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 8장 1절 ~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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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우리 자신들의 “(연)약함”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개인과 가족의 육체적인 질병의 연약함과 정신적으로 겪고 있는 영적인 연약함에 대해 함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일하신 대표적인 3대 사역이 있습니다.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귀신을)쫓아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마태복음 8장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다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는 나병환자를 고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질병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주에 예고해 드린 본문 읽으시면서 기도 많이 하셨을 텐데, 말씀 들으시면서 내가 지닌 질병이 고침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면서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아멘.
1절에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산상설교(산상수훈)를 하시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 앞 부분 마태복음 5~7장이 산상설교인 것은 다 아시죠? 제가 이전에
산상설교를 포함하여 신약성경 중에서 제가 꼭 반복해서 읽어 보시라고 한 성경 부분들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메모 해 놓으셨다가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시고, 기도하시면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실 겁니다. 네 군데를 알려 드립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5~7장 산상설교이며,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둘째는, 누가복음 9~11장 제자와 칠십인 파송이며, 주제는 제자도(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요한복음 14~17장 예수님의 설교와 기도이며,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에 대해서입니다.
넷째는, 로마서 5~8장 구원 교리이며, 주제는 의, 죄, 성화,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알려드린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읽으시라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전체 내용을 꾸준하게 순서적으로, 반복해서 읽어으셔야 합니다. 다만, 내가 이 말씀 만은 꼭 지니고 살자, 이 말씀 만은 꿀송이처럼 맛있게 계속 먹자, 이 말씀은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말씀을 진실로 사모하시면서 읽어보시라는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제가 알려드린 말씀들을 수시로 펴서 읽으시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의 자세와 방향을 깨달을 수 있으실 겁니다. 야러분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한결 같아서 성경만이 참 진리요, 능력이요, 소망이 되어서 말씀이신 우리 주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제로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무척 피곤한 상태이셨을 겁니다.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왔다고 합니다. 그 무리들 중에는 몸이 아픈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쉴 틈도 없이 환자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은 나병환자였습니다.
산상설교를 마친 예수님 앞에 처음 등장한 사람이 제자들도 아니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저주를 받아 걸리게 되엇다고 생각하는 나병환자가 갑자기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에는 나타나지 않은 숨은 행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아는 상식으로는 나병환자는 동네 밖에서 격리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수 많은 무리가 몰려올 때 그 무리들 속에서 나병환자가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또한 그가 “주여” 라고 부르며 예수님 앞에 절을 한 행동이 매우 수상합니다. 절을 했다는 것은 인사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코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바닥에 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와 예배를 드릴 때 하는 행동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단순하게 치료의 능력자로 여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고백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절을 하면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하고 비슷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나병환자가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러한 숨은 의도들이 있음에도 성경에서는 무리들이 그를 제지하거나 쫒아내려고 했다든지 하는 일절의 상황을 소개하지 않고 그저 나병환자가 예수님께로 나왔다,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요청했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나병환자가 얼마나 확고하게 이 자리로 나아오려고 했는지 아무도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저주 받은 질병, 고쳐지지 않는 질병,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불치의 질병임에도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행동과 그의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하셨고, 나병은 즉시 깨끗하여졌습니다.
이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병과 같은 최악의 질병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악의 질병이라도 주님의 능력 안에서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없습니다.
다만, 고침을 받고 싶다는 내 소망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고치시든지, 그리 아니하시든지 그 원하심은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앞세울 때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덧 붙여서, 하나님을 경배 하고, 경외하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자에게 치료의 기적은 역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과 자세가 치유를 만든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치유 되고 누구는 더 악화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옵니까?
