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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독일에서 돈을 버는 대로 약간의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 4명의 생활비며 학비를 대려면 이것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주말도 다른 병원에서 특근을 하며 돈을 더 번 것이다. 병원 환자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고 나면 제일 많이 받는 것이 초콜릿이었다. 난 이 초콜릿을 안 먹고 열심히 모았다가 소포로 한국에 보냈다. 동생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당시 초콜릿은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찾으려면 세금을 내야 했다. 동생도 비싼 돈을 들여 세관에서 찾았다고 했다. 이리저리 따져 보니 우리는 서로 초콜릿 가격의 서너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한 셈이 됐다. 참 웃지 못할 일이 아닐 수 없다. 1974년 어느 날 친구가 근무하는 뒤스부르크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우연히 클라우스란 이름의 독일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여섯 살 많았고 훤칠한 키에 아주 미남형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호감이 갔다. 알고 보니 그는 동독 출신이었다. 당시는 동서독이 갈라져 통일되기 전이었다. 그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왔다가 철의 장벽이 쳐지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평양에서 남하해 고향을 못가고 있으니 같은 입장인 셈이었다. 클라우스는 서독에서 사실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고 있었고 연고가 없어 결혼도 쉽지 않은 듯했다. 그와 몇 번 데이트를 하다 보니 병원 계약기간 만료가 코앞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지 남을지 결정이 서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려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버스 패키지 투어를 처음으로 신청했다. 한국에 돌아가든 안 가든 구경은 한번 해봐야겠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가니 모든 유적이 결국 교회와 관련돼 있었다. 대성당도 그렇고 수많은 유적·유물이 결국 성경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유럽여행은 내게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인식을 갖게 해 주었다. 독일에 남을지 돌아갈지 고민하는 내게 클라우스가 정식으로 청혼을 해왔다. 갈등이 생겼다. 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모두 환영했다. 내 나이에 한국에 오면 노처녀여서 시집가기 힘드니 그냥 결혼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동생들이 보내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선택한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양가가 가족은 별로 없고 친구들만 주로 모인 결혼식이었다. 병원 친구들도 여럿 와서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3년간 정이 든 비텐 병원을 떠나 남편의 직장이 있는 뒤스부르크로 이사를 가 신혼집을 차렸다. 당연히 직장도 뒤스부르크 빈센트 병원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한국 간호사들이 많았고 나는 다시 일에 빠져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나니 예전처럼 동생에게 마음대로 돈을 보내는 것이 남편에게 눈치가 보였다. 상의를 하면 언제나 남편은 승낙을 해 주었다. 나는 아들만 셋을 연달아 낳았다. 그리고 여동생 딸도 한국에서 데려와 양녀를 삼았다. 그러니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 둘이 벌어도 집 장만이 쉽지 않았다. 4명의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다 주려면 셋집으론 살기 힘들어 남편과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저축을 많이 해야 했고 내가 힘들어도 병원 근무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집안일과 병원일과 휴일 근무에 시달리던 어느 날, 하늘이 핑그르르 도는 것 같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근무하던 병원에 곧바로 입원했다. 정신을 차렸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몸을 돌보지 않고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았다. 순간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나이가 42세였는데 바로 지금 내 나이가 42세였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나도 올해 죽을 것 같다는 낙심이 들자 병세가 극도로 더 나빠졌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첫 신호였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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