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묵상의 이론과 실제
Ⅰ 역피라미드 인생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아쉽게도 현대인들 중에는 이처럼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비본질적인 물질과 권력과 명예에만 정신을 몰두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산자랑, 가문자랑, 사회적 위치 자랑, 등등 속에서 자신을 은폐시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의 사회적 업적이 대단해 보이지요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다 보면 마치 역피라미드와 같습니다. 피라미드를 거꾸로 쌓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기반은 빈약한데 쌓는 높이와 넓이는 갈수록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종국에 가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기초는 빈약한데 사회적인 업적과 권력과 돈만 늘어난다면 그럴수록 쓰러질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어느 순간에는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역피라미드 인생은 눈에 보기에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불안합니다.
돈을 많이 번 듯 하지만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있으며 좋은 집에서 살지만 두 다리를 쭉 뻣고 잠을 못잡니다. 높은 자리에 올아와 있는 듯하지만 언제 낙향될지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공부를 많이 한 듯 하지만 언제나 진리에 목말라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난이 샌드위치로 몰려오면 여지없이 기초부터 흔들리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발걸음을 처음부터 점검해 보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바른 기초 없이 인생을 경영하는 자는 언젠가는 이처럼 작은 시험에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인생 기초는 든든한지요? 무엇이 인생기초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나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나요?
Ⅱ 성경 묵상이란?
1. 두가지 길
1) 세상의 방법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사나요?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사나요? 적어도 죽지 않고 사는 거 보면 뭔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유형들이 있습니다.
에너지형 - 기(氣)
어쩌다 형 - 진화론
돌고 도는 형 - 불교
과대 망상형 - 흰두교
자연형 - 범신론
존재형 - 생철학
묻지마형 - 포스트 모던
빌면 알지형 - 샤머니즘
무(無)형 - 선
비워형 - 명상
*짬뽕형 - 종교다원주의, 상대주의
이상은 세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유형들입니다. 참 여러 갈래로 자기 나름대로 삶을 합리화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양하고 복잡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들간에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찾으려는 데 있습니다. 구원도 스스로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세계관과 종교 어디에서도 참 생명과 구원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생명과 구원에 대한 신비를 벗기지 못하기에 당연히 인간 창조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 생명에 대한 창조의 신비를 벗기지 못하게 되죠. 그저 기껏해야 존재하는 것을 바탕으로 이차적으로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생명의 근원과 회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는 어떤 세계관이나 종교도 없습니다.
2)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형상 → 인간의 존재 → 보기 좋은 하나님의 나라
그렇다면 인생의 참된 생명의 창조와 돌아감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은 없나요?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계시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주시고 이차적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창 1장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가 창조주이심을 말씀하시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친히(삶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타락 이후 결정적 계시
하나님의 계시가, 신구약에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역시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건은 바로 성육신 사건입니다.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드러났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이유는 타락한 인생은 중보자 없이하나님의 본질을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이콘이 되어서 우리 앞에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성육신은 타락한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자기 계시
이 모든 것이 성경 안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옛닐 이야기책이나 철학책, 역사책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은 무엇인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그가 만들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보이시면서 그 나라에 들어갈 백성을 어떻게 모으는 지를 보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나요? 하나님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 분 자신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묵상함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알아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성령의 인도에 따라 깊이 믿음으로 묵상할 때 살아 숨쉬는 인격이신 예수님의 활동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이 성육신 되는 과정이 주관적으로 내 안에 일어나야만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잘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만일 이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끝날 뿐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살아 숨쉬시는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서, 직접 만나야만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솔직한 대답
자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솔직하게 대답할 차례입니다. 나는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루 하루 묵상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그리고 설교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형식화 되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요?
2. 성경묵상과 하나님 알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인격)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 알다( 야다)
하나님을 아는 삶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 두 삶 사이에는 마치 조화와 생화의 차이만큼이나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이르면 쉽게 낙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삶입니다.