오늘 말씀의 내용으로 파악해 보면, 낫고자 하는 간절함, 주님을 찾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음, 날마다 경배하며 엎드림, 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맡겨드리는 믿음, 이런 것들이 생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말과 행동으로 실행되었을 때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다 질병 하나쯤은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장기적으로, 고질적으로, 치유의 어려움으로 고생하시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내가 만약 나병환자의 마음과 자세와 행동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나의 질병은 고침 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질병의 고통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간절하고 피가마르는 심정으로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부르짖고, 찾아 보셨습니까? 남몰래 고통 속에서 눈물흘리며 땅에 코와 이마를 부딧치면서 경배의 예배를 간절하게 드려 보셨습니까? 고쳐주시든지, 그리 아니하시든지 나의 주, 나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뿐임을확고하게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렇게 생활했다면 주님이 왜 우리의 고통과 호소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주님우리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고침 받으려는 자들이 얼마나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가,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언제든지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려고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병환자의 심정으로, 아니 그 나병환자의 절반의 심정만 되어도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실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준다는 말이 참아라, 기도하라, 더 믿음 가져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허공에 울리는 말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곧 이 시대의 나병 환자들이고, 우리가 나병환자라면 우리 모두는 나병환자가 치유 받은 그 믿음과 기도를 내 것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 질병과 다른 성도들의 질병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모두가, 오늘부터 나병환자의 심정으로 찾아가고, 엎드리고, 믿고 고백하는 삶으로 인도함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치유 이야기는 중풍병이 걸린 백부장 하인의 이야기입니다. 5~13절입니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아멘.
이 이야기의 스토리는 더 이상 부연 설명 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계신 내용일 겁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예수님이 백부장의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신 대화 내용만으로 이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백부장을 포함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가나안 여자의 믿음 등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있지 않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며,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타락과 변질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백부장은 성경에서 보기드문 강한 믿음의 태도를 보이면서 예수님에게 최고의 칭찬을 받고 그의 수하 병사의 중풍병도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우리가 소속된 직장이나 사회 관계, 혹은 이웃들과의 교제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대할 때 백부장이 부하를 대하듯 하는 애틋하고 간절한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조금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보살펴 주셨던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을 찾아가시고 고쳐 주시기를 멈추지 않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자들의 관심 역시 예수님을 본 받아 이웃에게, 타인에게, 지인에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모임과 단체 안에서만이라도 백부장의 마음으로 타인을 상대하려고 노력 해야 합니다.
“나만 안 아프면 그만이지”라는 안일한 생각, / 일말의 긍휼함도 없으면서 “참 안됐네 어쩌면 좋아”라고 무미건조하게 말만 하는 행동, /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은 내 일이 아니라는듯한 무관심한 태도, / 가까운 이웃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단 한번의 기도에도 동참하지 않고도 아무런 영적 부담감을 느끼지 못하는 피폐한 믿음의 상태, / 이런 자세와 행동으로는 결코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칭찬이 문제가 아닙니다.
에수님은 백부장을 칭찬 하신 후에 무리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아멘.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방인들, 믿음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들 중에서)이 천국에 앉겠지만, 본 자손들(유대인들,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자들 중에서)은 쫓겨나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내 아픔과 고통처럼 여기며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질병과 아픔을 위해서 함께 동참해야 하는 것은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바드시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솟아 올라야 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피폐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얼굴들이 보이실 겁니다. 그 분들 중에 아프고 힘들어하고 곤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그들이 백부장의 부하,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백부장이 기꺼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부장은 말합니다. “주여 말씀만 하소서, 내 부하가 낫겠나이다” 우리는요? 우리도 이 정도의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 이런 작은 믿음은 남아 있을 겁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백부장이 되어 타인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는가를 지켜 보면서 너의 믿음이 과연 구원에 이르는 칭찬 받을 만한 믿음으로 성장해 있는지 판단하겠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웃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진 내 이웃이고, 그들은 내 기도의 대상이며, 내 도움의 대상이며, 내 믿음이 어떠한지를 평가 받게 하는 돌봄의 대상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은 오직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 받을 것입니다. 이방인인 백부장에게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최고의 칭찬을 하셨으면서도 정작 당시의 정통 유대인들인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 이웃을 내 몸과 사랑하라는 성경의 주요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활이어야 함을 잊지 마시고,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내 가까이에 있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과 질병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긍휼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어 주시고, 그들의 몸과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마지막 본분은 베드로 장모 열병을 고쳐준 사건입니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준 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요청해서 치유해 주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나오고 곧바로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하면서, 귀신들과 병든자들을 묶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서 귀신과 질병에 대해 콕 집어서 말하는 장면이 이곳 말고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에베소서에 전도할 때 일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 아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질병은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까? 그럼 병이 생기면 귀신부터 쫓아내야 하나요? 자, 성경에서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발생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귀신과 질병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살펴 볼까요?
①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사울왕의 정신분열증은 악령, 즉 귀신의 역사 였습니다.
