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지식의 말씀 (고전 12:8-11)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 중에서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전 12장에 성령의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은사(恩賜)란 선물입니다. 한문으로는 은혜恩 줄賜,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약1:17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이걸 평행법 문장이라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함으로 보완하거나 강조하는, 그렇다고 볼 때 은사는 곧 선물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물일까요? '온전한 선물"(약1:17), 눅11:13에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이 귀한 선물을 사모함으로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소개하는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분류한다면 약 세 가지인데, 첫째는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들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그리고 영들 분별함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말하는 것과 관련된 방언과 통역 예언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로서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알고 깨닫는 은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지혜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무엇일까요?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이고 적중하게 전할 수 있도록 지혜로서 돕는 은사입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지혜를 받아서 전하면 그 효과가 30배 60배 100배 넘치게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어떻게 다른지 신학자 클린턴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의 적용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의 안정과 성장에 필요한 지식, 그리고 생각들을 알아내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설교나 예언 등을 수행할 때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로서 말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완악한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우둔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말씀도 이런 은사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합니다.
요즘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와 바이든의 차이입니다. 바이든은 세계 최강의 미국을 가지고도 그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미국 눈치 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는가 하면 미 항공모함을 미사일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작하기도 전에 말로서 세계를 맘대로 주물럭거리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유럽을 재무장시키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을 향해 달리게 하고, 최근에는 가자지구를 향해 취임 전까지 인질 석방 안 하면 지옥의 대가를 맛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하마스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가 어디서 나오는지 앞으로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 궁금합니다.
방위비 인상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측근들이 흘리는 말에 의하면 한국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제2의 에치슨 라인을 긋겠다고 합니다. 미국과 동맹이라면서 중국을 못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국민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미군철수 주장하고 북한을 추종하고 연방제 통일이 공산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치슨 라인이 왜 그어졌습니까? 자유민주주의보다 공산주의를 따르겠다는 국민들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화가 나서 한 번 당해 보라면서 미군철수하고 책임 안 지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결과 625가 터지고 비극이 온 것입니다. 아주 방치했으면 우리는 예수도 못 믿고 김정은의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트럼프의 사람 다루는 기술이 대단합니다.
이처럼 지혜의 말씀 은사가 그렇습니다. 지혜의 말씀 은사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분이 설교의 서론입니다. 서론은 마치 집의 현관과 같아서 무엇을 말하며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여 끝까지 듣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특별히 지혜의 말씀 은사가 많이 사용됩니다.
그뿐 아니라 지혜의 말씀은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초자연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마10:19-20에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지혜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다릅니다. 지혜의 은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까지 망라하지만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주어지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지식의 말씀 은사입니다.
8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 은사는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명확하게 깨달아 잘 전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깨닫고 전해야 할 내용이 지식의 말씀이라면, 그 지식을 전하는 방법이 지혜의 말씀 은사입니다.
전12:11에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했는데 여기 찌르는 채찍 같은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라면, 잘 박힌 못과 같은 말씀은 지식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식의 말씀은 대개 학자적인 은사입니다.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지식이 능하지만 설교는 못하고, 설교는 잘하지만 깊은 것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받으려면 사무엘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자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 준대로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겸손할 때 비밀을 아는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식의 은사라 해서 하늘에서 지식이 뚝 떨어진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는 본문을 읽고 또 읽고, 전후문맥과, 원어적인 부분, 낱말해석, 배경적인 부분, 주석적인 부분 등을 살펴가며 본문의 의미를 먼저 잘 파악하고, 나아가 다른 성경과의 연관성이나, 신약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등 이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공부하고 배우고 언제든지 좋은 지식이 오면 순간순간 메모하고 설교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판단해 보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벧후1:19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단숨에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희미하다가 점점 더 밝게 열려지므로 더 묵상하고 공부하고 배우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 것은 말씀의 은사란 깨닫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항상 초자연적으로만 계시하신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 속에서 위대한 말씀의 은사자들을 주셔서 업적을 남기게 하셨으므로 그것을 참고하는 것도 말씀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요, 자신의 은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혹은 지식의 말씀 은사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웃지만 그 마음에는 깊은 슬픔이 있고, 어떤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 병의 원인을 갑자기 깨닫기도 하며,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느껴지면서 알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교만한 것입니다. 심지어 AI 인공지능이 설교 작성을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계가 능해도 성령의 은사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로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나아가 말씀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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