도와주세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요청을 외면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평안의 마음으로 찾아 오실 줄을 믿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올 한해 두려움, 외로움, 상처들을 벗어 내고 믿음의 길을 소망과 기쁨으로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 만남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내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 하다가,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스토리는 다 아실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이 말하기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30)라고 말하였습니다.
야곱이 이름지은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만남이 존재를 확신시켜 주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만남이라면, 두 번째 만남은, 야곱의 자아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시간을 우리는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표현 합니다. 야곱이 이 만남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이 보전 되었습니다. 살려 주시는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인생 최대의 문제는 형 에서의 분노로 인해 죽임 당할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야곱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 최대의 문제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해야할 과거는 어떤 창피함과 수치감을 불러오는 나만의 흑 역사도 아니고, 은행에 빚지고 있는 채무도 아니고, 꼬여있는 인간관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야곱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에서와 같이, 우리들에게는 죄와 사망과 심판의 공포가 뒤 덮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 받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생명을 보전 받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브니엘”의 사건이 내게도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브니엘의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죄를 죄로 심각하게 깨닫는 사람입니다. 죄 의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죄가 자기 목숨을 빼앗고, 가족 목숨을 빼앗고, 집안의 종들의 목숨을 빼앗고, 가축의 목숨까지도 빼앗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죄가 있음에도 죄를 죄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구제불능입니다. 죄가 있음을 알고도 덮고, 숨기고,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브니엘의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켰다고 고백 했으면서도, 여전히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죄가 이전 보다 훨씬 더 심해지고 있음에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회개에 결코 속지 않는 분이십니다.
신앙의 터닝포인트는, 브니엘 사건을 경험 했느냐, 못했느냐가 분기점입니다. 이 분기점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서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일생일대의 중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최대의 적은 “죄”입니다. 죄의 문제는 적당히 놔두고 차일피일 미룰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에서의 군대 400명이 쳐 들어와 우리의 목숨을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살고 싶으시면 지금 당장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브니엘의 야곱처럼, 우리 인생 최대의 문제를 해결 받는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생명을 보전 받는 구원과 영생의 기쁨 가운데 살아가시는 2020년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만남은,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으로, 벧엘에 돌아와 신앙의 회복을 온전히 이루는 야곱과 그의 가족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첫 째, 둘 째 만남도 중요하지만 세 번째 이 만남이 가장 중요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곧 이어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야곱은 지체하지 말고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으로 이동해야 했음에도 에서가 물러간 것에 너무 안심한 나머지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머무는 동안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이에 분노한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성의 사람들을 마구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생명을 보전 받은 사람은, 신앙의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지, 가다가 곁길로 세는 경우에는 큰 낭패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명령 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방 신상들을 버려라,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1,2절) 온통 명령하시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러자 야곱과 그의 가족은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떼어 상수리나무 밑에 묻고, 즉시 세겜을 떠나 벧엘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을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3~7절) 이렇게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나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9절을 한 번 보십시오. 다시 복을 주신 이유가 보이십니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장소, 곧 벧엘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시는 가운데 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단순한 원리이자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 있으라고 한 자리,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 떠났어도 즉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 함께 하시는 은혜를 주시고, 하늘의 복을 충만하게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반대로, 자꾸 자리를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몸에, 마음에, 입술에, 우상들과 귀고리들, 쓸데없는 세상의 장신구들이 덕지덕지,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의복들과 우상들과 귀고리들은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생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하나님과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몸에 배인 습관, 사고, 행동이 하나님을 만나기에는 매우 부적절 했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고, 신상들과 장신구를 떼어내서 땅에 묻은 것은, 세상의 부요함을 버리고, 다시 말씀 앞에, 다시 복음 앞에 섰다는 의미입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장소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코람데오(coram deo), 매 순간 하나님에 서는 것, 엔크리스토( ἐν Χριστῷ(In Christ), 예수님 안에 거하며 항상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 홀리 스피릿(Holy Spirit), 내 육체가 성령이 거하는 전임을 알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 일행은 벧엘,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야곱을 만나 주셨던 그 장소, 그 은혜의 시간으로 돌아왔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기쁘게 맞아 주시고, 복을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왜 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지 감이 오시죠. 이 세 번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실천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동안 세상 즐길 거리와 적당히 거리를 두시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는데 힘을 다하십시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둘러보시고, 말씀 하시는 그 장소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올 해 00교회와 우리 모두에게 내려 주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의복을 바꾸어 입고, 신상들과 장신구를 다 떼어내서 땅에 묻어 버리고, 오직 은혜의 장소, 임재의 장소, 복을 주시는 장소인, 우리만의 벧엘로 올라가셔서 온전한 믿음의 신앙으로 굳게 서시는 2020년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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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2020년 한 해 동안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고 장신구를 떼어 내고 거룩한 새 옷으로 갈아입게 하셔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소망을 이루며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는, 우리 주 예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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