②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마 8:29) 거라사인의 땅에 귀신들린 사람은 정신분열증 환자 였으며, 옷을 입지 않고 집을 나가 무덤에 거하며 쇠사슬에 묶어놔도 끊어버리고 달아날 정도로 포악했습니다.
③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 귀신들린 남자는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던 사람으로,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파리해지고, 귀신이 자주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던지지기도 했습니다.
④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눅 13:13) 이 여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디스크협착증 환자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질병의 원인이 귀신의 소행이라고 밝히셧고 축출기도로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밝히셨기 때문에 귀신과 질병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모든 질병은 다 귀신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면역력 감소, 유전적 인자, 사건 사고, 식생활 문제 등 여러가지 상황은 분명히 질병의 다른 원인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열병을 고침 받은 후에 많은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다는 내용이 이어짐으로, 장모 열병 역시 귀신의 역사이다, 아니다 열병은 별개의 사건이고 나머지는 나중의 사건이다 라고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손길과 말씀으로 다 고침 받았다는 겁니다.
지난 주 말씀 예고 드리면서 가족의 질병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셨죠? 가족 누군가 아프면 가족 전체가 아프고 고통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있었고, 요청(추측으로)이 있었기에 치료해 주셨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고 요청하는 자가 있어야 가족 건강이 지켜 집니다. 내가 가정의 질병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생각으로 베드로의 심정으로 가족의 건강을 위해 힘써 기도하십시오.
그럼 이 장면에서 귀신은 왜 등장한 것일까요? 그것도 질병과 연결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귀신이 우리를 시험케 하고 낙망케 하기 위해서, 삶을 망가트리고, 지저분하게 만들고, 더럽게 하기 위해서 질병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분명히 실존하고있음을 깨닫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피폐, 영성의 부실함이 귀신과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질병을 치료해 달라는 기도는 사후처리 문제이지만,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선포하고, 쫓아내고, 물리치는 것은 사전예방책입니다. 병이 안 걸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은 당연하기에, 기도함으로 귀신과 질병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앞장서 싸워야 합니다.
귀신이 우리 몸에 언제 들어올까요? 엄청 많지만 딱 세 가지 경우만 말씀 드립니다.
첫째, 불순종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탄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음란 할 때, 이것은 몸과 생각을 더럽히는 일로 귀신과 한 몸이 되어 영적 간음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셋째, 교만할 때 , 이것은 자신이 강하고, 자랑스럽고, 잘못하는 것이 없고,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 몸을 즐겁게 하여 강하다고 느끼게도 만들고, 우리 몸을 더럽게 하여 쾌락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에게 질병을 가져다 주어 절망에 이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귀신과 질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17절,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라는 구원의 말씀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친히, 직접 귀신과 질병들을 상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신 이유는, 우리가 연약함으로 인해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가지 질병으로 끊임 없이 고통 당하는 것, 이것을 확실하게 끝내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능력이요, 십자가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이름, 십자가 구원의 능력을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예수 이름으로 하나 되는 구원 받은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큰 믿음의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 이름을 찬양하는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의 병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 이름에 감사하는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이 일평생 예수 소망, 예수 사랑으로 이웃을 살피는 가족되게 하옵소서!
어떠신가요?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예수 이름 앞세워 간절히 기도 하시면, 건강문제, 자녀 문제, 화목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재정의 문제, 미래의 문제, 믿음의 문제,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예수 이름 안에서 영원한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실 겁니다.
진짜 믿음 있는 가정은 자녀들의 미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쌓아둔 기도가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지켜본 바로는 믿음의 사람들은 시간이 자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이 평안해지고 모든 면에서 여유를 얻어 갑니다. 믿음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이름을 앞세우는 기도의 능력은 반드시 은혜로 역사합니다.
우리 자녀가, 내 가정이 귀신들려서 포악하고, 더럽고, 궁핍한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또한, 우리 자녀가, 내 가정이 생각하지 못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싶은 가정 또한 없을 겁니다. 귀신들리고, 질병에 걸리기 전에 지금 당장 예방책을 시행하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권면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내 몸의 건강 문제, 내 이웃의 건강 문제, 내 가족의 건강과 영적인 피폐함의 문제를 그냥 손 놓고 있지 마시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찬양하고, 예수 이름으로 경배하며, 오직 예수 이름 하나로 기쁘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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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시고, 예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감당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 드리며, 오직 예수 이름을 부르며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진실한 주의 자녀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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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우리 자신들의 “(연)약함”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개인과 가족의 육체적인 질병의 연약함과 정신적으로 겪고 있는 영적인 연약함에 대해 함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일하신 대표적인 3대 사역이 있습니다.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귀신을)쫓아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마태복음 8장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다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는 나병환자를 고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질병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주에 예고해 드린 본문 읽으시면서 기도 많이 하셨을 텐데, 말씀 들으시면서 내가 지닌 질병이 고침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면서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아멘.
