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막6:30-34)

열려라 에바다 2024. 7. 23. 11:17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막6:30-34)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20724.07.19 12:18댓글 8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
마가복음6:30-34


한 임금이 세상물정을 살피기 위해 평민복장을 하고 민정시찰에 나섰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하여 한 주막집에 들렸습니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임금을 수행하던 신하가 깜짝 놀라서 임금님께 속삭였습니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전하의 정체가 발각된 것 같습니다.”
이 신하가 왜 이렇게 난리 법석을 떨었을까요?
주막기둥에 손님은 왕이다.”라는 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음식점이 잘 되기 위해서는 손님은 왕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손님을 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싼 음식을 먹고 매상이 별로 올라가지 않고 남루한 옷을 입고 온 손님이라 할지라도 손님은 왕이라는 자세로 대하면 음식점은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손님이 많아지고 영업이 잘 되면 매너리즘에 빠져 손님을 대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매상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지를 못하고 무관심하거나 아예 냉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개척하고 교인들이 많지 않을 때에는 한 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새로 나온 사람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안정되고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새로 나온 교인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저 나오려면 나오고 안 나오려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대우를 받게 되면 괜히 서운해지고 교회가 여기밖에 없나 하면서 다른 교회로 갈 때도 있습니다.
끝까지 손님을 왕으로 대하듯이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할 때 음식점뿐 아니라 어떤 분야든지 잘 될 수 있을 줄 압니다.
손님을 왕으로 대하는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고 사람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며칠 동안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행하면서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제자들이 많이 피곤한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 먹을 겨를이 없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래서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호수를 건너 한적한 곳에 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냥 두실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을 알아내고는 예수님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전도여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서 좀 쉬려고 하는데 거기까지 사람들이 몰려와 휴식을 방해하니 얼마나 짜증이 났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무리들을 보시고 짜증을 내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히 여기십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오는 자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진실한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항상 긍휼과 눈물과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실 때, 그냥 습관적으로 고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셨습니다.
사실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에게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는 하는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같이 건성으로 대하고 악수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위상은 매우 높았습니다.
이 시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을 받으셨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많은 기적을 행하였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하시는 인기 있는 랍비요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짜증을 내지 않고 긍휼히 여기며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에게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보다 나중의 일입니다만 한번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듣고도 며칠을 더 머무신 후에 베다니를 찾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지난 때였습니다.
베다니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주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슬퍼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무덤 앞에서 우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잠깐 후면 나사로를 살리실 것이고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님에게는 슬픈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십니다. 일부러 보이기 위해 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삶의 바탕에 긍휼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도 이러한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사람들로 인하여 먹지 못하고 피곤해하셨을 때 주님은 제자들을 따로 한적한 곳에 데려가셔서 쉼을 얻도록 하십니다.
사람들이 그곳까지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을 때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불쌍히 여기사 그들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전하십니다.
군중들이 먹을 것이 없어 기진해졌을 때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군중들을 배부르게 먹이십니다.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다가 풍파를 만나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주님은 그 사실을 멀리서 보시고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제자들을 구하여 주십니다.
게네사렛에 돌아와 많은 병자들이 고침받기를 원할 때 주님은 그들을 긍휼이 여기사 다 고쳐주십니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 상황으로 보면 힘들고 짜증이 날만한 일들이었습니다.
피곤한 육체를 더욱 힘들게 하고 귀찮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멀리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긍휼하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초청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어떠한 수고의 짐을 지고 나아와도 책망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시며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어떤 무거운 짐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수고스러운 짐이라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체면이 없다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은 누구도 다 받아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야단치지 않습니다. 늦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너는 나에게 나올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다 받아주시고 다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문제 속에 함께 고민하시면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거부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 앞에 나올 때
그 수고스러운 짐을 대신 져 주시고 무거운 짐을 벗겨주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긍휼은 마음으로만 긍휼히 여기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끝까지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과 주님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도 문제를 해결해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실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피곤에 지친 제자들에게는 한적한 곳에 가서 쉬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에게는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굶주림에 지쳐있는 자들에게는 직접 떡을 만들어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십니다.
파도에 휩쓸려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그들을 성난 파도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병이 들어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다 고쳐주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주님은 곧바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우리들이 험한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문제는 실로 다양합니다.
의식주의 문제, 고통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질병의 문제, 죽음의 문제, 가족의 문제,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문제를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그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능력, 그런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 어떤 문제를 갖고 있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그 모든 문제에서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시고자 하시면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야단치지 않고 다 받아주시고 다 해결해주시는 그 주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내어놓고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입니다.


양과 목자의 비유는 목축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비유입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가 없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양은 짐승 중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요 미련한 짐승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보호할 수도 없고 스스로 살아갈 힘도 없습니다.
양에게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주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양 같은 존재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지켜주어야 할 목자를 구하는데요, 문제는 그 목자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목자로 생각하여 돈이 많으면 자신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목자로 생각하여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그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목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권력을 갖고 있으면, 권력 있는 자들과 친하게 잘 지내면 그 권력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기술문명과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리들은 인간적인 목자도 갖지 못한 존재들이었고 설령 그러한 것들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목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악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고 영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죄악에 빠져 영원한 벌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무리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던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스스로 자신이 목자가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참된 목자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여도 꾸짖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주님 한 분 밖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62:6) 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던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인생을 살면서 생생하게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 진 시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어려운 인생을 살았습니까?
그 어려운 인생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가 다윗의 목자가 되셔서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으면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목자로 삼으면 주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주시고 우리를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여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받아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목자로 삼아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