즉 조화와 같은 삶입니다.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앎, 즉 체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외적 조건에 대해서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그를 깊이 이해하는 것을 말하듯이 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안다라는 단어가 쓰여진 곳은 창세기 4:1 '동침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동침한다'는 말은 '알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 말은 결혼한 부부가 부부관계를 맺음으로서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생명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삶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영적으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알 때 영생이 있습니다 (요 17:3)
하나님을 알 때 지혜와 명철을 얻습니다 (잠 9:10, 골 2:2-3)
하나님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넘칩니다 (벧후 1:2)
강하고 용맹해집니다 (단 11:32)
영향받지 않고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벧후 1:3-8)
향기가 됩니다(고후 2:14)
세상에서 가장 고상합니다. 렘 9:23-24/ 빌 3:7-9
3)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
하나님의 위엄과 임재에 대한 영적인 감각을 상실합니다(삼상 2:12-17)
쉽게 죄를 범하며 실패하는 삶을 삽니다(삿 2;7-10)
삶의 전반적인 영역이 부패합니다(호4:6-10)
관계가 깨집니다. 결국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삼상 15:22-23)
형식이 우선이 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허물어집니다 (호 6:1-3,6)
4) 하나님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것
하나님을 찾지 않는 마음
과거에 받았던 상처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
복에 겨워 삼
바쁜 생활
조급함과 분주함, 지나친 열심, 비교의식
거역, 두마음, 가장(위선)
질주하는 감정, 방황하는 생각들,
영적 생명의 부재
5)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나?
심령이 가난해야(겸손해야)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믿음으로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필요함
하나님의 채널에 주파수 맞추기
말씀 묵상 - 역사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6)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 이상이다. 시 42:2
하나님은 인격이시다.(지:사55:8. 정 호11:8, 의 엡 1:5)
하나님은 말씀하신다(교제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 히 1:1-2
하나님은 먼저 접근하신다(교제의 주도권)
사귐의 시작(창 3:8), 파괴(시 14:1-3, 롬 1:21-31), 회복(히 10:19- 22), 지속(고전 1:9, 요일 1:3)
우리는 막연히 하나에 대한 어떤 사실을 단순히 지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 하나님과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 (하나님을 아는 것)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짜 하나님과 나를 안다는 것은? 그 분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가능합니다. 어떻게 체험할 수 있나요? 바로 말씀을 통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말씀과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3. 성경묵상과 나(우리) 알기
1) 나(우리)를 아는 방법에 대한 오해
나를 아는 방법은 나의 이성과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이성과 경험으로 귀착된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전제를 탈피해야만 진정한 나를 알 수 있습니다. (ex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오히려 이처럼 폐쇄적으로 나를 알기보다 관계로부터 나를 아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형상을 말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공동체적이고 인간자체가 공동체적으로 창조되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6-27
2)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성경은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가르칩니다. 즉 그 분의 형상을 말씀하시고 인간의 형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할 때도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지 말고 가장 일차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어느 누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나 홀로 나자신을 규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타락한 본성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 유무를 떠나서 공통적입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는 하나님 안에서만 규명될 수 밖에 없습니다.
3) 공동체로부터 시작
인간은 공동체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4) 균형잡힌 시각으로
내가 누구인지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알 수 있는 문제이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공동체)을 알아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백날 벽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고민해봐야 답이 안나옵니다. 그저 '산은 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을 평범하게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4. 성경묵상과 자라감
1) 구원의 이중성
구원에는 즉각성과 점진성의 이중성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단번의 제사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또다른 중요한 축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감입니다. 즉 죄사함과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감이 다 합쳐져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빌립보서2:12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하십니다.
2) 믿음이란?
은혜와 믿음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너무 은혜만을 강조하다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율적으로 보여야 할 헌신과 충성까지도 하나님의 것으로 떠 넘깁니다. 그것은 비겁한 자기 책임 회피이며 비윤리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세상방법으로서 하나님을 조각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율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을 뿐만아니라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충성하며 사는 피조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발적인 충성과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발적인 헌신과 충성 그리고 철저히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믿음은 단순히 예수 믿겠다는 신앙고백 한마디가 아니라 우리 전 생애를 담보한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은 자는 믿음으로 충성을 표합니다.
