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역경의 열매] 김선희 (4) 믿음의 문 열게 한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열려라 에바다 2012. 8. 23. 07:46

[역경의 열매] 김선희 (4) 믿음의 문 열게 한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나이 ‘42세의 공포’가 엄습하자 어떤 약도 내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 못했다. 내가 죽는다고 가정하자 남편에게 미안하고 두 돌 된 막내의 얼굴과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또 나를 의지하고 있는 한국 동생들은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야 했다. 입원 중에 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저는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처럼 이 나이에 죽으면 안 됩니다. 살려주셔야 제가 부모로 아내로 언니 누나로 몫을 다할 수 있습니다.”

병상에서 틈만 나면 기도했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려만 달라고 하기에 하나님께 미안했다. 그러서 기도 말미에 추가 기도를 했다. 나의 서원기도가 된 셈이다.

“하나님, 절 살려만 주시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낫기만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저를 살려주셨다고 부르짖고 다니겠습니다.”

의사는 내가 너무 지쳐 있으니 휴양지로 가서 푹 쉬다 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시누이에게 맡기고 의사가 소개해 준 공기 맑은 휴양지로 떠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설악산 같은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묵으려면 숙소를 배정받아야 하기에 입구에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한국인 여성이 내 옆으로 오더니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다 그녀는 대뜸 내게 질문을 던졌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나는 전도를 하려는가 싶어 천주교 신자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병색이 있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면서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자매님도 이 사실을 믿으면 병 고침의 기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을 꼭 읽어 보세요. 이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앉아 있는데 이 자매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틀 후에 자신이 다시 오니 그때 만나자고 했던 자매는 약속대로 밥과 김치를 싸들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쾰른순복음교회에 출석하는 집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교회생활의 유익과 기독교 신앙이 왜 중요한지를 내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전도를 위해 그 장소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주었다. 고 최자실 목사님이 쓴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란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마음 문이 열렸다.

나는 이때부터 휴양지 근처 교회에 가서 울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매일매일 울며 지냈다. 알게 모르게 지었던 잘못들이 떠올라 회개를 했는데 나는 당시에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불신자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긍휼과 회개의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그 여집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독일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가 보게 되었다. 내가 간 날은 마침 성도들이 야외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송을 부르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옆 사람 보기에 창피할 정도였다. 계속 울고 또 울다보니 어느새 예배가 끝나 있었다. 그 집사님이 힘들게 교회에 왔으니 저녁식사는 자신의 집에서 하자며 손을 이끌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간단히 예배를 드리는데 전신에서 강한 진동이 오면서 소파에 앉은 몸이 마치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늘 아팠던 몸이 오랜만에 평안함이 느껴졌다. 기쁨이 샘솟고 세상에서 체험치 못한 벅찬 감동이 내 몸을 휘감았다. 성령의 강한 운행과 역사를 몸으로 느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쓰시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