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신앙인으로 살아봐요 = 누가복음01;5-23(241215)

열려라 에바다 2024. 12. 13. 08:32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신앙인으로 살아봐요 = 누가복음01;5-23(241215)
 
한상원목사추천 1조회 4524.12.12 08:15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PW : 믿음             BIW : 순종하라               AG : 신앙인들
TS : 믿음이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역에 충성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너의 피 값으로 우리가 살았구나

외국의 어느 마을에 철도를 건너 통학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철도 건널목을 건널 때면 어김없이 기차가 지나갔습니다.
소년은 그때마다 승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밝은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폭우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철로가 끊겨 있었습니다.
만약 기차가 그대로 지나가면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상황이었습니다.
소년은 가방에서 연필 깎는 칼을 꺼내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흰 셔츠에 빨간 피로 스톱이라는 글씨를 써 기차를 향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의 셔츠에 적힌 붉은 글씨를 보고 급히 기차를 세웠습니다.
기관사는 그제서야 철로가 끊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혈이 낭자한 소년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너의 피 값으로 우리가 살았구나.”
그렇습니다.
한 소년의 피로 수많은 생명들을 살린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아무나 함부로 드릴 수 없다.
반드시 아론의 후손들로 구성된 대제사장과 일반 제사장만이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대제사장은 본래 한 분이어야 한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그의 장자가 아버지 대제사장직을 상속하여 관유을 부으면서 대제사장이 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때까지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시대에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서 유대는 헬라제국의 식민지가 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면서 헬라제국이 4개의 제국으로 분할되면서 유대지역은 셀릭시드 왕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셀릭시드왕국은 최고의 신으로 섬기는 제우스신상을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옆에 세워놓고 제우스신에게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대제사장에게 요구하고 한다.
제우스신은 돼지 피로 제사를 받는 신이다.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제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릭시드왕국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서 대제사장이 돼지피를 가지고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을 것을 강요한다.
이런 일은 다른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
제사장 중에 마카비 제사장이 있었는데, 마카비 제사장이 다른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을 규합하여 성전에서 제우스신에게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헬라제국과 전쟁하여 승리하게 된다.
이로써 마카비 왕조, 히스모니안 왕조가 세워지게 되고, 제우스신에게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려고 하던 대제사장을 파면하게 된다.
대제사장을 파면시키고 일반 제사장들 중에서 대제사장을 임명하게 된다.
그 이후로 대제사장은 상속제가 되지 않고 임명제와 임기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대제사장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전직 대제사장, 현직 대제사장이라는 여러 명의 대제사장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제사장은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지만, 일반 제사장은 상속하여 대대로 제사장직을 상속받아서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모든 제사장들이 한꺼번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제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아론의 후손들로 구성된 모든 제사장들은 24개 조, 24개 반열로 나뉘어서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하는 일을 수행하는 조에 해당되면, 그 조에 해당하는 제사장들이 성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들은 매우 다양하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사를 마무리하는 것까지 매우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한다.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들을 준비하고, 제물을 준비하고, 나무를 준비하고, 청소하는 제사장들도 있고, 제물을 잡는 제사장도 있고, 직접 제물의 피를 들고 성소로 들어가서 제사하는 제사장도 있고, 분향단에 분향하는 제사장도 있고, 금등대에 불을 밝히는 제사장도 있고, 진설병 빵상에 빵을 진열하는 제사장도 있고, 어린 제사장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는 제사장들도 있다.
해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집례해야 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을 교육시키는 제사장들도 따로 있다.
성전을 보수하는 제사장들도 있고, 성전을 지키는 파수꾼 제사장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제사장들이 수행해야 할 분야를 제비 뽑아서 선정하게 된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24개의 조로 구성된 제사장들 중에서 아비야 반열, 아비야 조에 해당하는 사가랴 제사장과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등장하고 있다.
사가랴 제사장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가랴 제사장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D4.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8-9절에서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들을 성전으로 보내서 제사장의 직을 수행하게 하신다.
제사장들을 관리하는 제사장은 오늘 제사에 참여하게 될 제사장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오늘 할 일에 대하여 제비를 뽑게 된다.
사가랴 제사장은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비에 뽑혀서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 제사장에게는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단에 분향하는 사역을 수행하도록 역사해 주신 것이다.
제사장들이 감당해야 할 다른 사역들도 많은데, 하나님은 사가랴 제사장에게 영광스럽게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 분향할 수 있는 사역을 맡겨주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교회에도 다양한 사역들이 있다.
예배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찬양대, 교회학교 교사, 주차관리, 교회당 청소, 식사 준비 등등 다양한 파트에서 섬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성전에서는 제비를 뽑아서 사역을 맡기지만, 교회에서는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따라서 사역을 맡겨주신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어떤 사역을 맡겨주시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믿음과 기쁨으로 순종하며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에게 맡겨주신 사역이 어떤 사역이든 그 사역에 충성하며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천사를 보내서 찾아오시는 하나님.