성장과 믿음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들로 자라간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그 대상 내용 목적 면에서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역사적인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인간 편에서의 나약한 희망적 기대 단순한 동경의 산물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선포에 전인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적극적 사고의 훈련이나 신념의 마력 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것들을 겸손히 받아드리고 그것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은 자녀는 이처럼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3) 열매 맺는 믿음(말씀과 믿음)
믿음은 항상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말해집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믿음을 대표적으로 잘 설명해 줍니다. (눅 8:4-15)
길가
바위
가시밭
좋은 밭
4) 믿음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
객관성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은 먼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점점 확실히 알아 갈 때 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마감하면서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나라나야 할 필요를 이야기 했습니다 (벧후 3:17-18). 베드로의 믿음이 성장한 것도 사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점점 잘 알아갔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요1:41,42; 눅 5:8; 마16:16; 행2:36)
주관성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알았으면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삶을 의탁할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머리 지식으로만 끝나고 개인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주지 않는다면 결코 믿음은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성장은 객관적인 면이든 주관적인 면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료가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배우고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뢰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5. 성경묵상과 하나님의 인도
성경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내가 누구인지가 파악되면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인이라면 모든 것을 하나님과 상의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지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로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행 1:12-26)
말씀
기도
상식
하나님께 맡김(순종의 자세)
공동체의 의견
6. 정리
1) 성경묵상이란?
성경묵상이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성경) 앞에서 전인격적으로 반응함으로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공동체와 나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으로서 최고의 영적인 축복입니다. 성경묵상을 하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 1편
묵상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하가( )인데 원래 뜻은 되새김질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소가 되새김질 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시간을 두고 되앂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군인이 자기 기분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명령에 따라서 싸워야 합니다. 전투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고로 사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하는 것이며,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함께 어우러져서 하는 것입니다. .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빠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성경묵상은 성경연구가 아닙니다. 지적인 만족을 채우는 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2) 성경묵상을 왜 해야 하나?
하나님을 알고 나(우리)를 알기 위해서 성경묵상을 합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성경묵상을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성경 묵상을 합니다.
자율적인 영적인 존재로서 이웃을 사랑하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성경 묵상을 합니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무엇을 위해 뛰고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의 세파에 나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이 내 인생의 좌표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와 개성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배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모하는 마음과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고 조급한 상태에서는 묵상이 되지 않습니다. 분주할 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지금 수 많은 전파 중에서 하나님이 던지는 전파에 채널을 맞추십시오.
Ⅲ 성경묵상을 어떻게 하는가? / 실습
* 풀코스
시간과 장소 → 기도 → 말씀 읽기 → 묵상(하나님, 공동체, 나) → 적용 → 기도 → 나눔
1. 읽기와 묵상
1) 기본 코스(가장 중요함-대부분 여기에서 실패)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묵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입니다. 성경묵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드리지 못함으로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다음은 한적한 장소입니다(분위기 잡히는 장소).
그 다음은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표준 새번역, 개역 개정, 현대인의 성경, NIV, NASB).
보조 자료/ 성경 본문에 충실한 교재 - 매일성경(성서유니온)
2) 읽기와 묵상 코스(관찰과 해석)
읽고 또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공동체에 대해서, 나에게 허락하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성경을 차분하고 깊게 읽어야 합니다. 단순히 성경을 어떤 신학적인 의미만을 찾으려고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중심내용 파악
문단 나누기 / 문맥 파악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은 어떤 분이십니까? -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
하나님의 성품, 인격, 하시는 일, 직접적인 말씀, 간접적으로 사건(등장 인물)의 배후에 나타난 하나님, 하나님의 의도,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부탁, 위로와 격려, 책망, 본 받을 것, 본받아서는 안될 것, 버려야 할 죄악, 믿고 주장해야 할 약속, 따라야할 명령"
종합하기
묵상: 종합과 분석에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 전체 숲을 보는 눈과 작은 풀 하나를 보는 눈이 결합되어서 하나님이 정말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해 내야 합니다.
