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가요 = 신명기24;1-16(240505)

열려라 에바다 2024. 5. 3. 07:52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가요 = 신명기24;1-16(240505)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배려하며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어려운 이웃의 딱한 처지를 헤아리며 배려해 주는 것이다.

 

 

어느 여인의 죽음

 

동네에서 잔뜩 미움을 샀던 여인이 죽었습니다.

생전에 그 여인은 가시 돋친 말과 무서운 성깔로 남편을 들볶고 아이들을 못살게 굴며 동네 사람들과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장례식 날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장례식이 끝나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번개가 눈부시게 번쩍이더니 요란스럽게 천둥이 휘몰아지는 것입니다.

이를 본 누군가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제 하늘도 조용하긴 글렀네.”

그럴리야 없겠지만 얼마나 그 여인 때문에 힘들게 살았으면 이렇게까지 이야기할까요?

우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P4.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요단강 대협곡을 지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이라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가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부르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서로에게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거룩하고 온전하고 정결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으로 세워져 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표준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 신앙인들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일까?

 

D4

 

 이혼 증서로 여인을 보호해 주시려는 하나님.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라고 되묻는다.

바리새인들은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대답한다.

제자들이 다시 그 문제를 가지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라고 대답하신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말씀이다.

1-4절에서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고고고고고대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혼인도 오늘날처럼 남녀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혼인하는 것이 아니다.

양가 아버지들의 약속에 의해서 혼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자들은 자기와 혼인한 아내가 마음에 들 수도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남성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가 있다면 여러 구실을 만들어서 아내와 이혼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내와 이혼하려고 하면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 보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혼한 여인이라 해도 이혼 증서가 없으면 재혼할 수가 없다.

이혼 증서가 없으면 이혼했다는 증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이혼한 여인이 재혼하지 못하면 마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대책을 세울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이혼 증서를 써 주어서 다른 사람에게 재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내와 이혼하려고 할 때 이혼 증서를 써서 주어야, 이혼 증서를 가진 여인이라야 다른 남자에게 재혼할 수 있다.

 

자신과 혼인한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흠이 보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아내를 진심으로 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설령 아내에게 흠이 있더라도 그 흠을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다.

아무리 양가 아버지들의 결정에 의해서 혼인이 이루어졌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부부임을 확신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따라서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에도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선권이 어떤 것인지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5-7절에서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삶의 우선권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 말씀이다.

신혼부부는 군대로 징집하여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것보다도 더 신혼을 누려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혼인데 신랑이 군대에 징집되어 버리면 신혼의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맷돌과 그 위짝은 당장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기구이다.

맷돌로 곡식을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야 빵을 만들고 그 빵을 구어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맷돌을 전당 잡아버리면 그 가족은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종으로 삼아버린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유인의 신분을 빼앗는 꼴이 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주권과 섭리를 강탈하여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 교만한 자이기 때문에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삶의 우선권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과 섭리를 최우선으로 세워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악성 피부병이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8-9절에서 너는 나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지켜 행하되, 너희는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지켜 행하라.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였을 때, 누나인 미리암과 형인 아론이 모세를 책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책망하는 행위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행위로 간주하셔서 미리암에게 악성 피부병으로 징계하신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을 때 악성피부병에 걸리는 징계를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면 죽거나 악성피부병에 걸려서 부정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악성피부병에 걸렸다면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는 규례에 따라서 정결케 하는 순서를 따라서 정결케 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전당물에 대한 규례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10-13절에서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가장 좋은 것은 이웃이 돈이나 여러 필수품을 빌리려고 하면 아무런 조건없이 빌려주거나 전당물을 잡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오죽 살기가 힘들고 어려웠으면 돈을 빌리거나 필수품을 빌리려고 했겠는가?

그러니 가난한 이들에게서 전당물을 잡았다면 그 날 돌려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전당물은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을 전당 잡았다면 그 옷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옷이란 가난한 이들에게는 단순한 옷의 개념을 벗어나서 매섭게 추운 밤에 담요가 되고, 이불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들이 담요와 이불이 없어서 매서운 추위에 벌벌 떨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전당물을 잡은 이들에게 이웃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배려하지 않는 그 완악함을 징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당물을 잡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설령 받았다고 하더라도 밤이 찾아오기 전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품꾼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14-15절에서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남의 밭이나 포도원이나 올리브원이나 대추야자 농원에 가서 일을 해서 그날 품삯을 받아야만 온 가족이 굶주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집이라면, 그래서 하루 품삯을 받으려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이겠는가.