1절에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산상설교(산상수훈)를 하시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 앞 부분 마태복음 5~7장이 산상설교인 것은 다 아시죠? 제가 이전에
산상설교를 포함하여 신약성경 중에서 제가 꼭 반복해서 읽어 보시라고 한 성경 부분들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메모 해 놓으셨다가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시고, 기도하시면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실 겁니다. 네 군데를 알려 드립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5~7장 산상설교이며,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둘째는, 누가복음 9~11장 제자와 칠십인 파송이며, 주제는 제자도(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요한복음 14~17장 예수님의 설교와 기도이며,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에 대해서입니다.
넷째는, 로마서 5~8장 구원 교리이며, 주제는 의, 죄, 성화,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알려드린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읽으시라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전체 내용을 꾸준하게 순서적으로, 반복해서 읽어으셔야 합니다. 다만, 내가 이 말씀 만은 꼭 지니고 살자, 이 말씀 만은 꿀송이처럼 맛있게 계속 먹자, 이 말씀은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말씀을 진실로 사모하시면서 읽어보시라는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제가 알려드린 말씀들을 수시로 펴서 읽으시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의 자세와 방향을 깨달을 수 있으실 겁니다. 야러분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한결 같아서 성경만이 참 진리요, 능력이요, 소망이 되어서 말씀이신 우리 주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제로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무척 피곤한 상태이셨을 겁니다.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왔다고 합니다. 그 무리들 중에는 몸이 아픈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쉴 틈도 없이 환자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은 나병환자였습니다.
산상설교를 마친 예수님 앞에 처음 등장한 사람이 제자들도 아니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저주를 받아 걸리게 되엇다고 생각하는 나병환자가 갑자기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에는 나타나지 않은 숨은 행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아는 상식으로는 나병환자는 동네 밖에서 격리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수 많은 무리가 몰려올 때 그 무리들 속에서 나병환자가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또한 그가 “주여” 라고 부르며 예수님 앞에 절을 한 행동이 매우 수상합니다. 절을 했다는 것은 인사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코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바닥에 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와 예배를 드릴 때 하는 행동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단순하게 치료의 능력자로 여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고백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절을 하면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하고 비슷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나병환자가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러한 숨은 의도들이 있음에도 성경에서는 무리들이 그를 제지하거나 쫒아내려고 했다든지 하는 일절의 상황을 소개하지 않고 그저 나병환자가 예수님께로 나왔다,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요청했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나병환자가 얼마나 확고하게 이 자리로 나아오려고 했는지 아무도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저주 받은 질병, 고쳐지지 않는 질병,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불치의 질병임에도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행동과 그의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하셨고, 나병은 즉시 깨끗하여졌습니다.
이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병과 같은 최악의 질병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악의 질병이라도 주님의 능력 안에서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없습니다.
다만, 고침을 받고 싶다는 내 소망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고치시든지, 그리 아니하시든지 그 원하심은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앞세울 때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덧 붙여서, 하나님을 경배 하고, 경외하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자에게 치료의 기적은 역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과 자세가 치유를 만든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치유 되고 누구는 더 악화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옵니까?