3) 묵상이 어려운 이유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피상적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입니다
(오토매틱).
말씀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시각으로 접근하면 말씀이 꼬입니다.
성경이 쓰여진 당시 문화와 현재의 문화의 현격한 차이 때문입니다.
2. 성경묵상과 적용
1) 적용의 유익
참다운 믿음이란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입니다. 적용이 빠진 묵상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차라리 묵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적용 없이 묵상을 하면 할수록 부담만 증가되고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적용없는 묵상은 영작인 성장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적용을 바르게 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묵상이 그리스도인 들에게 주는 유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할 때 바로 이 적용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체질화되지 않은 말씀은 우리의 귓전을 스치는 말씀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의 귀만 높아져서 어떤 말씀도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용의 삶이 이루어지는 사람은 작은 말씀에도 감격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3:12 에서 말하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받지 않으면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입니다. 적용은 말씀을 듣고 체질화 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세상 원리와 거꾸로 가는 것이기에 고난찬 일입니다. 그러나 적용을 통해 참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적용의 영역
가치관(사고/의식)
개인 / 언어와 삶
공동체
국가와 지역 사회(문화)-직장, 학교, 사회구조, 국가, 세계 선교
3) 아홉 가지 원리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본문에 대한 충분한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 정확한 관찰과 해석이 없으면 적용도 없습니다
적용의 유형을 구분하세요. (현재 필요한 말씀인지 아니면 나의 의식을 바꿀 말씀인지)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적용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우세요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남에게 적용하지 말고 자기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 바리새인 (눅 11장)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보편타당성을 잃지 마세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눔을 가지면서 독단의 위험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점치듯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의 맥을 놓치지 마세요.
너무 심한 비약은 금물입니다.
자기합리화에 빠지면 안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이 적용이 없는 묵상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 보십시오. 실천해봐야 나의 무력함이 발견됩니다. 무력함을 아는 자만이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력함을 아는 그 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적용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시킵니다. 연단된 자는 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용으로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3. 성경묵상과 기도
1) 묵상 기도
가장 건전한 기도는 들은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묵상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신 말씀 앞에 기도를 통해 나의 뜻을 굴복시킵니다. 혹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다시 여쭈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깨달았으면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에서 이제는 "∼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의 욕심을 버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묵상 기도는 단순히 침묵기도가 아닙니다. 말씀이 앞서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묵상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특히 객관적인 말씀이 나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려면 필수적으로 묵상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충분히 묵상을 거친 후에 기도를 통해 다시 되앂으며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지요. 이 기도는 역동적이며 재미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눅 11:1-13)
대상을 똑바로 하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켜라 .
주님의 백성만이 기도할 특권이 있다.
매일 매일 전적으로 의지된 자세로 삶의 모든 영역을 드리라
간절히 하라.
기도 응답에 대해 너무 조바심 내지 마라. 하나님은 가장 귀한 선물인 성
령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있다.
본을 보이시는 예수님
기도의 역동성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하시고 실제 삶에서 어떻게 하나
님의 나라가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이심
4. 성경묵상과 나눔
나눔은 성경 묵상의 꽃입니다. 나눔을 통해서 성경묵상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리고 공동체적인 해석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나눔의 생명은 진실함(투명한 교제)에 있습니다. 진실함은 힘이 있으며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진솔하게 나눌 때 각 개인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아지면 공동체는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는 건강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경 묵상은 단지 개인의 영적인 면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만듭니다. 교회에서 시도해 보십시오. 틈나는 대로, 구역모임, 소그룹을 통해서 나눔을 시작해 보세요.
나눔 모임이 없으면 묵상나눔 그룹을 만드세요.
묵상나눔 친구를 만드세요. 그래서 늘 점검하세요.
전화로 나누세요.
컴퓨터 홈 페이지(WWW.SU.CO.KR)를 통해 나누세요.
Ⅳ 주의 사항
1. 넘어야 할 장애물
무계획-성경을 정하지 않고 이곳 저곳 되는대로 읽는다.
