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사순절 세째 주일설교-부르짖는 성도 응답하시는 하나님(렘33:1-9)

열려라 에바다 2024. 3. 3. 15:50
사순절 세째 주일설교-부르짖는 성도 응답하시는 하나님(렘33:1-9)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28224.03.01 21:32댓글 9

 
 
부르짖는 성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33:1-9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 "잘 되는 나"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오스틴 목사의 친구가 암에 걸렸는데 진단결과 말기 암이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의사들이 다 포기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요양을 하며 쉬고 있는데, 하루는 4살 된 아들이 성경책을 들고 오더랍니다.
글도 읽지 못하는 아들이 성경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읽어 달라고 하기에
아들이 가리키고 있는 말씀을 별 생각 없이 읽어주었습니다.
그 구절은 요한복음 11 4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성경을 읽고 난 후 순간적으로 깨달아 지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글씨도 모르는 아이가 왜 성경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죽을병을 치유 받는 구절을 가리키고 읽어달라고 했을까?
이것이 우연히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고쳐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그는 믿음을 굳게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절망적인 말기 암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이 분이 경험했던 일은 신앙생활 속에서 많은 성도들이 경험하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기도의 능력을 경험했던 성도들이 붙잡고 의지했던 말씀이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을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 시위대 뜰에 갇혀있었습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미 두 번의 침략으로 많은 재화를 빼앗겼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즉 감옥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민족의 앞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가 지금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지만 나는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다.’ (7)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누가 알겠습니까?
내일일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십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가운데 이런 축복을 허락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응답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어제 그저께가 3.1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지 105주년이 되는 3.1절 기념일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 받고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운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숭고한 독립운동이었지만
다른 한편 이 일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민족의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당시 이 일을 주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도 교회였고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힘으로나 능력으로나 감히 대항할 수 없었던 일본에 대하여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어리석고 무모한 일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선조들은 이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3.1운동의 결과는 당시에 처참하게 실패한 것 같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로부터 26년 후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1. 먼저 기억해야 할 말씀이, ‘너는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여기에서 너는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직접적으로는 예레미야를 가리킬 수 있고 넓게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레미야는 지금 시위대뜰에 갇혀있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형편 속에서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예레미야와 같은 존재가 바로 이고 이고 우리입니다.
그러나 너와 나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은, 택함 받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 중에 은혜가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한창 핍박을 받을 때에 헤롯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야고보를 죽입니다.
이 일을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이번에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경비병을 세워 철저하게 감시하고 날이 밝으면 베드로를 처형할 계획을 세웁니다.
초대교회가 최고의 지도자를 잃을 엄청난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폭력으로 헤롯 왕과 싸울 힘도 없었고 유력한 사람을 통해서 구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연약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이때 교회가 했던 일이 부활하신 주님께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었습니다.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12:5)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초대교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초대교회, 그러나 그 기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힘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하심을 받아 기적적으로 옥에서 나왔고 죽음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리석은 양에 비유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생의 위기에 처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우리에게 기도라고 하는 특권을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기도할 수 있고 부르짖을 수 있고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자는 약한 자가 아닙니다.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요, 능력 없는 자 같으나 능력 있는 자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기도로 무장하여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승리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 기억해야 할 말씀이, ‘내게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것도 아무에게나 부르짖으면 안 됩니다.
부르짖어야 할 분께 부르짖어야 응답을 받고, 기도해야 할 분께 기도해야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엘리야와 맞섰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는 무려 그 숫자가 850명이었습니다.
850명의 대규모 집단이 제물에 불을 내려 달라고 하루 종일 부르짖고 심지어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 열심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그럴 능력이 없었고 사실은 살아있는 신도 아니고 한낱 인간이 만든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단 몇 마디 말로 간구하였을 뿐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우리의 부르짖음은, 우리의 기도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우리가 기도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입니다.
일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입니다.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내게’ ‘여호와께’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축복 중에 하나는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앞부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신을 찾고 기도하고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응답 할 수도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존재에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런 기도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을 실제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어려운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가 받은 최고의 축복 중에 하나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인 줄 믿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일을 지으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고
늘 기도하여 응답받고 축복받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기억해야 할 말씀이, ‘부르짖으라.“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부르짖으라.’는 말씀은 기도하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교훈은 실제로 부르짖고 실제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 3절 말씀을 우리는 너무 좋아하고 이 말씀을 암송하기도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입을 열어 부르짖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 궁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고 묻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서기관들을 불러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고 묻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의 기록을 언급하면서 그곳은 베들레헴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베들레헴에 가지 않습니다.
태어나신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했다면 당연히 그 왕을 만나러 그 메시아를 보기 위하여 제일 먼저 뛰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가지 않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이 없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기도에 대해서 알고 이 말씀을 암송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간을 내서 단 몇 분 동안이라도 기도해야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일부터라도 당장 기도의 시간을 마련하여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하고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겉으로는 믿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기도하는 자요 기도하는 자는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주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알게 하실 줄 믿습니다.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