사가랴 제사장이 성소 분향단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불현듯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다.
11절에서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분향단 오른쪽에 나타난 모습을 본 사가랴는 너무나 놀라며 무서워한다.
사가랴는 평생 성전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천사가 나타난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결코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사가랴 제사장에게 천사는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지를 사가랴에게 전한다.
13-17절에서 천사는 사가랴 제사장에게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다.
사가랴는 상상도 못해 본 일이다.
사가랴는 자신에게 천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꿈에도 상상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아들은 조상의 이름을 따라서 불리는 사가랴라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은 나실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가랴의 아들은 엘리야 선지자의 심령으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하는 자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말씀까지 전해준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사가랴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젊을 때에 혼인하여 애타게 아이 낳기를 기대하며 기도했는데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불임녀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구나. 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제 자식 낳을 소망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을 학수고대하며 마지막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했었는데,
그런 엘리사벳의 태를 열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계획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꿈의 아들, 비전의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젊었을 때는 아이를 달라고, 태를 열어 임신시켜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 낳은 것은 포기한 지 이미 한참이나 지난 때이다.
여인으로 이미 경수가 끊어지고 폐경이 된 지 오랜데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가랴와 엘라사벳은 이제는 아이 낳을 수 있도록 태를 열어달라는 기도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이처럼 인간은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꿈과 비전이 있는 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의 태를 열어주시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찾아오셔서 놀랍게 역사해 주실 수 있다.
사람은 포기할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야곱의 일행들이 중동지역에 발생한 극심한 가뭄, 기근을 피해서 애굽 땅으로 넘어가서 애굽제국의 종으로 살면서 얼마나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도, 아니 300년이 지나고, 400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애굽제국에서의 삶은 날이 가면 갈수록,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더욱더 힘들어지고 고달파지기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묵묵히 지켜만 보고 계신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체념하려고 한다.
그럴 때에, 430년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던 때가 되었을 때, 놀라운 히브리민족 대이동이라는 출애굽을 단행하신다.
사람은 포기할 수 있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신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때가 되었을 때, 비로서 역사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면 한 점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 가신다.


이처럼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성령으로 찾아오시고 임재하시면서 감동을 주신다.
사가랴 제사장에게 천사를 보내서 찾아와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품고 계시는 꿈과 비전을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으로 구원의 세계를 활짝 펼쳐 나가실 것이다.