작심삼일-성경묵상에 대한 말을 듣고 실행하기로 했지만 성경 말씀이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서 포기했다.
매너리즘-성경을 몇번씩 통독했기 때문에, 다 아는 내용(특히 신약의 내용)이 나와서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완벽주의-본문의 의미가 난해하여 영적 교훈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필기기피증-성경묵상에 노트에 기록하기가 귀찮다.
욕심 과대-그 날의 말씀을 묵상할 때 새롭게 깨달은 바, 버릴 죄악, 약속, 본보기, 명령의 항목을 따르다보면 너무 적용거리가 많아진다. 개인 성경 공부하는 식으로 하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적용 부재-매일의 적용점이 며칠 간 쌓이다 보니, 성경묵상에 하나님 말씀 깨닫는 것이 오히려 짐이 된다.
망각-말씀을 읽을 때는 큰 깨달음과 감격이 있어 적용할 점을 적고 기도까지 하는데, 하루 생활을 하다보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처음 성경묵상을 가질 때는 감겨적이었는데 얼마 하다가 보니까 강렬한 깨달음이 없는 것 같다.
예화묵상-성경묵상에 꼭 성경만 읽을 것이 아니라 다른 책도 읽으면 어떨지
2. 피해야 할 위험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자세 (자기를 높이기 위해, 사역에 성공하기 위해, 개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성경묵상을 하려함)
성경 계시의 범주를 벗어나고 싶은 유혹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태도
큰 사건에 관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위험(다른사람이 포함된 것-시간,
재능, 돈이나 자원)-생명 없는 일들과 계획에 에너지를 소비함.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의 통로를 무시
지나치게 교리적인 것
적용이 없는 지식
묵상 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 전해지는 설교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또 지도자를 함부로 깔봐서도 안됩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독단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동체적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보편타당한 진리를 수납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영적인 지도자의 지도에 따르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Ⅴ 어떻게 지속할 수 있나?
"재미가 있어야 지속하지요!"
재미를 느낄 때까지 지속하세요. 1년 이상 해보지 않고 성경묵상의 맛을 얘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두달 해보고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셨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어쩌면 자기 의지가 많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도에 포기는 금물입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성경묵상을 할 수 있나요?"
말씀으로 우리의 의식과 인격과 삶을 바꾸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마세요.
적용에 게으른 사람은 성경묵상이 짐만 될 뿐입니다.
점검 친구를 옆에 두세요.
공동체적 나눔 그룹을 만드세요.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적당한 분량을 읽으시고 규칙적으로 해보세요.
다른 어떤 헌신과 봉사 보다 말씀 묵상에 대한 헌신이 우선순위입니다.(마르다와 마리아)
성경묵상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그 앞에 나왔습니다. 그의 문제는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였습니다.(눅 10:25)
성경묵상은(기도)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역동적으로 임하는지를 목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문제는 성경묵상 없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계시)하시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소망도 없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사는 것 뿐이지요. 말씀이 풍성하지만 가장 냉대 받는 이 시대에 말씀을 사랑함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자녀, 하나님의 형상) 아름답게 잘 자라나길 바랍니다.
성경묵상은 개인의 묵상에 끝나지 않습니다. 개인 묵상에서 끝나는 것은 지극히 비성경적입니다. 나눔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과 더불어 공동체가 건강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묵상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숙하길 기대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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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레인, 정병길 옮김, 하나님의 무기 기도, 성서유니온,1985
성경읽기 사역위원회, 성경읽기 사역자를 위한 핸드북, 성서유니온
송인규, 나의 주 나의 하나님, IVP, 1984
오대희, 묵상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 프리셉트, 1999
윤종하, 묵상의 시간,성서유니온,1983
잭 쿠하쉑, 정애숙 옮김, 어떻게 성경을 적용할 것인가?, IVP, 1996
죤 에디슨, 이중수 옮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서유니온, 1978
찰스 스탠리, 이미정 옮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두란노,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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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예수전도단, 1999
홍정길 외 11인, 기도와 경건, 두란노,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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