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16

예배의 끝은 없다.

예배의 끝은 없다. 글쓴이/봉민근 예배의 끝은 없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끝은 세상 나가서 드릴 예배를 위한 위한 전주곡이다. 예배는 귀하고 위대하며 피조물이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최상의 표현이요 하나님을 대면하는 지극히 거룩한 만남이다. 이 땅에서 뿐만이 아니라 천상에 가서도 영원토록 드릴 예배!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는 예배! 피조물의 가장 존엄한 표현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배자로 산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도 예배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세상은 끝이 나도 예배는 끝나지 않는다. 장차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찬송하며 드릴 예배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구원받은 자는 예배를 멈출 수가 없다. 그 감격, 그 사랑에 매여 주를 부르지 않으면 살 수..

묵상말씀 2022.07.08

5.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사랑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272번째 쪽지 □5.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사랑 1.하나님을 거짓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며 자기를 속이는 위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욕과 육체적 유익을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내 것을 하나라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아셨죠?” 이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 주시고 눈감아 주실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얼마나 단호하신 분인지 심지어 당신의 독생자 아..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 사랑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274번째 쪽지! □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 사랑 1.예수님은 무슨 목적으로 나 대신 십자가에 달려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을까요? 설마 목적 없이 방황하며 육체의 소욕을 따라 잠이나 자고 놀러나 다니며 그저 그런 삶을 살라고 나를 구원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이유는 세상에 대하여는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다시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고 하나님과 나를 화해 시켜서 손을 잡게 하려고 자신을 화목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이 직접 제사장이 되셔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앞세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내셨습니다. 그런..

가치 있는 죽음

가치 있는 죽음 평생을 고결한 성품을 유지하며 교육에 몸 바친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승의 마지막을 예상한 제자들이 크게 슬퍼하자 스승은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절대 슬퍼하지 말아라. 가치 있는 죽음은 삶에 의미와 사랑을 부여한다는 것을 너희들은 모르느냐?" 그러자 한 제자가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선생님께서 언제나 살아계셔서 저희와 함께하길 원합니다." 제자의 말에 스승은 제자들을 토닥이며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꽃들을 보아라, 플라스틱 꽃은 죽지도 않지만 열매도 맺지 못한다." 죽음은 세상과의 단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기에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꽃이 져야 열매 맺고 열매..

굽은 나무의 가치

굽은 나무의 가치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한 일화로 혜자가 장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비비 꼬인 구부러진 나무가 있소. 자를 댈 수가 없으니 길에 서 있지만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소. 그런데 선생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서 크기만 했지 쓸모가 없어 모두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게. 나무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목수들에 의해 잘리지도 않고 그토록 오래 살아 큰 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혜자는 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다고 반박하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햇빛이 쨍쨍한 날 그 나무의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쉼을 얻고 있다는 걸 자네는 모르고 있었나 보네." 세상에 쓸모없..

개인적인 절망감

2022년 7월 8일 오늘의 아침편지 개인적인 절망감 역사는 가혹한 스승이다. 우리는 현재의 고통이 내 일을 어떻게 조각할지 예견하지 못한다. 늘 그래왔듯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물론 고통과 희망의 정도가 동등하지는 않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힘들었는데, 내게 있어 최악은 개인적인 절망감이었다. - 게일 콜드웰의《어느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중에서 - * 역사는 그냥 흐르지 않습니다. 가혹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반복되고, 땀과 눈물과 때론 피를 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류 개개인에게 극한의 고통과 절망감을 안겨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깊은 뜻과 교훈, 미래에의 희망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늘 공존..