오늘 말씀의 내용으로 파악해 보면, 낫고자 하는 간절함, 주님을 찾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음, 날마다 경배하며 엎드림, 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맡겨드리는 믿음, 이런 것들이 생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말과 행동으로 실행되었을 때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다 질병 하나쯤은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장기적으로, 고질적으로, 치유의 어려움으로 고생하시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내가 만약 나병환자의 마음과 자세와 행동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나의 질병은 고침 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질병의 고통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간절하고 피가마르는 심정으로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부르짖고, 찾아 보셨습니까? 남몰래 고통 속에서 눈물흘리며 땅에 코와 이마를 부딧치면서 경배의 예배를 간절하게 드려 보셨습니까? 고쳐주시든지, 그리 아니하시든지 나의 주, 나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뿐임을확고하게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렇게 생활했다면 주님이 왜 우리의 고통과 호소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주님우리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고침 받으려는 자들이 얼마나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가,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언제든지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려고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병환자의 심정으로, 아니 그 나병환자의 절반의 심정만 되어도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실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준다는 말이 참아라, 기도하라, 더 믿음 가져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허공에 울리는 말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곧 이 시대의 나병 환자들이고, 우리가 나병환자라면 우리 모두는 나병환자가 치유 받은 그 믿음과 기도를 내 것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 질병과 다른 성도들의 질병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모두가, 오늘부터 나병환자의 심정으로 찾아가고, 엎드리고, 믿고 고백하는 삶으로 인도함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치유 이야기는 중풍병이 걸린 백부장 하인의 이야기입니다. 5~13절입니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아멘.
이 이야기의 스토리는 더 이상 부연 설명 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계신 내용일 겁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예수님이 백부장의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신 대화 내용만으로 이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백부장을 포함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가나안 여자의 믿음 등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있지 않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며,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타락과 변질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백부장은 성경에서 보기드문 강한 믿음의 태도를 보이면서 예수님에게 최고의 칭찬을 받고 그의 수하 병사의 중풍병도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우리가 소속된 직장이나 사회 관계, 혹은 이웃들과의 교제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대할 때 백부장이 부하를 대하듯 하는 애틋하고 간절한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조금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보살펴 주셨던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을 찾아가시고 고쳐 주시기를 멈추지 않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자들의 관심 역시 예수님을 본 받아 이웃에게, 타인에게, 지인에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모임과 단체 안에서만이라도 백부장의 마음으로 타인을 상대하려고 노력 해야 합니다.
“나만 안 아프면 그만이지”라는 안일한 생각, / 일말의 긍휼함도 없으면서 “참 안됐네 어쩌면 좋아”라고 무미건조하게 말만 하는 행동, /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은 내 일이 아니라는듯한 무관심한 태도, / 가까운 이웃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단 한번의 기도에도 동참하지 않고도 아무런 영적 부담감을 느끼지 못하는 피폐한 믿음의 상태, / 이런 자세와 행동으로는 결코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칭찬이 문제가 아닙니다.
에수님은 백부장을 칭찬 하신 후에 무리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아멘.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방인들, 믿음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들 중에서)이 천국에 앉겠지만, 본 자손들(유대인들,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자들 중에서)은 쫓겨나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내 아픔과 고통처럼 여기며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질병과 아픔을 위해서 함께 동참해야 하는 것은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바드시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솟아 올라야 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피폐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얼굴들이 보이실 겁니다. 그 분들 중에 아프고 힘들어하고 곤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그들이 백부장의 부하,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백부장이 기꺼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부장은 말합니다. “주여 말씀만 하소서, 내 부하가 낫겠나이다” 우리는요? 우리도 이 정도의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 이런 작은 믿음은 남아 있을 겁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백부장이 되어 타인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는가를 지켜 보면서 너의 믿음이 과연 구원에 이르는 칭찬 받을 만한 믿음으로 성장해 있는지 판단하겠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웃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진 내 이웃이고, 그들은 내 기도의 대상이며, 내 도움의 대상이며, 내 믿음이 어떠한지를 평가 받게 하는 돌봄의 대상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은 오직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 받을 것입니다. 이방인인 백부장에게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최고의 칭찬을 하셨으면서도 정작 당시의 정통 유대인들인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 이웃을 내 몸과 사랑하라는 성경의 주요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활이어야 함을 잊지 마시고,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내 가까이에 있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과 질병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긍휼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어 주시고, 그들의 몸과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마지막 본분은 베드로 장모 열병을 고쳐준 사건입니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준 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요청해서 치유해 주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나오고 곧바로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하면서, 귀신들과 병든자들을 묶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서 귀신과 질병에 대해 콕 집어서 말하는 장면이 이곳 말고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에베소서에 전도할 때 일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 아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질병은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까? 그럼 병이 생기면 귀신부터 쫓아내야 하나요? 자, 성경에서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발생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귀신과 질병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살펴 볼까요?
①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사울왕의 정신분열증은 악령, 즉 귀신의 역사 였습니다.