품꾼이 하루 일을 했는데 그 날 품삯을 주지 않으면 그 가정은 온 종일 굶주리면서 긴긴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긴긴밤을 지세우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하늘의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원통해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품삯을 주지 않은 주인에게 징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품삯은 그날에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포도원의 비유에서 보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일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좌제를 깨뜨리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6절에서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연좌제(連坐制, Implicative System)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연좌제란 특정한 사람의 범죄에 대하여 일가친척이나 그 사람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연대 책임을 지고 처벌을 당하던 제도이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7족을 멸한다. 온 친족을 멸한다 등등 갖가지 형벌들이 존재하였다.

부모 자식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시는 관계이다.

이른바 천륜이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인격체이다.

각각 서로 다른 인격체이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의 죄로 심판받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의 죄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는 부모가 드리는 제물로 용서를 받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이 드리는 제물로 용서받는 것이다.

대가족제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아가는 고대사회이지만, 죄의 형벌은 각 개인에 해당한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일가족, 씨족까지도 몰살당하는 사례들이 종종 존재한다.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 아간이라는 한 사람의 탐욕으로 인하여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는 원인이 된다.

나라와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하여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이혼 증서로 이혼당하는 여인을 지켜주시는 일이나, 우선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나 악성피부병으로 인하여 정결케 하는 일들이나 전당물에 관한 일들이나 연좌제를 파기시키는 일들, 이 모든 일들은 민족공동체, 씨족 공동체의 안전과 거룩을 위해서 배려하는 삶의 자세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히브리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를 바로 세워가기 위하여 형제들, 이웃들에게 배려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배려하지 않는 삶, 이기적인 삶은 절대로 운명공동체를 바로 세워갈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배려하는 삶을 살아갈 때, 공동체, 유기체가 세워지는 것이다.

몸의 지체들이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뻐기면서 우쭐거린다면 어떻게 한 몸이라는 유기체가 세워지겠는가?

각각 지체들이 자신이 존재하는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본분을 잘 감당하면서 서로서로 협력하면서 배려할 때만이 유기체가 든든하게 세워져 나가는 것이다.

 

L4 & B4

 

얼마나 이웃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에 참여하며 찾아가 주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사회는 절대로 나 혼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人間)이란 존재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라고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친히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은 서로서로 아름답고 복된 관계를 맺으면서 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 한 분이 독단적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면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피조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이 서로서로 유기체를 형성하면서 아름답고 복된 세계를 활짝 열어가라고 하시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서로서로 좋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협력하고 배려할 때, 가정이 온전하게 세워지고, 사회와 직장이 세워지고, 교회와 국가와 민족이 굳건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고,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유기체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서로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사라진다면 교회로서의 사명은 이미 사라지고 끝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공동체의 모습, 교회 유기체의 모습을 적나라게 표현하고 계신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모두가 필요하다.

누구는 필요하고, 누구는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없으면 주님의 온전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은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누구누구는 필요치 않은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쫓아내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단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총회에서 몇몇 부류는 제외시키는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도 이단을 비롯하여 교회를 파괴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유기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그런데 흔히 주류(主流)사회를 이끌어가는 특권층들, 금수저들은 하층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핍박하고 박해하면서 짓밟으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때건, 어느 시대건, 어느 지역이건 유사하게 나타는 현상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사회를 형성하는 특권층들, 이른바 대제사장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과 헤롯왕조에 기생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하층민들, 낮은 이들을 겁박하고 착취하고 핍박하면서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럴 때에 세례요한을 비롯한 의식주의자들이 쿰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의식 개혁운동을 펼쳐나가게 된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유대사회를 형성하는 특권들과 로마정부와 헤롯정권에 맞서서 의식을 개혁하면서 새로운 물결을 주도해 나가신다.

예수님은 특별하게 낮은 자들만을 위해서 오시지 않고 모든 인류를 위해서 오신 분이지만, 낮은 자들을 위해서 3년의 공생애를 바치신다.

목자 없는 양 떼들처럼 허덕이는 무리들을 위해서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전해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해주시고. 육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시고, 각종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고, 불구자들을 온전케 해 주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들로, 거룩한 자들로, 정결한 자들로 세워주신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온갖 것들로 억압받는 무리들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유와 샬롬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신다.

 

그러기에 이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주시면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해주신 것처럼 이웃 성도들과 가족들을 배려하고 함께 협력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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