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요5:44-47)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열려라 에바다 2024. 3. 3. 15:54

5장 44절-47절: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44절: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은 유일하시니 영광도 하나뿐이다.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영광을 구하라는 거냐, 사람들끼리 영광을 구하라는 거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는 거다. 이 영광을 우리에게 주고 싶다는 거다.


이 영광은 하나님의 지혜지식성과 하나님의 도덕성과 하나님의 능력성이 들어 있고, 영적인 면에서 지능과 기능이 탁월한 영광으로 세상사람들이 가지는 영광과는 다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밖에 없는 이 영광을 너도 나도 가진 거다.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한 사람만 가진 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다 가진 거다. 우상을 섬기면 이 영광이 없고 하나님의 형벌이 그 가정에 3, 4대까지 내려간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받아 가지는 거다. 세상의 영광은 아무리 가져도 소용이 없다. 다니엘이나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것은 투표를 하고 인간의 수단을 써서 올라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니 하나님께서 주신 거다. 이들은 세상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대국의 왕들이 보화를 아무리 줘도 그걸 원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분들과는 반대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석가는 물질계악설을 주장했는데, 석가의 교훈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욕심을 내고 있다. 물질계악설이란 물질은 다 악하다는 것인데, ‘악하다. 선하다’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닌 도덕성과 인격성을 가진 인간에게 쓰는 말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은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물이다.


믿는 사람이 사람의 영광을 취하려고 하면 안 된다. 특히 교회 인도자들은 자기를 피알하면 안 된다. 교회 인도자는 교인들이 자기를 받들게 해서는 안 되고 주님과 의사단일로 밀착이 되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세례요한이 ‘나는 망하고 주님은 흥해야 한다’ 라고 말을 한 거다.


45절-47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세가 너희를 고소할 거다’ 라고 하신다.


신: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라고 했는데,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뱀에 물렸을 때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을 본 자가 낫기도 했는데 이것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라고 하신 것은 ‘모세가 구약에서 이미 나에 대해 예언을 했음에도 너희들이 나를 믿지 않으니 모세가 너희들의 잘못을 고소할 거다’ 라는 말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자기의 백성을 해방시켜서 광야에서 훈련을 받게 하고, 시내산의 말씀을 주어서 영능의 실력을 가지고 약속된 땅에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라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들도 그렇지만 특별히 모세의 삶을 보면 주님께서 하시는 역할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모세를 통해 ‘장차 주님이 오시면 이 분이 교회에게 이렇게 역사할 거다’ 라는 걸 미리 보여준 거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의 말씀을 바로 알아들으면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게 된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본다면 예수님의 정신과 사상을 배우고 인격화 시켜야 하겠는데 이런 면은 알지 못한 채 ‘목사님들은 좋은 말만 해 주겠지’ 라고 하면서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하나의 단체화 무리화로 되어서 이리 저리 몰려다니면 바른 믿음이 안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고난과 환난과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겠다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기도 하는데, 옳은 것을 잡지 못하고 이런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다가는 사단 마귀의 종들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에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니 자신도 망가지고 자기 가정도 망가진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회에서 자기의 아픈 마음에 더 상처를 받게 되면 서럽고 아픈 마음을 어떻게 표현을 하고,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겠느냐?


진리의 종으로서는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보는 교인을 볼 때 저절로 통곡이 나올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동안 거짓 종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진리의 종의 교훈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다행이겠는데 계속해서 그 동안의 신앙의 길로 가겠다고 하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놓고 통곡이 나오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광야생활을 하면서 영능의 실력을 연마하게 한 모세는 당신의 백성을 애굽 같은 세상의 죄에서 해방시키고 세상에 살게 하면서 영능의 실력을 연마시켜서 약속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예표의 역할을 했다. 이건 성역이다. 성역을 하는 곳은 성전이다. 예수님께서는 장소적으로 성전 안에서나 밖에서나 들판에서나 이 성역을 하셨다. 예수님의 이 성역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계된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일이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진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밖에 없는데,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표면적 계시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사람을 하나님의 설계(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것이 성역이다. 교회 인도자는 이걸 알아야 한다. 교인들의 정신이 여기에서 이탈되게 하고 넓은 길로 가게 하면 성역이 아니라 마귀의 일이다. 교인들은 자기가 일상생활에서 성역을 위해 사는 건지, 즉 하나님의 온전을 위해 사는 건지 알아야 한다.


성경 속에 보화가 들어 있는데 이걸 밝히지 않고 성경을 구절적으로만 알면 그 신앙은 세상화가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에게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을 하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게 축복인 줄을 모른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못 섰는데 이 사람에게 돈이 들어오면 이 사람은 이 돈 때문에 망한다. 돈 때문에 제 목숨대로 못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과 사건 속에서 자기를 잘 살펴라.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일을 하는 게, 공부를 할 때는 공부를 하는 게 성경대로 하는 거다.