②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마 8:29) 거라사인의 땅에 귀신들린 사람은 정신분열증 환자 였으며, 옷을 입지 않고 집을 나가 무덤에 거하며 쇠사슬에 묶어놔도 끊어버리고 달아날 정도로 포악했습니다.
③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 귀신들린 남자는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던 사람으로,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파리해지고, 귀신이 자주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던지지기도 했습니다.
④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눅 13:13) 이 여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디스크협착증 환자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질병의 원인이 귀신의 소행이라고 밝히셧고 축출기도로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밝히셨기 때문에 귀신과 질병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모든 질병은 다 귀신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면역력 감소, 유전적 인자, 사건 사고, 식생활 문제 등 여러가지 상황은 분명히 질병의 다른 원인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열병을 고침 받은 후에 많은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다는 내용이 이어짐으로, 장모 열병 역시 귀신의 역사이다, 아니다 열병은 별개의 사건이고 나머지는 나중의 사건이다 라고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손길과 말씀으로 다 고침 받았다는 겁니다.
지난 주 말씀 예고 드리면서 가족의 질병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셨죠? 가족 누군가 아프면 가족 전체가 아프고 고통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있었고, 요청(추측으로)이 있었기에 치료해 주셨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고 요청하는 자가 있어야 가족 건강이 지켜 집니다. 내가 가정의 질병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생각으로 베드로의 심정으로 가족의 건강을 위해 힘써 기도하십시오.
그럼 이 장면에서 귀신은 왜 등장한 것일까요? 그것도 질병과 연결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귀신이 우리를 시험케 하고 낙망케 하기 위해서, 삶을 망가트리고, 지저분하게 만들고, 더럽게 하기 위해서 질병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분명히 실존하고있음을 깨닫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피폐, 영성의 부실함이 귀신과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질병을 치료해 달라는 기도는 사후처리 문제이지만,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선포하고, 쫓아내고, 물리치는 것은 사전예방책입니다. 병이 안 걸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은 당연하기에, 기도함으로 귀신과 질병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앞장서 싸워야 합니다.
귀신이 우리 몸에 언제 들어올까요? 엄청 많지만 딱 세 가지 경우만 말씀 드립니다.
첫째, 불순종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탄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음란 할 때, 이것은 몸과 생각을 더럽히는 일로 귀신과 한 몸이 되어 영적 간음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셋째, 교만할 때 , 이것은 자신이 강하고, 자랑스럽고, 잘못하는 것이 없고,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 몸을 즐겁게 하여 강하다고 느끼게도 만들고, 우리 몸을 더럽게 하여 쾌락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에게 질병을 가져다 주어 절망에 이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귀신과 질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17절,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라는 구원의 말씀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친히, 직접 귀신과 질병들을 상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신 이유는, 우리가 연약함으로 인해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가지 질병으로 끊임 없이 고통 당하는 것, 이것을 확실하게 끝내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능력이요, 십자가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이름, 십자가 구원의 능력을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예수 이름으로 하나 되는 구원 받은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큰 믿음의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 이름을 찬양하는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의 병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 이름에 감사하는 가족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이 일평생 예수 소망, 예수 사랑으로 이웃을 살피는 가족되게 하옵소서!
어떠신가요?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예수 이름 앞세워 간절히 기도 하시면, 건강문제, 자녀 문제, 화목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재정의 문제, 미래의 문제, 믿음의 문제,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예수 이름 안에서 영원한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실 겁니다.
진짜 믿음 있는 가정은 자녀들의 미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쌓아둔 기도가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지켜본 바로는 믿음의 사람들은 시간이 자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이 평안해지고 모든 면에서 여유를 얻어 갑니다. 믿음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이름을 앞세우는 기도의 능력은 반드시 은혜로 역사합니다.
우리 자녀가, 내 가정이 귀신들려서 포악하고, 더럽고, 궁핍한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또한, 우리 자녀가, 내 가정이 생각하지 못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싶은 가정 또한 없을 겁니다. 귀신들리고, 질병에 걸리기 전에 지금 당장 예방책을 시행하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권면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내 몸의 건강 문제, 내 이웃의 건강 문제, 내 가족의 건강과 영적인 피폐함의 문제를 그냥 손 놓고 있지 마시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찬양하고, 예수 이름으로 경배하며, 오직 예수 이름 하나로 기쁘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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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시고, 예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감당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 드리며, 오직 예수 이름을 부르며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진실한 주의 자녀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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