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이야기 3778

갇힌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4번째 쪽지! □갇힌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를 오늘날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면 첫째, 오늘날의 설교는 형식에 ‘갇혀’있습니다. 딱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규칙대로 합니다. 그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설교는 주일 아침 11시 대예배라고 부르는 시간의 설교입니다. 이 시간의 예배와 설교는 하늘이 두 쪽 나도(?)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 갑자기 교회 문을 닫으라고 하니 평생 11시 예배를 드리던 수많은 목회자들이 맨붕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주일 아침 11시 예배는 불변(不變)이라고 정했나요? 당연히 예수님은 그런 말씀 하신 적 없고 ..

성경에 설교가 있나?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그 7773번째 쪽지! □성경에 설교가 있나?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설교가 성경에 있는가? 없습니다. 요즘 성경 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지 단어를 검색하면 1초만에 다 찾아줍니다. 대다수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이나 ‘개정’성경에서 검색해 보면 ‘설교’라는 단어 자체가 단한번도 안 나옵니다. 2.설교라는 ‘단어’는 안 나오지만 ‘설교하는 것’같은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그런 ‘설교’의 특징은 오늘날 설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설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단들이 잘하는) 억지로 짜맞추기식 주장에 불과합니다. 3.개신교 예배에서는 설교 시간이 예배 시간..

설교권(說敎權)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2번째 쪽지 □설교권(說敎權) 1.저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찰떡같이 믿고 있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眞如)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전통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가장 큰 고민은 ‘설교(說敎)’에 대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대충 수위를 조절해서 쓰면 되는데 ‘설교’에 대한 글은 쓰면 무조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윌 듀란트라는 신학자는 설교를 가리켜 ‘건드렸다간 큰일나는 개신교의 신성한 소’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제가 좀 소심하니 지적보다는 그냥 참고용으로 읽어보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2.진료는 의사만 해야 한다는 ‘의료법’처럼, 기독교에는 설교는 목사..

영적 성숙이 없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1번째 쪽지! □영적 성숙이 없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예배’를 통해서 과연 교인들이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을까? 매주 매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묵묵히 앉아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앞사람 뒤꼭지만 보며 드리는 예배로 어떻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악한 영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패잔병이 되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붕대를 감고 앉아서 “우리는 위로가 필요해요... 우리는 치유의 메시지가 필요해요...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 교회에서조차 우리에게 짐을 지우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충전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호~’해 주세요.” 2.넷째, 초대(초기)교회 예배는 오늘날과 같이..

흘러가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0번째 쪽지! □흘러가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형식주의 기독교 ‘예배’는 부끄러울 정도로 지루하고 그 다양성과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모든 예배 진행 상황이 빤히 예측되고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기계적이어서 신선함이나 참신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내용을 대사 몇 마디 바꾸어서 매주 무한 반복하는 ‘개그 프로그램’처럼 재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 구조는 뻔히 예측이 되면 ‘더 들을 것도 없다’하며 수면모드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처음엔 볼펜으로 엉덩이를 찌르면서 졸음을 참느라고 사투를 벌이다가 몇 년 지나면 능숙하게 눈 뜨고 자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설교 시간에 눈은 뜨고 있지만 살짝 밀면 옆으로 넘어갈 사람 의외로 많지요...

함께 하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9번째 쪽지! □함께 하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예배’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유대인이셨던 예수님도 회당에 가서 유대 회당 제의 방식을 따르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 모임을 ‘교회의 시초’로 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곳을 시나클룸(Cenaculum,식당)이라고 했고, 지금 예루살렘 시온문 밖으로 100m 지점에 약 150명 정도 들어가는 ‘마가의다락방’ 건물이 남아 있는데, 당연히 원래 ‘마가의 다락방’이 아니라 후대에 크게 교회로 지은 건물입니다. 2.예수님도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댓글을 다신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교회 자체가 ..

어디에서부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8번째 쪽지! □어디에서부터 1.오늘날 기독교의 ‘예배’가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약성경에 없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확합니다. 이 말이 모든 기독교 예배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잘 모르고 위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형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그것은 무효이니 나와 아무 상관 없다”고 하실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저는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면밀히 연구해서 초대교회(초기교회) 예배가 어떠했는지 알아내어 이 시대에 맞는 예배 순서를 제시할만한 실력은 없습니다. 그것은 전문가들과 신학자들이 할 일입니다. 하지만..

18세기의 신앙 유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7번째 쪽지! □18세기의 신앙유산 1.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18세기는 위대한 영적 부흥의 시기라고 평가합니다. 루터교회(16세기), 개혁교회(16세기), 청교도(16세기), 감리교회(18세기)를 거쳐서 개척교회(18-19세기)에 이르러 세계 곳곳에 공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졌고 이 시기에 세계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미국 ‘프론티어 소속 교회’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전해준 기독교 신앙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는 ‘평양 장대현교회 회개운동’을 기점으로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천주교인 숫자를 추월하였고, 이후에 조용기 목사를 중심으로 한 오순절 교단의 영향으로 기독교인..

오순절 교회와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6번째 쪽지! □오순절교회와 예배 1.한국교회의 예배를 살펴보면, 초대교회 예배도 아니고 전통적인 예전예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프론티어식 예배도 아니고 이것저것 막 뒤섞였는데, 이렇게 중구난방이 된 것은 암암리에 오순절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2.1906년 시작된 오순절 운동은 회중찬송에 더욱 강렬한 감정표현을 추가해서 손을 들고 찬송하는 것,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 손뼉치며 율동을 따라 하는 것, 템버린(나중에 전자악기와 드럼의 등장은 너무 강렬하고 쑈킹하기도 했다)과 더불어 통성기도와 방언을 성령의 신비한 역사라고 강조하면서 더욱 사람들의 열광적인 참여를 유도했고 오순절교회가 개척되는 곳마다 사람들..

무디와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5번째 쪽지! □무디와 예배 1.한국교회의 ‘개척 교회’는 무디(DL Moody,1837-1899 미국의 침례교 평신도 전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디는 기독교 근본주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은 ‘오직 성경’과 ‘전천년 세대주의’를 주장하는 단체이고 그래서 무디도 세계의 종말(예수님의 재림)이 오기 전에 가능한 빠른시간 안에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운동에 불을 질렀습니다. 2.무디의 표어는 “우리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 달성하자”고 급박한 어조로 외쳤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라고 합니다. 이 표어는 오늘날도 여전히 한국 교회안에 펄펄 살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