모세의 역할 속에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들어 있는데, 성령님의 감화란 사람을 벌벌 떨게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는 깨달음을 주는 거다. 이 정신이 들게 하고, 이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성령의 감화다. 구원의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성령의 감화다. 이 모세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어서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했는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세의 이 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 앞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 결국 이들은 모세의 말도 믿지 않은 셈이 되는 거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을 하나님께 고소를 한다고 한다는 거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처음 말씀을 받고 내려오다가 하나님께서 적어주신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깨뜨렸다. 그리고 다시 산에 올라가서 받은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십계명은 절대적인 명령이다. 이 십계명은 인간들이 환경이나 형편에 따라 지키거나 안 지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지켜야 하는 말씀이다. 그러면 모세가 왜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깨뜨린 거냐?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니까 아버지가 이걸 두고 보다가 교과서를 다 찢어버렸다면 이게 무슨 뜻이냐? ‘너는 공부가 필요가 없다’ 이 말인 것처럼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하면서 자신들의 뒤를 좇아오던 애굽의 군대가 바다에 몰살당하는 것도 봤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체험했으면서도 모세가 없는 40일을 못 참아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돌판을 깨뜨려 버린 건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이 없이 사는 이방인들처럼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필요가 없다’ 하는 식으로 심판을 당하면 되겠느냐는 거다.


믿는 우리가 말씀을 받고 죄를 깨달아 나갈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사람으로 살라고 만나도 주시고, 구원을 이뤄갈 수 있는 사건 환경도 주시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육의 생각을 따라 세상의 소원 목적으로 살면 이 사람은 구원을 이루라고 사건 환경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원망불평을 하게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속에 든 것은 똑같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이 죄에서 구원을 하는 예수님을 찾게 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율법은 예수님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인데, 유대인들을 율법을 잘 알고 지킨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로 오지를 않았으니 이는 모세로부터 하나님께 고소상태가 된다.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도 이 이치가 똑같이 들어가는 거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서 간다고 해도 안 믿는다는 말과 같은 거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나흘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온 나사로가 예수님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었느냐? 이들은 모세는 잘 알지만 모세를 붙들고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미리 알게 한 뜻을 모르니 예수가 안 믿어지는 거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자기에게 닥친 사건과 환경과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뜻으로 이것을 붙들고 역사를 하시는 건가?’ 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 자극이 되어서 왈가왈부하게 되면 이 사람은 믿음으로 못 들어간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는데,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속히 하라는 거냐? 말은 사람이 하는 거지만 그 말 속에서 누가 말을 하는 거냐? 아버지가 아들에게 ‘뒷집에 가서 도끼를 빌려와라’ 라고 해서 아들이 뒷집 아저씨에게 가서 도끼를 빌려달라고 하면 말은 아이가 하는 거지만 말 속의 말은 아버지가 도끼를 빌려달라고 하는 거다.


목사가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면 이 목사는 세상이 보낸 종이고, 진리이치를 말하면 주님이 보내신 거다. 누가 말을 할 때 ‘저 사람의 말 속에서 누가 말을 하고 있느냐?’ 이게 있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어야지’ 라고 하는 것은 말은 그 사람이 한 거지만 그 속에서 누가 말을 한 거냐? 이 사람 속에 세상이 들어 있고, 마귀가 들어 있는 거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믿는 장소, 안 믿는 가정, 안 믿는 정신에서 탈출을 해서 광야교회 생활을 하면서 시내산의 말씀성을 넣으면서 신앙의 훈련을 받았듯이 지금의 우리도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진리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와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훈련과 연단의 기간이다. 이 훈련 기간 동안에 진리의 종으로부터 진리본질의 말씀을 받으면서 질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으로 바로 들어가야 바른 신앙이 된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이 없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다. 육신의 문제해결을 위해 믿는 사람, 세상에 관한 문제해결을 위해 믿는 사람, 가난에서 부요로 되기 위해 믿는 사람 등등의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는 자들이 많다. 우리는 기도도 그렇고, 언행심사도 그렇고, 삶의 정신과 사상도 그렇고 어디에, 무슨 목적을 두고 그것을 하는지를 생각을 하라.


하나님이 자기의 왕이 되어 있어서 이 사람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선다면 얼마나 좋으냐? 자기로 인해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자기의 일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면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수 년, 수십 년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가 뜻대로 안 해 준다고 심통을 부리고 고집을 부리느냐? 자기의 몸이 아프면 남에게 원망이 가야 하느냐,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모아져야 하느냐? 사람이 안 만들어진 사람은 모든 게 남 탓이지만 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살핀다. 그리고 나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도록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