 증표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지금까지 잉태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하실 때, 사가랴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한다.
18절에서 사가랴가 천사에게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라고 하면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천사는 19-20절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라고 말씀하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농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가랴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후에 성소에서 나왔지만,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아무리 말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평소 사가랴 제사장을 잘 알고 있는 동료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이후에 자택으로 돌아간다.
사가랴가 살았던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4km정도 떨어진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뒤편에 있는 엔 케렘(Ein Karem)”이라는 지역이다.
사가랴가 자택으로 돌아간 이후에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된다.
잉태한 엘리사벳은 25절에서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사가랴 제사장에게 증표를 주시지 않고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하여 낳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서 사가라 제사장에게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농아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증표를 주신 것일까?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나이였다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야말로 방방 뛰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엘리사벳은 아이를 잉태하여 낳을 수 있는 월경이 끊어진 지 오래된 여인이다.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여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사라도 이미 경수가 끊어졌음에도 하나님께서 사라의 나이 89세가 임신하여 90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는다.
그것은 사라의 이야기일 뿐인지, 엘리사벳의 이야기가 아니다.
엘리사벳이 사라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라의 경우와 엘리사벳의 경우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가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믿음이 약하다고 책망하시면서 농아인의 삶을 살도록 하는 증표를 주시는 것이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앙인들이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섭리와 말씀을 굳건하게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온전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런데도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전폭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온전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항변할 때가 있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사가랴도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일반 제사장에 불과한 사람이다.
특출하게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신앙인들도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가 허다한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스가랴 제사장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포기하시겠는가.
하나님이라는 분은 인간이 믿음을 가지고 있건, 믿음이 없건 상관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믿음의 유무를 떠나서, 믿음의 깊이가 낮고 높음을 떠나서, 믿음의 분량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계획과 섭리를 따라서 능력으로 진행시켜 나가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전능하신 분이라고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심어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사가랴 제사장에게 증표를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 진짜이구나. 가짜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확신을 심어주시기 위하여 증표를 주시는 것이다.
기도온이 하나님께 두 번에 걸쳐서 증표를 보여달라고 할 때, 하나님은 기드온이 원하는대로 증표를 보여주신다.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증표대로 되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기드온은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감당하는 사사가 된다.


L4 & B4.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사가랴에게 천사를 보내서 찾아오시고 증표까지 주시는 것일까?
사가랴 제사장이 분향단에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에 찾아오신 것일까?
만약에 사가랴 제사장이 성소에서 분향하는 사역이 아니라 다른 사역을 감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령 제물을 잡는다거나 성전에서 사용할 물을 떠 온다거나 청소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역사해 주셨을까?
사가랴 제사장이 손을 들고 저는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먼저 신청해서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장들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제사장이 오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할 모든 제사장들을 불러 모아서 여러 분야에 하나씩 제비를 뽑으면서 그 분야에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제사장을 정하는 것이다.
먼저 신청해서 선착순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비를 뽑아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제비를 뽑다 보니 사가랴는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순서가 되는 것이다.
사가랴 제사장이 분향하는 사역이 아니라 다른 사역을 감당하고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찾아오시는 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가랴 제사장이 감당하는 사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가랴 제사장의 가정을 통해서 역사해 가실 하나님의 나라 회복과 구원의 사역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가랴 제사장은 성전에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더라도 상관없다.
설령 번제단에 제물을 태우기 위해서 번제단 나무를 준비하는 것이나 청소하는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사가랴 제사장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감당해야 할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빈둥빈둥거리면서 대충대충 시간이나 때우면서 하고 있느냐?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에 충심을 다하여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의 신실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6절에서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를 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사도 자신이 먼저 선지자가 되겠다고 신청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우기철이 되어서 이른 비가 내리기 전에 농사하기 위하여 밭을 갈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불현듯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선지자의 겉옷을 던져주면서 선지자로 부르시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사가랴 라는 제사장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지, 사가랴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은 사가랴 제사장의 가정을 통하여 역사해 가실 구령의 계획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어떤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설교자로, 목회자로 살고 있느냐? 선교사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로로 살고 있느냐? 권사로 살고 있느냐? 집사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성가대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 교사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 청소위원이나 주차위원으로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사역을 맡겨주시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역에 충실하게 충성하며 순종하고 있느냐? 불순종하고 있느냐? 하는 태도와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자타가 알아주는 설교자요 목회자요 선교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등한시하거나 빈둥빈둥거리거나 대충대충하거나 하면서 시간이나 때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 제사장이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가랴 제사장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다.
설령 스가랴 제사장이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싫어하고 기피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더라도 그곳으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면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가랴 제사장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가치관과 마음가짐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소위 말해서 고급스러운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에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설령 저급스러운 사역, 하급스러운 사역이라고 치부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증표까지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류의 사역을 맡겨주시든 그 사역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감당한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 복음과 보혈을 전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가까이 나아올 수 있도록 충성하면서 순종하고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충성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살겠노라고 하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와 됨됨이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감동을 주신다.
신앙인들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솔된 삶을 살아간다면 언제나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시고, 확신할 수 있도록 증표까지도 주신다.
사가랴 제사장을 찾아오셔서 장래의 일을 알려주시고 확신시켜 주시고, 그 사역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꿈과 비전을 보여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