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이야기

청교도와 설교

열려라 에바다 2024. 4. 19. 07:53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7번째 쪽지!
 
□청교도와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청교도운동과 18세기 대각성운동의 양향이 컸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설교는 대부분 ‘청교도 설교’와 대각성운동의 결과인 ‘프런티어 설교’입니다. 
2.청교도들은 칼빈에게서 설교 방식을 가져왔습니다. 칼빈은 성경을 조직적으로 강해했는데 그 방법은 교부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르네상스 학자들의 스타일입니다. 르네상스 학자들은 고전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해제하여 ‘주석’을 달았는데 칼빈이 바로 그런 방식의 전문가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 본문을 나누고, 더 세분하고, 쪼개서 분석하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성경은 더 세밀하게 쪼개지고 분해되고 아주 밀가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벌레를 분해해서 각 마디마다 연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벌레를 토막내면 죽어버리지요.
3.18세기 대각성운동은 초기 감리교회에서 유행했었고 지금도 오순절교회에서 사용되는 설교 방식인데, 성경 본문 한 구절 읽어 놓고 성경과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강한 감정 표출, 소리를 지르는 것, 강단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마지막에 슬그머니 성경 본문과 억지로 맞추면서 설교인 척 끝내는.....
4.원래 기독교에는 ‘설교’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3세기 그리스로마식 수사학을 받아들여 그것으로 성경을 감싸게 되었고 4세기 탁월한 연설자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5세기부터 뒤로 물러나 있던 ‘설교’가 종교개혁후 다시 등장하여 지난 500년 동안 기독교 안에서 견고하게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중심은 ‘설교’가 아니었죠.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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